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단체들이 SK하이닉스의 과거 매각 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의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의 SK그룹 유입 의혹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와 범죄수익 환수를 촉구하고 나섰다.
투기자본감시센터, 검찰·경찰사법적폐청산 김앤장해체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들은 11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K하이닉스 공적자금 투입·매각 특혜 의혹과 노태우 비자금 유래 범죄수익 환수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다.
■ “헐값 매각에 비자금 의혹까지”…2011년 매각 구조가 쟁점
이들 단체는 하이닉스가 IMF 외환위기 이후 채권단의 채무면제·출자전환·신규대출 등 국민경제의 희생이 결합된 지원으로 회생한 기업임에도, 이명박 정부 시기 SK텔레콤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공개경쟁입찰과 경영권 프리미엄 확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채권단 보유 지분 전체에 프리미엄을 붙여 매각하지 않고 일부 구주 매각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경영권을 넘겨 국민과 채권단에 손실을 끼친 ‘권력형 특혜 매각’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의 관계기관 합동조사 지시와 감사원 특별감사, 당시 채권단·정책금융기관의 배임 여부에 대한 금융당국 조사를 요구했다.
실제 2011년 11월 매각 계약 당시 SK텔레콤은 총 3조4천억원을 들여 하이닉스 지분 21.05%를 인수했는데, 이 가운데 채권단이 보유 구주를 팔아 회수한 금액은 약 1조1천억원(4천425만주, 주당 2만4천500원)에 그쳤고, 나머지 약 2조3천억원은 신주 발행(1억185만주, 주당 2만3천원) 대금으로 하이닉스 회사에 유입됐다.

채권단 회수액이 줄어든 대신 회사가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구조였던 셈으로, 시민단체가 문제 삼는 ‘경영권 프리미엄 상실’의 근거가 되는 대목이다.
다만 당시 입찰은 경쟁자였던 STX가 그해 9월 중도 포기하면서 SK텔레콤 단독 응찰로 진행됐고, 채권단의 지분 매각 시도가 그 전에도 여러 차례 무산됐던 사정이 있어, 매각 강행이 특혜였는지는 조사를 통해 가려져야 할 부분이다.
하이닉스 지분은 2021년 11월 SK텔레콤 인적분할로 신설된 SK스퀘어가 전량 승계해, 현재 SK스퀘어가 지분 20.5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SK스퀘어의 최대주주는 그룹 지주회사인 SK㈜(32.14%)이고, SK㈜의 최대주주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보통주 17.90%·올해 3월 말 기준)이다.
단체들은 또 최 회장 일가의 재산 형성 과정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유입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개인 간 재산분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몰수·추징해야 할 권력형 부패 범죄수익 문제”라며 법무부와 검찰의 전면 수사를 촉구했다. 이른바 ‘김옥숙 메모’와 관련 자금 흐름, 노태우 일가의 차명재산·세금 탈루 의혹에 대한 국세청 전수조사도 요구사항에 담겼다.
매각 특혜 의혹과 비자금 의혹이 한 장의 진정서에 함께 담긴 것은 이런 지배구조와 무관치 않다. 최 회장이 ‘SK㈜→SK스퀘어→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출자 사슬의 정점에 서 있는 만큼, 시민단체들은 하이닉스 매각 과정의 특혜 의혹과 총수 일가의 재산 형성 의혹을 별개 사안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비자금 300억원은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핵심 쟁점이 된 사안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비자금이 실제 전달됐더라도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해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며 1조3천808억원 재산분할을 명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고, 현재 파기환송심 조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대법원이 비자금의 실체 여부 자체는 판단하지 않은 가운데,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2024년 11월 5·18기념재단의 고발을 계기로 노태우 일가 비자금 수사에 착수했으나 아직 뚜렷한 처분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자금의 실체 규명과 환수 절차를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제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단체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막대한 이익을 내면서도 전력·용수·도로 등 산업기반시설 지원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수익자 부담 원칙’ 확립과 지원 내역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했다. 아울러 영업이익에 연동된 성과급을 비용으로 처리해 법인세 과세기반을 축소하고 있다며, 성과급의 법인세 공제를 제한하는 법 개정을 국회에 촉구했다.
■ 사상 최대 실적 질주…이면엔 반독점 조사 등 리스크도
논란과 별개로 SK하이닉스의 경영 성과는 압도적이다. AI 메모리 수요 폭증 속에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을 주도하며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97조1천467억원, 영업이익 47조2천63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뒀고,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 52조5천763억원, 영업이익 37조6천103억원, 당기순이익 40조3천45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98.1%, 영업이익은 405.5% 급증한 수치로, 분기 매출 50조원 돌파는 창사 이래 처음이며 영업이익률은 72%에 달했다. 지난 4월에는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에서 약 19조원을 투입하는 어드밴스드 패키징 전용 팹 ‘P&T7’을 착공하는 등 2027년 말부터 순차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AI 메모리 후공정 투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호실적 이면에는 리스크도 남아 있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2018년 5월부터 주요 DRAM 업체의 중국 내 판매와 관련한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며, 회사는 “최종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지식재산권 등을 둘러싼 다수의 분쟁도 진행형이다. 메모리 업황의 변동성도 상존한다. SK하이닉스는 불과 2년여 전인 2023년 반도체 시황 악화로 연간 7조7천303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바 있어, 현재의 초호황이 사이클 반전 시 빠르게 식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는 2024년 3월 박정호 부회장의 등기임원 임기 만료 이후 곽노정 사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며 AI 메모리 중심의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민단체의 전방위 공세와 사법 절차, 치열해지는 기술 경쟁 속에서 SK하이닉스가 어떤 대응에 나설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