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각장애인이 화면낭독기를 통해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 정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도록 대체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주요 온라인 쇼핑몰이 이런 조치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점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로 인정했으나, 사업자들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지난 3월 12일 시각장애인들이 G마켓, SSG닷컴, 롯데쇼핑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취지의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G마켓과 SSG닷컴 두 플랫폼이 동시에 피고석에 앉았다는 점이다.
G마켓은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지마켓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 오픈마켓이며, SSG닷컴은 (주)SSG닷컴이 운영하는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 쇼핑몰이다. 반면 롯데쇼핑은 롯데쇼핑 주식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온(LOTTE ON)을 통해 이번 소송에 관여됐다.
이 소송은 2017년 9월 시각장애인 963명이 제기했다. 원고들은 상품 이미지와 상세 설명이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 중심으로 제공돼 스크린리더(화면낭독기)만으로는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온라인 쇼핑 이용에서 사실상 배제됐다며 소송을 냈다.
쟁점은 상품 정보가 이미지 중심으로 구성된 구조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정보 접근 조건을 다르게 만드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이런 방식이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플랫폼 사업자가 개별 입점 판매자가 올린 이미지라 하더라도, 이를 소비자에게 배포하는 전자정보 유통 주체로서 접근성 보장 의무를 진다고 봤다.
재판부는 “입점 판매자 이미지를 일일이 통제하기 어렵다”거나 “대체텍스트 제공이 과도한 부담”이라는 사업자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체텍스트 제공 의무가 사업자에게 현저히 곤란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확정된 원심에 따라 각 온라인 쇼핑몰은 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상품 관련 콘텐츠에 화면낭독기로 인식 가능한 대체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
다만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은 원고 1인당 10만 원의 위자료를 인정했으나, 2심에서 이를 취소했고 대법원도 이를 유지했다. 재판부는 쇼핑몰들이 접근성 개선을 위해 일정 부분 노력한 점, 입점 업체가 등록하는 방대한 상품 정보를 사업자가 일일이 통제하기 어려운 업계 현실, 당시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차별행위에 고의나 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고 측은 판결에 즉시 반발하며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지난 13일 시각장애인 원고 18명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은 인정됐으나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대법원 판단의 위헌 여부를 다툴 방침을 밝혔다.
원고 측은 이번 판결이 장애인의 평등권, 정보접근권, 재판을 통한 권리구제 실효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참여한 최상민 씨는 “오랜 기간 일상에서 소외된 고통에 대한 위자료가 0원으로 결론 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대리인 염형국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단순 재산권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엄과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국내 전자상거래 업계에 웹 접근성 의무를 명확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차별 시정 명령은 유지하면서 금전 배상을 부정한 만큼, 장애인 권리 구제의 실질적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는 헌법재판소 판단과 향후 입법 논의로 이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