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SR(수서고속철도)의 통합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현대로템이 3년 전 수주한 1조 원 규모의 고속철도 정비 계약이 백지화될 위기에 처했다. 업계에서는 현대로템이 그간 보여온 입찰 담합과 품질 논란, 해외 비리 의혹 등이 이번 계약 재검토의 결정적 배경이 됐다는 ‘자업자득’식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6일 관련 업계와 정부 당국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코레일과 SR의 통합 실무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2023년 SR과 현대로템이 체결한 고속철도 차량 구매·정비 계약의 변경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통합 이후 노선 운영이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비 체계 전반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며 “법률 검토를 포함해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된 계약은 2022년 정부의 ‘제작사 정비 참여’ 방침에 따라 SR이 고속철도 차량 14편성(112량)을 발주하면서 체결됐다. 코레일이 사실상 독점해 오던 정비 구조가 처음으로 깨진 사례였다.
그러나 양사 통합이 가시화되면서 코레일은 정비 체계가 이원화될 경우 관리 부담이 커지고 중복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어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코레일이 직접 정비를 맡을 경우, 준비 기간 2년을 포함해 향후 17년간 위탁 정비에 소요될 비용 약 515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계약이 유지될 경우, 내년 하반기부터 열차 인도와 함께 정비 업무가 본격화될 예정이었다.
현대로템은 해당 계약과 관련해 아직 SR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다. 회사 측은 현재로선 계약 변경이나 해지 가능성에 대해 별도의 검토에 착수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와 시장에서는 현대로템이 지난 10여 년간 ‘국내 유일 고속철 제작사’라는 지위를 바탕으로 공공 계약에서 막대한 이익을 누려온 반면, 입찰 담합과 품질 논란 등으로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해 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맏형’ 자처한 2.4조 담합에 소송전까지…끊이지 않는 ‘불법·갑질’ 논란
실제로 현대로템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총 2조4000억 원 규모의 철도차량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주도한 사실이 2022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드러났다.
현대로템은 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리니언시)를 통해 323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면제받았지만, 이를 두고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현대로템의 2024년, 2025년 말 기준 사업보고서 ‘중요한 소송사건’ 항목에 따르면, 국가철도공단은 2023년 6월 14일 현대로템과 우진산전을 상대로 444억500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도 2023년 12월 13일 현대로템과 다원시스를 상대로 819억81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두 사건 모두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청구 금액을 합산하면 약 1264억3100만 원으로 나타났다.
현대로템의 현장 차원 불법 행위도 반복돼 왔다. 2016년 대구 도시철도 스크린도어 설치 사업 과정에서 불거진 불법 하도급 비리 의혹은 장기간의 법적 공방 끝에 2023년 6월 대구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유죄로 확정됐다. 법원은 일괄 하도급을 금지한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로 현대로템 법인에 벌금 2500만 원을 선고했으며, 전·현직 임직원 6명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을 확정했다.
이와 별도로 현대로템은 협력업체를 상대로 한 기술자료 부당 요구와 대금 지급 지연 등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2025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를 받았다. 앞서 2021년 6월에도 기술자료 요구서 미발급 등 하도급법 위반을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600만 원과 시정명령 처분을 받은 바 있다.
■ 품질 결함·해외 비리에 인명 사고까지…경영진은 ‘보수 파티’ 빈축
품질 논란 역시 끊이지 않았다. KTX-산천 도입 초기 코레일이 현대로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결과, 2014년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64건의 결함 가운데 63건이 제작사 책임으로 판명됐다.
이후에도 KTX-이음 운행 초기 진동 문제가 불거져 현대로템이 공기스프링 교체 비용을 전액 부담하기로 합의했고, KTX-청룡은 소음 기준치 초과로 재설계를 거쳐 당초 납기인 2022년 3월보다 대폭 지연 납품됐다. 현대로템 사업보고서 ‘중요한 소송사건’ 항목에 따르면 삼성E&A(구 삼성엔지니어링)가 납품 제품 하자를 이유로 제기한 122억740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2025년 항소심에서 일부 인용 판결이 내려졌다.
해외 사업에서도 신뢰 훼손 사례가 이어졌다. 현대로템이 총 3500억 원 규모로 우크라이나에 납품한 열차는 현지 철도청 조사에서 ‘설계 결함’ 판정을 받았고, 이로 인한 운행 중단 및 지연 비용이 발생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2025년 9월 현지 반부패위원회(ACC)가 현대로템이 납품한 기관차 10대를 둘러싼 비리 혐의로 철도청 전 청장 등 고위 간부 3명을 기소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계약서상 3000마력 엔진 대신 2000마력 엔진이 납품됐으며, 방글라데시 철도청은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대금의 75% 지급을 보류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로템은 “계약 변경 협의를 거쳐 납품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영 관리와 안전 경영 측면에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현대로템은 2021년 브라질 법인(Brasil Industria)에 신규 출자한 960억 750만 원과 2022년 미국 법인(USA Corporation)에 출자한 226억 7,970만 원을 각각 당기 중 전액 손상 인식했다. 해외 시장 확대를 호언장담하며 투입한 총 1,186억 원의 자산이 단기간에 사실상 ‘휴지조각’으로 전락하며 경영진의 투자 판단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이러한 경영 실패의 그림자가 가시기도 전에 현장에서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참사까지 발생했다. 2025년 2월 11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CDQ 신설공사 현장에서 현대로템 소속 작업자 1명이 추락방호망 설치 작업 중 떨어져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막대한 재무적 손실과 인명 사고라는 경영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현대로템 경영진은 ‘보수 파티’를 멈추지 않았다. 현대로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경영진 보수 총액은 2022년 153억9499만 원에서 2023년 183억9229만 원, 2024년 188억6793만 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현장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2025년에도 경영진 보수는 217억850만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2년 대비 2025년 보수 총액은 약 41% 증가한 것이다. 이 같은 보수 추이는 경영 성과와 안전 관리 책임 간의 균형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을 낳고 있다.
현대로템 측은 아직 SR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 제재, 법원 판결,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다수의 소송 현황이 보여주듯, 이번 계약 위기는 단기간에 발생한 돌발 변수가 아니라 현대로템이 오랜 기간 누적해 온 신뢰 훼손의 결과라는 평가가 업계 전반에서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