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필드) 진용준 기자 = 정경선 CSO(최고전략책임자·부사장)는 2024년 취임 직후 ‘디지털과 ESG를 통해 보험업의 체인지메이커가 되겠다’는 경영 철학을 밝히며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1년 만에 실적이 급락하며 그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 부사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윤 회장의 장남으로, 현대해상 오너 일가의 3세 경영인이다. 디지털 전환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앞세운 장기 전략을 주도해왔지만, 실적 악화 국면에서 보험업의 핵심인 손해율·리스크 관리 역량이 충분히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현대해상은 올해 1월 1일부로 기존 ‘상무-전무-부사장’ 체계를 ‘상무-부사장’ 체제로 통합했다. 올해 이 같은 직위 체계 개편에 따라 정경선 전무 역시 부사장으로 직위가 변경됐다.
■ ‘장밋빛 미래’ 외칠 때 ‘내실’은 붕괴…순이익 42% 증발
20일 금융정보분석업체 에프앤가이드 등에 따르면, 현대해상의 2025년 별도 기준 연간 순익 전망치는 5천954억 원으로 전년 대비 42.23% 급감할 것으로 추산된다.
실적 악화의 핵심은 보험계약마진(CSM)의 대규모 손실이다. 현대해상은 2~4세대 실손보험 갱신 시 비급여 청구 급증 등에 따른 손실을 반영하며 CSM 7천160억 원을 손실 처리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3분기 예실차(예상과 실제 사고 발생액 차이)는 -2천124억 원으로 업계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며 재무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현대해상의 부진은 경쟁사와의 비교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이 장기 보장성 보험 중심으로 CSM을 방어하며 손해율 충격을 분산시킨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화재는 장기인보험 비중을 40% 이상 확대해 실손 의존도를 낮췄고, 그 결과 3분기 예실차 손실을 업계 최소 수준인 -420억 원으로 막아냈다. DB손보 역시 보수적인 계리 가정 조정을 통해 신계약 CSM 1위를 탈환했다. 반면 현대해상은 실손보험 비중이 높은 구조적 한계를 제때 조정하지 못해 7천억 원대의 CSM 조정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정 부사장이 ‘체인지메이커’를 자처하며 디지털 생태계 구축에 몰두하는 동안, 정작 회사의 곳간을 지키는 리스크 관리 시스템은 경쟁사들에 비해 한 박자 늦게 작동했다는 평이다.
실적 부진의 여파로 현대해상은 최근 ’20년 만의 성과급 0원’을 선언하며 경영 위기 상황임을 자인했다.
■ 화려한 ‘디지털·ESG’ 성적표, 하지만 “안방 불은 못 껐다”
정 부사장은 취임 후 ESG 임팩트 측정 체계인 ‘HEART VALUE’를 도입하고, 2030년까지 자동차보험 ESG 매출 4조 원 달성이라는 파격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또한 카카오와 글로벌 금융사 출신 인재를 영입해 디지털전략본부와 자산부채종합관리(ALM) 전략실을 강화했다.
그 결과 비대면 채널 수입보험료가 전년 대비 20% 성장한 1조 2천298억 원을 기록하고, AI 언더라이팅 도입으로 자동차·실손보험의 70%를 비대면으로 처리하는 등 외형적인 ‘혁신’ 성과를 냈다. SK텔레콤, 카카오페이, 네이버 등 빅테크와의 제휴를 통해 모바일 다이렉트 가입률을 40% 이상 끌어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 대비’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보험업의 기초인 리스크 관리는 방치됐다. 업계 관계자는 “정 부사장이 장기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혁신을 실행했지만, 정작 보험업 특성상 실적에 즉각 반영되는 손해율 급등 국면에서 상품 믹스 조정 등 전통적인 대응은 지지부진했다”고 꼬집었다.
■ 0.45% 지분으로 주무르는 경영…두 살 터울 남매의 미묘한 차이
주주 현황에 따르면 현대해상의 최대주주는 지분 22.00%(1,966만 8,000주)를 보유한 정몽윤 회장이다. 정 회장은 슬하에 두 살 터울의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녀 정정이(1984년 출생) 현대하임자산운용 대표와 장남 정경선(1986년 출생) 부사장이다. 정 부사장은 최대주주의 자녀로서 0.45%(40만 6,600주)의 지분을 보유 중이며, 누나인 정정이 대표(0.38%, 34만 3,475주)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구도는 오너 3세 간의 역할 분담과 향후 승계 향방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지만, 정 부사장이 맡은 본체의 실적이 반토막 나면서 후계자로서의 연착륙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문제는 미미한 지분율에도 불구하고 ‘차기 후계자’로서 회사 전략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 부사장은 취임 후 카카오 수석부사장 출신 김택수 전무와 소카 출신 주준형 상무 등 외부 인재의 영입과 배치에 전략적 영향을 미치며 현대해상 디지털 생태계 구축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적 리더십’의 결과는 처참했다. 10.71%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 국민연금공단과 지분 60.90%를 점유하고 있는 3만 6,900여 명의 소액주주들은 오너 일가의 경영 실험 속에 기업 가치가 하락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 400억 대 소송·내부통제 구멍…구호만 요란한 ‘ESG 경영’
분기보고서에 기재된 406억 원(5건) 규모의 피고 소송과 각종 기관 제재 내역은 정 부사장이 강조하는 ESG 중 ‘지배구조(G)’와 ‘내부통제’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보험금 부당 부지급 및 과소 지급, 불완전판매 등으로 인한 금융감독원의 각종 기관 제재와 과태료 처분 내역이 보고서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정 부사장이 주도한 ESG 임팩트 측정 체계 ‘HEART VALUE’ 도입이나 AI 기반 상품 혁신은 외형적으로 화려했으나, 정작 ESG의 핵심인 소비자 보호(S)와 투명한 지배구조 및 내부통제(G)는 방치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미등기 임원으로서 경영 전면에 나선 그가 보험업의 보수적인 내부통제 대신 ‘사회적 가치’와 ‘디지털’이라는 본인의 철학만을 고집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 부사장의 리더십이 단순한 ‘금수저의 경영 수업’을 넘어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당장의 손해율 관리와 실적 회복이라는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체인지메이커’를 자처한 그의 실험이 현대해상의 근간을 흔드는 ‘오너 리스크’가 될지, 반등의 계기가 될지는 올해 성적표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