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가 17일 오전 11시 서울 강북노동자복지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가 중앙행정기관 공무직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했다며 국제노동기구(ILO)에 진정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정부가 ILO 협약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를 위반하고 있다고 강력히 규탄하며, 공무직 노동자들의 교섭권 보장을 위한 즉각적인 시정조치를 촉구했다.
■ 정부의 공무직 권리 외면, ‘유령 신분’ 비판 제기
이윤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진정 취지 발언을 통해 “공무직 노동자들은 국가정책의 최일선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음에도 차별적 처우와 실질임금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공무직 노동자들의 숫자가 20만 명을 넘지만, 정부는 이들의 노동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으며 법·제도적 신분도 보장하지 않는 유령 신분에 처해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의 일방적 예산 편성과 지침으로 단체교섭과 협약 이행이 번번이 가로막히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ILO 협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위원장은 “새 정부는 공무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모범사용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공서비스 최일선에서 일하는 공무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부끄러운 현실에 머물지 않도록 시급한 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정 요지를 설명한 김훈녕 노무사는 “이번 진정은 ILO 제98호 협약 제4조에 근거한 것으로, 한국 정부는 이 협약을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으로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획재정부의 예산 편성권 남용이 단체교섭권을 무력화하고 있으며, 정부가 단체교섭권 침해 구조를 개선할 법적·제도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ILO는 이미 한국 정부에 단체교섭 촉진과 노동단체의 의미 있는 참여 보장을 권고했지만 정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ILO가 이번 진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단체교섭권 보장을 위한 개선 조치를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공무직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중단하고 ILO 협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현장 증언으로 드러난 공무직 노동자들의 고충
경기지역지부 국민권익위공무직분회장, 충북평등지부 금강물환경연구소지회장, 조용식 대전지역일반지부 계룡대지회장들이 중앙행정기관 공무직을 대표하여 현장 증언에 나섰다.
국민권익위공무직분회 이선명 분회장은 “국민콜110 상담노동자들은 국민의 절박한 민원을 24시간 대응하지만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기본급 인상과 직무수당 확대를 요구했지만 국민권익위는 예산을 이유로 교섭 대상조차 될 수 없다며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 분회장은 “공공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한 권익위의 태도는 무책임하다”며 “우리는 더 이상 참지 않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권익위는 공무직 상담노동자의 생활임금 보장과 감정노동자 보호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국민의 고통을 막는 사람들의 고통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강물환경연구소지회 김정환 지회장은 “환경부 법정사업을 수행하는 공무직 노동자들이 예산 부족으로 강제휴업과 인력 공백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환경부와 기재부는 단체교섭으로 약속한 호봉제 전환과 위험수당 지급도 3년째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지회장은 “공정이라는 명분 아래 차별이 고착화되고,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재부는 예산 돌려막기 관행을 멈추고 ILO 협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는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공무직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와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룡대지회 조용식 지회장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공무직으로 전환됐지만,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로 소수노조는 교섭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방부 소속 동일노동에도 임금과 복리후생이 차별받는 현실을 개선하라는 요구는 묵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지회장은 “교섭단위를 기업 단위로 강제하는 것은 ILO 협약 위반”이라며 “교섭 수준은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수노조라 하여 차별받지 않는 단체교섭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지회장은 “공무직 단체교섭권 보장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마지막에는 공공운수노조가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에 제출한 진정서를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진정서 사본을 들고 정부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상징하는 플래카드와 함께 단체 촬영에 임했다. 이들은 “ILO가 한국 정부의 협약 위반을 철저히 조사하고 시정조치를 권고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번 공공운수노조의 ILO 진정은 정부가 공무직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리 보장에 미온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특히 기획재정부의 예산 권한이 단체교섭을 좌우하는 현실은 정부 부처 간의 협력이 절실함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