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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안전에 대한 겸손

강 철 (구조기술사, 안전넷 준비위원)

만약에 서울에 일정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암반 위에 세워진,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이 가장 피해가 적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과거 하천이나 한강의 지류를 메운 곳, 그리고 지반 자체가 약한 곳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커질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튼튼하다. 매립지인 송도 같은 곳은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건물들은 지진규모 6.0 에 대비하여 설계된다. 이런 지진 규모는 평균 재현주기 2400년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현재 2층 이상의 건물의 내진 설계에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건물의 특성별로 지진시의 손상 정도를 세분하여 달리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안심해도 되는, 반석처럼 믿을만한 기준인 걸까?

 
과학 철학 분야에서는 실재주의와 반실재주의가 대립하고 있다.
실재주의란 과학이 개인의 의식이나 입장을 떠나 객관적으로 자연현상을 파악하고 보여준다는 주장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과학에 대하여 이런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과학은 객관성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기 까지 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무언가를 연구해서 규명한 것은 불변의 진리로 오인하게 되곤 한다. 그러나 반 실재론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뉴턴에서 아인쉬타인으로의 전환을 예로 들면서 과학이 객관적 실재를 완전히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시대에 가장 유효한 방식으로 현상을 설명할 뿐이라고 말한다. 쿤은 ‘패러다임’ 으로 이런 것을 설명한다. 현재는 이 두 가지 과학 철학이 옥신각신하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 우리 내진 규준에서 적용하는 규모 6.0에 2400년 재현주기의 기준은 정말 믿을 만할까? 아마도 대체로 믿을 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권위 있는 기관들이 여러 가지 데이터를 분석해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권위를 믿은 거지 객관적 사실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말로 연구자의 입장, 패러다임을 떠나서 온전히 객관적인 결과를 추출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지층형성에 관해서 동일과정설과 격변설이 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지구가 탄생한 뒤로 우리나라의 지진을 직접 측정한 자료는 없다. 그저 간접적 데이터만을 갖고 이론을 적용할 뿐이다. 설령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갖고 있다해도, 그 데이터를 해석하는 연구자의 패러다임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권위 있는 조사와 연구기관을 통해서 세워진 기준도 반석 위에 세운 것처럼 단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계 무역 센터(World Trade Center, WTC)는 9.11 테러로 인해 2001년 9월 11일 아침 붕괴되었다. 엄청난 소음과 분진 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때 그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현실감이 없었다. 영화 속 장면이 현실로 끌어내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110층짜리 초고층 빌딩은 20세기 최고 기술력들의 총합으로 지어졌고 여러 가지 재난의 상황에 대해 나름 장치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화재에 대해서도 대비가 되었음에도 이 건물은 비행기 테러 2시간의 화재로 인한 구조부재의 이상 발생을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전문가들도 이런 상황을 대비한 시뮬레이션은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최고의 전문가들의 경험과 사고의 범주에 이런 사고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에 닥친 재난 또한 그러했다. 그 때에도 전문가들은 안전을 확신했고 일본 국민들은 그것을 믿었다. 리히터규모 7.9의 강력한 지진을 감당하도록 설계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쓰나미가 닥쳤고 원자력 발전소는 망가져버렸다. 일본 국토의 절반 이상을 오염시켰고 태평양 바다도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다. 일본 정부가 쉬쉬하는 가운데 일본 국민들은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원전이 망가져버린 후에도 과학자들, 혹은 공학자들은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안전 기준을 제시했다. 방사능 허용 기준치가 1미리 시버트에서 20미리 시버트로 20배 높아진 것이 대표적인 변화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20배나 올랐을까? 원자력 발전소를 설계 할 때 그 기준들은 여러 학자들의 조사 연구를 통해서 확립된 것이었지만 발전소는 자연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었다. 국내 원전 설계 기준은 당연히 일본보다 약하다. 우리나라의 지진 기록들과 지질학으로부터 그러한 결론이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하다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가끔씩 등장하는 우리 원전의 고장 소식은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든다.

 
규모가 커지면 관련되는 변수들이 지수 함수적으로 늘어나는 것 같다.
그 안에는 공학적 문제 뿐 아니라 문화적 변수까지 포함이 되어 신뢰성 있게 안전을 확신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규모가 커지면 거기에 적용되어야할 상황들은 전문가들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고 분야별 소통의 문제들도 커진다. 과학자나 전문가들은 그저 자기 분야로 한정된 지식과 경험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소통의 부재는 건설 현장에서도 자주 부딪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구조부재에 전선관을 묻어서 콘크리트를 타설하게 되면 부재는 당연히 강도가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것은 애초에 설계와 반영되지 못한다. 반영 못하는 이유는 공학적 문제 때문이 아니다. 소통을 할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다. ‘규모 6.0, 2400년 주기’라는 기준도 그 객관적 신뢰성이 의문 속에 있게 되는데, 그 기준으로 설계한 건물의 시공 상태는 이러저러한 문제들 때문에 안전에서 한걸음 더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서울에 설계 기준 규모의 지진이 오면 어떻게 될까 ?
앞에서는 일반적인 이야기로 좋은 지반 위에 세운 새로운 건물이 안전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누구도 결과를 확신 할 수 없다. 건물의 수명으로 보는 50년 정도의 기간에 설계 기준을 넘어서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데이터는 한정적일 뿐이다. 우리는 그저 안전의 문제 앞에 자신감 보다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과학적 고찰이나 전문가의 판단은 사고에 대한 확률은 낮춰줄 수는 있지만 100% 보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전에 대해서, 해양 안전에 대해서, 건설 현장과 공장의 안전에 대해서 좀 더 겸손한 자세로 그것을 바라보았다면 어떠했을까? 안전에 대한 자신감이 재앙의 첫 발 자국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경도 교만을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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