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만도 평택공장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설비에 끼여 숨진 사고와 관련해 조성현 HL만도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이사회가 2026년 안전보건계획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지 167일 만에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회사의 안전관리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했는지도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20일 고용노동부 평택지청과 경기남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조 대표는 지난 19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같은 날 HL만도 평택공장 안전보건총괄책임자와 HL만도 법인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등 3명과 하청업체 관계자 2명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각각 입건됐다.
사고는 지난 7월 22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HL만도 평택공장에서 발생했다. 외주 정비업체 소속 김승모 씨(28)가 부품 가공 기계 내부를 점검하던 중 HL만도 직원이 작업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설비를 시운전하면서 기계와 벽 사이에 끼여 숨졌다.
HL만도가 사고 당일 공시한 중대재해 발생 내역에는 사고 내용이 ‘설비 정비를 위한 사전 확인 중 협력업체 작업자 1인 설비에 협착’된 것으로 기재됐다.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은 해당 사업장에 부분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수사기관은 지난 7일 HL만도 평택공장과 하청업체를 압수수색했다. 사고 원인과 함께 작업 과정에서 안전조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원청과 하청 간 작업정보 공유 및 설비 가동 절차가 적절했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사회 안전계획 승인 167일 뒤 사고…예산·인력은 공시 안 돼
사고가 발생한 평택공장은 HL만도의 본점이다. HL만도 이사회는 지난 2월 5일 제1차 정기이사회에서 ‘2026년 안전보건 계획 승인’ 안건을 가결했다.

사고는 이사회가 해당 계획을 승인한 지 167일 뒤 발생했다. 당시 이사회는 독립이사 4명과 사내이사 3명 등 7명으로 구성돼 있었고, 정몽원 회장과 조성현 대표, 김현욱 사내이사 등 7명 전원이 안건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전년도에도 같은 안전보건계획 안건이 이사회에서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그러나 HL만도의 두 해치 정기보고서에는 안전보건계획과 관련한 구체적인 예산이나 인력 규모가 공시되지 않았다.
사고 발생 27일 전인 지난 6월 25일 열린 이사회 산하 지속가능경영위원회에서도 안전보건 문제가 주요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당시 회의 안건 6건에 안전보건 관련 항목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책위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계획에 비용과 시설, 인원이 포함돼야 하는 만큼 이사회가 승인한 계획이 실제 현장에 어떤 시설과 인력, 예산으로 집행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23년 미국서도 정비 중 사망…OSHA ‘Serious’ 처분
HL만도에서는 과거에도 설비 정비 과정에서 끼임 사고가 반복됐다.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보유한 산업재해 자료에 따르면 원주공장에서는 2008년경 전기보전 노동자가 설비 수리 중 전원이 가동되면서 설비에 끼여 요추 골절상을 입었다. 2010년경에도 설비 수리를 보조하던 노동자가 불시 라인 가동으로 협착돼 대퇴부 골절상을 입었다.
2019년에는 원주공장에서 지게차 협착으로 노동자가 사망했다. 평택공장에서도 2016년께 설비 보수 중 기계 내부에 있던 노동자가 설비 작동으로 협착되는 사고가 있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 사고 기록에 따르면 2023년 5월 4일 오후 5시15분께 HL Mando America Corporation 조지아 G2 공장에서 62세 노동자가 몰딩 머신을 정비하던 중 설비의 램(ram)이 작동하면서 머리가 압착돼 사망했다.
OSHA는 기계 방호 규정인 29 CFR 1910.212(a)(1) 위반을 ‘Serious’로 판단했다. OSHA 기록에는 정비, 설비 작동, 압착, 잠금장치, LOTO(lockout/tagout) 등이 사고 관련 키워드로 기록돼 있다.
OSHA는 해당 설비에 효과적인 방호가 제공·유지되지 않아 노동자들이 압착 위험에 노출됐다고 판단했다. 위험 노출 인원은 9명으로 기록됐다. 당초 과징금은 1만5625달러였지만 비공식 합의를 거쳐 9375달러로 조정됐다.
고 김승모 중대재해 대책위원회는 이 사고와 관련해 당시 사망 노동자가 만도 원주공장에서 근무하다 미국 조지아공장으로 파견됐고, 정년 이후 현지 법인 계약직으로 재입사해 근무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고 밝혔다.
동료들은 사고 당시 근무시간이 아닌 상황에서 회사의 긴급호출을 받고 정비작업에 투입됐으며 2인1조 작업과 LOTO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현장 증언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대책위는 2023년 미국 사고 이후에도 2026년 국내 사업장에서 정비 중 협착 사망사고가 발생한 만큼 당시 사고를 통해 확인된 위험이 국내 사업장의 유사설비 안전대책에 반영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HL만도는 2022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노동인권·안전’을 6대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글로벌 및 국내 사업장의 안전보건체계 안정화를 추진해 왔다. 2023년 공개된 HL그룹 자료에서도 전사 안전보건 회의체를 운영하고 주요 안건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안전보건 활동을 전사적으로 확산·전개한다고 설명했다.
또 HL만도는 2024년 제정하고 2025년 개정한 안전보건정책에서 글로벌 전 사업장에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운영하고 위험성 평가를 통해 위험요인을 발굴·개선하며 재해 발생 시 사고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 피해자가 외주 정비업체 노동자였다는 점도 쟁점이다. 노조는 생산설비의 정비·보전 업무에 외주인력 활용이 지속돼 왔다고 주장하면서 원청과 하청 사이의 작업지휘, 위험정보 전달, 설비 가동 승인, 전원 차단과 LOTO 책임 등이 적절하게 관리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HL만도는 사고 이후 공식 공시를 통해 ‘경찰, 고용노동부 현장확인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고와 관련한 구체적인 법적 책임은 경찰과 고용노동부 수사를 통해 확인될 예정이다. 다만 과거 국내외에서 유사한 설비 협착사고가 발생했고, 회사가 글로벌 안전관리와 사고 재발방지 체계를 운영한다고 밝혀온 만큼 과거 사고 이후 실제로 어떤 안전조치가 이뤄졌는지도 수사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