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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좌측: 현대차그룹의 창업주 정주영 회장. 고객을 위한 희생을 강조하며 직접 현장에서 직원들과 헌신했던 그의 경영 철학은 오늘날 현대차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우측: 정주영 회장의 손자이자 현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회장. '인류를 향한 진보'를 기치로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선도하지만, 노동자 35억 원 손해배상 판결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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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창업주의 ‘희생 기반 성장’에서 ‘노동자 35억 손배’ 기업으로…상생 가치 실종 논란

좌측: 현대차그룹의 창업주 정주영 회장. 고객을 위한 희생을 강조하며 직접 현장에서 직원들과 헌신했던 그의 경영 철학은 오늘날 현대차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우측: 정주영 회장의 손자이자 현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회장. '인류를 향한 진보'를 기치로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선도하지만, 노동자 35억 원 손해배상 판결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좌측: 현대차그룹의 창업주 정주영 회장. 고객을 위한 희생을 강조하며 직접 현장에서 직원들과 헌신했던 그의 경영 철학은 오늘날 현대차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우측: 정주영 회장의 손자이자 현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회장. ‘인류를 향한 진보’를 기치로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선도하지만, 노동자 35억 원 손해배상 판결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한때 ‘고객을 위한 희생’과 ‘정확하고 신속한 수리’를 강조하며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현대자동차가, 이제는 자신들의 불법파견에 항의한 소수의 노동자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손해배상액을 요구하는 기업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현대차 하청 노동자 파업에 연대했던 노동조합 활동가 4명에게 총 35억 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서,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퇴행적 판결이자 창업 정신을 훼손하는 처사”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하는 현대차의 미래 비전과 현실 속 노동 존중 가치 사이의 괴리가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 정주영의 ‘직원 희생 기반 성장’과 정의선의 ‘미래 혁신’…엇갈리는 노동 존중 가치

현대자동차의 역사는 창업주 아산 정주영 회장의 독특한 경영 철학에서 시작된다. 1940년대 ‘아도써비스’ 정비소 시절, 정 회장은 ‘고객이 힘들기에 최대한 빨리, 완벽하게 차를 고쳐야 한다’는 신념 아래, 자신과 직원들이 자정까지 작업소에 남아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헌신했다. 이러한 ‘정확하고 신속한 납기 준수’를 위한 직원들의 자발적(혹은 강한 분위기 속) 희생은 당시 현대차 성공의 핵심 동력이자 기업 정신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80여 년이 흐른 지금, 현대차는 과거 직원들의 희생을 통해 이룩한 성장 동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자신들의 불법파견 문제에 맞선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고 있다.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문제 해결과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며 생산라인을 점거한 파업에 연대했던 금속노조 간부 3명과 정규직 노동자 1명은, 당시 2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에 시달려 왔다.

대법원은 2023년 6월 쟁의행위 참여자의 개별 책임은 고려해야 한다며 파기환송했지만, 부산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20억 원을 그대로 유지했고, 여기에 확정 이자까지 더해 총 35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최종 배상액으로 결정됐다. 활동가들의 재상고는 최근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별도의 심리 없이 확정됐다.

■ 정의선 회장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인류를 향한 진보’에 노동자도 포함될까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회장은 창업주 할아버지의 경영 DNA를 계승하면서도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과감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현대차를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 로보틱스, 도심항공교통(UAM) 등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대전환을 꾀하며 ‘인류를 향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y)’를 그룹의 핵심 철학으로 내세웠다. 또한,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강조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차의 진취적인 비전과 사회적 책임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노동자 손해배상 판결은 ‘인류를 향한 진보’라는 가치에 노동자의 인권과 존중이 온전히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노동계는 이번 파업의 근본 원인이 현대차의 ‘불법파견’이라는 기업의 불법 행위에 있었음을 지적하며, 이에 항의한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기업의 불법이 사안의 본질”임을 외면한 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 ‘손잡고’는 “회사가 지목한 대상자는 쟁의행위 결정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주도자’로 보고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물릴 수 있게 된 것”이라며 “힘없는 노동자가 기업범죄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대법원이 판례라는 족쇄를 다시 한번 채운 셈”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역시 “대법원이 기업의 불법에 저항한 노동자에게 수십억 원의 책임을 지우는 퇴행적 판결을 고착화시켰다”고 지적했다.

■ ‘노동 3권 무력화’ 우려…현대차, 국민 신뢰 지켜낼까

이번 판결은 향후 노동 쟁의행위에 대한 노동자 개인의 책임 부담을 가중시켜,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평생을 벌어도 감당하기 어려운 35억 원이라는 금액은 해당 노동자들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의 정신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파업은 늘 기업이 부른다”며, “정당한 파업에 죄를 물은 결론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을 통해 돈 앞에 노동자가 쓰러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모든 노동자가 정당한 파업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시대를 열어낼 것”이라고 강조하며 향후 법 개정 투쟁을 예고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과 국내 노동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 사이에서 심각한 괴리를 보이고 있는 현대자동차. 이번 판결은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라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에 대한 논의를 다시금 촉발시키고 있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 성장한 기업이, 과연 이러한 방식으로 노동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온당한 ‘대가’인지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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