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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문재인 정부의 2017년 세법 개정안, 진짜 의미는?

정초원(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

“부자증세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복지 재원은 중산층을 포함해 국민 모두가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분담하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

 
“시민이 모두 납세의 의무를 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조세저항의 두려움에 뒤로 숨지 말고 설득과 합의를 통해 ‘보편증세’의 길로 한걸음 더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위의 인용문은 지난 2일 문재인 정부의 첫 세법 개정안이 발표된 뒤에 나온 주요 언론사 사설의 일부이다. 대체로 ‘보편적 증세’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논조가 동일한 것을 보니 위 두 인용문은 같은 신문의 내용일까? 아니다. 전자는 조·중·동과 더불어 보수언론의 하나인 매일경제이고, 후자는 진보언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경향신문이다. 
 
하여튼, 색깔이 완전히 다른 두 언론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가히 신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보수집단이 ‘감세와 작은 정부’를, 진보집단이 ‘증세와 큰 정부’를 주장하며 대립해왔다는 점에서 이 현상은 뭔가 이상하고 특이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제부터 그 이유를 차분히 살펴보자. 먼저, 이 논의를 만들어 낸 문재인 정부 세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세금의 원칙에 입각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금의 역할과 원칙, 제대로 이해해야 
 
세금이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조성한 공동 자금이다. 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거의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들을 개별적으로 조달하기 보다는 공공의 자금을 만들어 공동으로 조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런 목적 하에 공동 자금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조세 제도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세금을 낸다. 
 
일반적으로 이상적인 조세 제도는 능력에 따라 부담해야 한다는 형평성, 경제적 왜곡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중립성을 원칙으로 한다. 형평성의 원칙은 부담 능력이 높은 사람은 그만큼 사회적 제도로부터 혜택을 많이 입은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통한 소득재분배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중립성은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조세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담배나 술의 소비와 같이 소비 억제를 위한 죄악세의 경우, 과세에서 얻는 장점과 경제 주체들의 소비 선택의 왜곡이라는 단점을 철저히 비교해서 결정해야 한다(윤영진. 2012. 「복지국가 재정 전략」. 대영문화사. p297).   
 
2017년 세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이번에 발표된 세법 개정안의 주요 목적은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분배를 개선하겠습니다.’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소득재분배와 좋은 일자리의 창출’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지난 대선 때 약속했던 공약의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에도 초점을 두고 있다. 
 
먼저 고소득 개인과 법인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연 소득 3억 원, 5억 원(과세표준 기준)을 초과하는 고소득자에 대해 소득세율을 각각 40%, 42%로 각각 2%p씩 인상했다. 그리고 연 소득 2,000억 원을 초과하는 대기업에 대해서도 현행 22%에서 25%로 법인세의 세율을 인상했다. 그간 20%의 세율이 적용되던 대주주의 주식 양도소득에 대해 25% 구간을 신설했고, 납부 대상인 대주주의 범위도 단계적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또, 대기업들이 자회사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세금 납부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처럼 법정 명목세율을 높임과 동시에 그간 대기업들과 고소득자들이 많은 혜택을 보았던 비과세·감면 제도는 축소했다. 대기업의 R&D 세액공제 및 이월결손금 공제 한도가 축소되었고, 설비투자세액공제도 축소되었다. 고배당 기업 주주에 대한 특례 등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특례도 정비되었다. 
 
반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지원 제도는 강화되었다. 저소득 가구를 위한 근로·자녀장려금 지급액을 늘리고 월세 세액공제율을 인상했다. 0~5세 대상의 아동수당(월 10만 원)을 신설하고 중증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비 세액공제를 확대했다. 연소득 7,000만 원 이하 근로자가 도서 구입 및 공연 관람에 지출한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확대하여 문화생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다. 
 
다음으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지원은 늘어났다. 투자 여부에 관계없이 고용을 늘릴 경우 1인당 일정 금액(700만~1,000만 원)을 공제하는 고용증대세제를 신설하고 중소기업의 사회보험료 세액공제를 확대했다. 직전 3년 평균임금 증가율을 넘어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를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기업에 대한 세액 공제액을 7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확대했다. 창업·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창업기업에 대한 추가적인 세액공제를 만들었다. 이런 여러 가지 세제 개편을 통해 정부는 연간 5.5조 원의 추가 세수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2017년 세법 개정안, 어떻게 볼 것인가? 
 
공공 자금인 세금의 역할에 비추어보면 소득재분배와 일자리 창출에 목적을 둔 정부의 세법 개정안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난 수십 년 간 역대 정부들은 법인세를 줄이고 대기업 및 고소득자에게 편중된 비과세·감면 제도를 실시했다. 그 결과, 조세 제도가 형평하지 않게 운영되는 결과를 야기했던 것이다. 또한 실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의 인상 및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인센티브를 두어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 한다는 점에서 목적 자체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이번 세법 개정안에 담긴 수단도 적절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고소득 개인과 법인에 대한 명목세율 인상 
 
우리나라의 소득의 양극화는 극심하다. 지난 2월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상위 1% 계층이 국민의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나날이 증가하여 2015년 기준으로 14.2%를 기록해 역대 최고라고 한다. 소득상위 10%의 비중 역시 매년 높아져 48.5%에 이른다. 비중으로 따지는 상대적 비교를 떠나 절대적 비교를 해도 마찬가지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소득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2016년 월평균 소득은 144만7천 원으로 전년 대비 5.6% 감소한데 비해, 소득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834만8천 원으로 전년 대비 21%나 증가했다. 특히 소득 최하위 계층의 소득 감소폭이 가장 크다고 한다. 자산의 양극화는 더 심각하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상위 0.47%가 가계 총 금융자산의 16.3%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산업은행 발표에 따르면, 대·중견기업의 설비투자 규모는 매년 늘어나는 반면, 중소기업은 계속 감소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임금격차이다.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퇴직연금이나 육아휴직 같은 노동조건의 간극은 더 크다. 대기업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거의 90%에 이르지만, 중소기업의 도입률은 15.3%에 그쳤다. 대기업의 육아휴직 도입률은 93%인 반면, 중소기업은 53%에 불과하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고소득 개인 및 법인의 소득 비중이 너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세율은 1993년 이후 9번이나 인하되었다. 특히 1982년~2016년까지 기업의 과세소득은 125배 늘었으나 법인 세수는 66.7배 오르는 수준에 그쳤다. GDP 대비 기업소득의 비중이 5배 증가하는 동안 법인세 비중은 2.3배 오르는 데 그쳤다는 통계도 있다(경향신문, 2017년 7월 27일자, “법인세 깎아준 9년, 대기업 ‘성장과실’만 챙기고 ‘국가기여’는 줄어”)
 
이런 상황 속에서 고소득 개인과 법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명목세율의 인상은 누진적 과세를 통해 소득의 격차를 줄일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이 되어 다시 복지를 통해 서민·중산층의 주머니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한 번 더 재분배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기 이루어진 2%의 법인세 인하 효과가 투자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에 이루어질 법인세의 인상이 보수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투자 축소를 초래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② 비과세·감면 제도를 통한 서민·중산층 지원 
 
일자리 창출 및 서민·중산층에게 적용되는 세법 개정안은 주로 공제를 늘리고 감면을 확대하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담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면서 가처분 소득을 늘린다는 점에서 그 의도는 존중할 만하다. 하지만 비과세·감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특히 근로소득자의 절반이 근로소득이 낮아 면세자인 상황에서 비과세·감면 제도로 인해 혜택을 볼 수 있는 저소득 근로자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비과세·감면을 통한 지원은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즉, 소득이 많아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일수록 공제 및 감면제도를 통해 혜택을 받는 소득액이 큰 것이다. 따라서 소득의 재분배 차원에서 간접적으로 형평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특히, 비과세·감면 제도의 효과는 연말에 공제나 환급액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당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시기와 혜택이 적용되는 시기 간의 불일치가 발생하면서 경제 주체들의 선택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비과세·감면 제도가 많아질수록 조세 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등 행정상의 문제도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유럽 복지국가들에서는 비과세·감면을 통한 조세 정책보다는 재정 사업을 통해 복지 정책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③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는 공약 이행을 위해 178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계했다. 이 중에서 국세 세입의 확충을 통해서는 77.6조 원을, 특히 세제 개편을 통해서는 11.4조 원을 달성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시민단체들이 지적했듯이 필요한 재원의 크기에 비해 세제 개편을 통해 달성하겠다는 액수가 너무 작다. 이는 보편적 증세를 비롯해 증세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주문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2017년 세법 개정안,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세법 개정안은 장점과 단점이 뒤섞여 있다. 고소득자·대기업 과세 강화를 통해 소득재분배라는 목적을 달성하면서 조세 제도의 형평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비과세·감면 방식을 통한 지원은 중립성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공약에 비해 이 정도의 증세는 미약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세 제도의 형평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조세 제도 자체의 지속 가능성과도 관련이 깊다. 지난 보수 정권을 거치는 동안 납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상당히 악화되었다. 올해 초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국민 납세 인식 조사에 따르면, ‘가능하면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고 응답한 비중이 2012년 24.6%에서 2015년 42.7%로 약 두 배나 상승했다. 
 
심지어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서 내고 싶지 않다는 응답의 비중은 6.2%에서 10.2%로 늘어났다. 본인이 납부한 세금과 비교해 정부로부터 받은 혜택의 수준에 대한 응답에서 ‘낮은 수준’으로 보는 인식이 약 70%였다. 그리고 조세 제도의 형평성에 불만을 가진 응답자의 비율은 82%였다. 이런 응답 내용에 비춰보면, 우리 국민의 세금에 대한 인식은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두 번의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국민의 세금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악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높은 지지를 받는 정부라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당장 보편적 증세를 이끌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이번 세법 개정안의 가장 큰 의미는 조세의 형평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고 조세 제도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의 부를 더 많이 가져가는 측이 세금을 더 부담하고 있음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장차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보편적 증세 논의를 가능케 할 디딤돌의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실 거주자 중심의 부동산 시장 개편 등은 기득권층이 아닌 보통사람들을 중심에 놓은 국정의 운영이라는 점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여러 정책들의 혜택이 체감되면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조세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보수 언론들조차도 보편적 증세의 필요성과 더불어 조세 정의를 거론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가는 데 필요한 증세 논의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증세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 국민들의 촛불 혁명에 기인한 것처럼 세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개선된다면, 그리고 복지의 혜택이 체감되어 국민들의 증세 요구가 공론으로 일어난다면 얼마든지 증세는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세법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기획재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들의 의견(233건)을 모아서 이것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의 조세 정책이 국민들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앞으로 진행될 증세 논의 역시 우리 국민들의 의사와 공론에 달려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증세에 대한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결정하며 나아가는 것보다는 차근차근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면서 단계적으로 전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느끼고 싶은 것은 이번 정부가 지난 두 차례의 보수 정부들처럼 내 세금을 자기들 지갑 속에 넣거나 또는 함부로 낭비하고 탕진하는 정부가 아니라 소중한 공동 자금이 제대로 걷히고 쓰이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신뢰일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끝내 국민행복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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