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가 유엔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규약위원회(이하 사회권위원회)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은 정부보고서를 제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하청·파견 노동자에 대한 노동법 적용 및 노동조합의 파업권 보장과 관련해 허위 보고가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이에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정부 보고서의 전면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금속노조와 금속노련, 시민단체 손잡고 등은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유엔 사회권규약 이행 거짓 보고를 규탄하며 정부 보고서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앞서 사회권위원회는 2017년 10월 9일 최종 견해를 통해 ▲노동법이 모든 노동자에 적용되도록 할 것 ▲사용자 법 위반 처벌 및 입법·규제 조치 ▲비정규직 남용에 대한 근로감독 강화 ▲합법 파업 요건 완화 및 필수 서비스 범위 엄격 규정 ▲쟁의행위 참가 노동자 보복 조치에 대한 독립적 조사 실시 등을 권고한 바 있다. 여기서 ‘보복조치’는 업무방해죄 적용 형사처벌 및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명시하고 있었다.
■ 5차 보고서, 유엔 권고 외면한 채 ‘거짓’으로 일관
윤석열 정부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한 5차 보고서를 2023년 12월 제출했지만, 해당 보고서는 모두 거짓된 내용을 담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특수고용노동자를 제외한 “파견, 하청 근로자들이 모두 노동법 적용을 받고 있다”거나 “노동조합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답변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 내용은 노조법 개정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도, 윤석열 정부가 해당 개정안에 대해 두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한 사실은 이러한 비판에 더욱 힘을 실었다.
보고서는 불법파견 문제를 드러낸 2018년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누락해 국가기관의 ‘대기업 봐주기’ 문제를 은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 당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불법파견 사건에서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 검찰의 기소 지연 등 문제점을 밝히고 시정을 촉구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보고서에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등에서 불법파견 부실 수사 문제는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 ‘쟁의행위 보복 조치’ 거짓 주장…노동 현장 여전히 고통
보고서가 “쟁의행위 참가자에 대한 보복 조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기술한 내용 역시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이 나왔다. 현재 금속노조의 여러 사업장에서는 쟁의행위만 하더라도 온갖 수사, 손해배상, 가압류 등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금속노조 엄상진 사무처장은 “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받은 470억 손해배상은 무엇인가. 하청 노동자는 지금도 원청과 교섭하지 못해 싸우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왜 두 차례나 거부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노동 현실을 은폐한 윤석열 정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그는 “지난 정권의 보고서를 국회가 전면 재검토해 불법파견과 한국 노동자들이 처한 실상을 밝혀달라”며 “금속노조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래군 손잡고 대표는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최종 견해는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법을 적용받고, 합법적 파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제도적 노력’과 함께 ‘독립적 조사 실시’와 같이 정부가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도록 주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성실히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노동법 적용을 위한 노란봉투법 입법을 거부한 사실을 은폐하고, 정부 차원의 독립적인 조사도 실시하지 않은 채 거짓을 담은 내용을 보고서에 실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파견, 하청노동자에 노동법을 이미 적용하고 있다”거나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는 국가 보고서의 주장에 대해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한화오션의 하청노동자들이 ‘교섭권을 부정’당하고 파업에 대해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당하는 현실, 업무방해죄를 넘어 업무방해방조죄를 묻는 현실을 모두 외면한 결과”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금속노련 김준영 위원장은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는 국민과 국제사회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유엔의 권고 이행을 외면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구조적으로 침해하는 현실을 감추는 정부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새 정부는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할 실질적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준비한 의견서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주영 간사와 법제사법위원회 박범계 간사에 직접 전달했다. 의견서를 전달받은 김주영 국회의원은 “유엔 사회권위원회 권고는 각 분야의 한국 사회 인권 척도가 국제규범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중요한 지표”라며 “윤 정부의 거짓 보고서로 심의가 잘못 판단되어 대한민국의 노동권과 인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국회 환노위와 법사위에서 소상히 들여다보고 바로잡겠다”고 응답했다.
이번 사태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이 국제사회의 권고와 국내 현실 간 괴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국제 기준을 준수하려는 의지보다 현안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은 불가피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