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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법상 노동자이고 싶다!

김진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노무법인 벽성 대표)

툭툭 여기저기 오토바이들이 튀어나온다. 한쪽 손의 휴대폰을 연신 힐끔거리며 라이더는 곡예를 하듯 차선을 넘나들며 쏜살같이 차량 사이를 빠져나간다. 스릴을 즐기는 동호회 풍경이 아니다. 위험천만한 도로가 곧 직장이고, 속도가 수입이자 계약 조건인 배달 노동자들의 근무 현장이다. 급속한 기술 발달은 노동과 고용의 형태와 성격까지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노동이 그 중심에 있다. 직접 대면해 거래하던 개별 소비자과 판매자 사이를 대신 연결하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들이다. 물론 연결의 주체는 플랫폼 사업자들이고, 이들은 사업자 지시를 따르는 단순 배달자들이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법은 노동자 개념을 두 가지로 정의한다. 하나는 사용자와 근로계약 당사자로서의 지위인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다. 다른 하나는 헌법상 결사의 자유에 기반 한 노동3권 주체로서의 노동자, 즉 자주적으로 단결할 주체로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상 노동자다. 약 220만 명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지의 여부는 종종 사회적 쟁점이 되어 왔다. 반면 노조법상으로는 노조법, 교원노조법, 공무원노조법이 결사의 주체로서의 노동자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ILO 협약 중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아 EU와 무역 분쟁이 되고 있는 부분은 결사의 자유(제87호·제98호)와 강제노동 금지(제29호·제105호)의 4개 부분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핵심 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노동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특히 제87호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은 법외노조 상태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법내 노조화를 위해 6년간 끌어온 소송과 관련된 조항이다. 국내법은 노동조합 설립 주체인 노동자의 자격을 ‘현재 근로 계약 관계에 있는 근로자’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한 전교조는 이 ‘현직 근로자’ 요건을 위반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노동자 개념의 확대로도 오래 시끄러웠던 만큼, 급증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재정립해갈 것인지는 더욱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전체 취업자 수의 8.2%에 이르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왜 문제가 된 것일까? 택배, 음식 배달, 퀵서비스 배달, 지입차주 운전자(유치원 차량, 래미콘) 같은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차량이나 운송 수단을 소유했다는 점만으로도 사업주로 분류되곤 한다. 이 외에도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캐디, 방과 후 교사, 대리운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여전히 노동자가 아닌 채 수년 혹은 수십 년간 방치되고 있다. 노동자가 아니라니? 실질은 노동자이지만 근로기준법(또는 노조법)이 정한 노동자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형식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 정부가 30일 발표한 노동법 개정안에도 특수고용, 간접고용 노동기본권은 누락되었으며,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취약 노동자일수록 보호하지 못하는 노동법

법은 그 사회를 유지·존속시키기 위해 작동하는 보편적 규범이다. 노동법은 노동자와 사용자 간 경제적·사회적 힘의 불균형을 보완하기 위해 제정된 보다 진보된 법률이다. 따라서 상대적 약자의 지위임을 전제하는 노동법상 ‘노동자’ 개념은 노동 환경의 시대적 변화에도 본질적으로 유지되어야 마땅하다. 반면 노동자임을 판단할 ‘노동자성’(법적 용어는 근로자성)은 노동 환경의 변화를 반영해 변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개념인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자’의 ‘사용종속 관계’를 판단함에 있어 형식적 계약 내용보다 구체적·실질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과 같다.

한편 노조법상 노동자는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제2조 제1호)’로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요건보다 넓게 해석한다. 그러나 ‘해고된 자, 실업자’를 조합 가입 범위에서 제외시키고 있어(동조 제4호) 사실상 헌법상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며 ILO의 협약에도 위반된다. 이를 반영해 정부는 협약 비준과 함께 법 개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집배원 사망 170명, 산업재해 사망률 OECD 1위, 반도체 종사자들의 각종 암 발생·사망,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발생하는 무시무시한 사건들은 노동 현장을 늘 긴장시킨다. 특히 관리되지 않은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최소한의 안전망도 갖추지 못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은 그저 개인들의 문제일 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개인들 영역으로 방치되고 관리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들은 더 많은 사회비용을 야기하면서 산업 기반까지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취약한 지위의 노동자 보호라는 노동법 취지대로라면 이들은 우선적 보호 대상이 돼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들 취약한 지위의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은 오히려 각종 의무(안전 배려 의무, 사회보험 가입 의무 등)가 면제되고 있으니, 비용 절감 방안인양 악용되기까지 한다.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 허구적 논리가 자본에게 각종 면죄부를 쥐어주고 있는 셈이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오랜 기간 스스로 노동자임을 호소해 왔다. 사업주로부터의 일방적 계약 해지와 부당한 처우에도 이들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부터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관문을 뚫어야 비로소 부당한 상황을 호소할 수 있으니, 이들에게 노동법은 보호법이 아닌 장벽인 셈이다. 22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된 지금도 우리의 노동법은 여전히 근로자성 타령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시급한 인식 전환, 방향은 법의 제정 취지에 있다!

그럼에도 학습지 교사, 택배 노동자들의 노조법상 노동자성이 일부 판례로 형성되고 확대되는 추세지만 실질적 보호의 근거가 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서의 지위는 여전히 멀어 보인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종속 관계’ 하에 고용된 노동자만을 구제하기 때문이다. 즉 구체적 지휘감독 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누구도 보호받을 수 없다. 노동자성을 재설정하지 않는 한, 사각지대의 노동 문제도 풀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도 법은 늘 시대 변화와 함께 진보해 왔음을 믿어야 할까? 노동법 역시 시민법 원리인 계약 자유의 원칙, 소유권 절대의 원칙을 수정하는 데서 시작했으니 말이다. 실질적 불평등이 고려되지 않는 시민법 원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대로 작동했다면 노동자들은 고대 사회의 노예보다 못한 지위로 전락했을 것이며, 이는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노동법이 가야 할 방향과 근거는 무엇일까? 바로 법의 ‘목적’이다. 사실 법률의 ‘목적 조항’은 선언적 의미의 포괄 개념으로 취급받지만 법이 나가야할 분명한 방향이 담겨 있다. 모든 법률이 고유한 목적에 따라 제정되듯 노동법 역시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제1조에서 ‘이 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한다.’고 명시한다. 즉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의 보장과 향상’을 법의 목적으로 한다. 1953년 제정된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은 이 선언적 의미를 실현하며 꾸준히 개정을 거듭해 왔다. 노조법도 제1조에서 ‘노동자의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보장으로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법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물론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부분적으로나마 노조법상 노동자의 지위를 획득하기까지 노동 환경의 변화 등 사회 현실도 중요하게 작용해 왔다. 이처럼 법은 시대 흐름을 반영하며 꾸준히 보완되고 정교화 된다.

그러나 정작 이 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법이 인정하는 노동자의 모습부터 갖춰야 한다. 현실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근로기준법은 급속히 성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관계, 노동자 개념을 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미 앞서서 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따라가지도 못한다면 법이 그 목적을 실현해낼 수 있을까? 최근 노동법 개정 방향과 법 운영에서 드러난 인식의 경직성은 법 취지를 훼손할까 염려스럽다.

먼저 산업재해의 과로사 조건을 합법적으로 보장하게 되는 역행성에도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확대하려는 개정 움직임이 그렇다. 또한 최저임금위원회가 2020년 최저임금을 2.9%로 결정하면서 어떤 산출 근거도 설명하지 못했다는 사실 역시 기계적인 법 운영의 극치라 할만하다. 최저임금법은 법 제4조에서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보면 법의 취지는 간데없고 마치 저가 경매물이 낙찰되는 경매 시장을 연상시킨다. 인간 삶의 기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초라했다. 노사 당사자들 간 이견을 서둘러 봉합하는 데만 급급했던 경직적 인식에서 법은 그저 이해당사자들 간 싸움의 도구일 뿐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방치되는 근로관계, 방치되는 사회비용은?

최근 퀵서비스, 배달 기사, 대리 기사 등 플랫폼 기반 노동의 증가와 함께 이들의 노동 환경, 임금 등 근로관계는 물론 인권 문제까지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플랫폼 사업자로부터의 과도한 수수료 착취에도 무방비 상태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이미 전체 취업자 수의 8%를 넘었고 플랫폼 기반의 노동자만 55만 명에 이르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불안정한 지위에서 발생되는 문제는 개인의 고통과 함께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이들의 위치가 법적·사회적으로 시급히 안정되어야 하며, 그러려면 사회적 책임 관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위험한 근로 환경의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 관리 의무의 주체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관리의무 불이행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둘째, 일반 사업장과 달리 노동 인격체로서 규제를 받지 않는 이들의 근로 조건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의 문제다. 셋째 사용종속 관계가 불분명한 이들이 소비자와 판매자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누가 책임질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게다가 플랫폼 기업들이 기존 시장을 재편하면서 나타나는 법 밖의 노동 형태는 기존의 산업 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 용역이나 도급화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스스로 성과를 관리하도록 법망을 피해가는 사례들은 백화점 등 매장 관리자, 이·미용업 종사자, 전산 개발자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확대되고 있다. 이런 식의 특수고용 노동으로의 확장은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아무 거리낌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법 현실은 여전히 구시대적 기준에 머물고 있다. 유사노동자라는 대안 없는  잣대는 위험한 노동 현장의 책임과 사회보험 등 안전망 비용까지도 개인이나 사회로 떠넘겨도 되는 기준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본이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플랫폼 기반의 노동자들은 기술 기반의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음에도 기술에만 주목하는 사회 분위기가 실상을 가리기 때문이다. 새 시대의 노동자성이 반영된 새로운 노동 형태를 담아낼 법 개정이 시급하다.

디지털 사회의 노동자를 담아낼 노동법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디지털 기반의 공유 경제 사업으로 이미 한바탕 몸살을 앓았고, 그 과정에서 택시 노동자들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길거리가 직장인 음식 배달, 택배, 대리 기사 노동자들이 과로로 사고를 당해도 책임질 주체가 없다. 그뿐인가. 소비자와 음식점을 중개하는 플랫폼 기반의 음식 배달 서비스 과정에서 위생 문제 등 각종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의 책임인지, 누가 규명해야 하는지도 모호하다. 비대면 매매 행위로 발생되는 새로운 형태의 문제들이다.

급변하는 노동 환경에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를 보호하려면 국가든 자본가든 분명한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이런 준비와 노력이 지연될수록 노동자의 삶은 망가질 수밖에 없고 노동법의 취지도 퇴보하게 된다. ‘근로기준법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거나 ‘노동 자유 계약법을 만들겠다’는 등의 노동법 제정 취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보수야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노동법 개정의 험난함을 예고하고 있다.

ILO 비준 문제로 불거진 우리 사회의 노동법 개정 작업이 노동계와 경영계로 나뉘어 또 한바탕 홍역을 치룰 태세다. ILO 기준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대신 단체협약 유효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한다거나 쟁의행위 시 사업장 내 생산 및 중요업무 시설의 점거 금지 등 협약과 무관한 내용들이 법 개정을 둘러싸고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듯 끼어드는 모양새다. 그마저도 노동에 대한 기본적 인식조차 부재한 보수야당과 어찌 굿판을 치러낼 지 걱정이 앞선다. 어쨌거나 노동자를 걸러내는 법이 아닌, 노동자를 포용하는 법률 개정이 지금의 불안정한 노동자들에게 너무나 절실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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