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 경영 일선 후퇴를 공식화한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총수의 법적 책임을 줄이면서 실질적인 지배력은 유지하려는 이른바 ‘그림자 경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20일 조 회장이 등기이사직을 사임한 이후 형식상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화했다는 평가와 함께, 총수의 법적 책임 범위를 줄이면서도 지배력은 유지되는 구조가 정비됐다는 분석이 공존한다.
일부 투자자와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이번 사임이 단순한 인적 교체를 넘어, 이사회 구성·보수 체계·책임 구조 전반을 재정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조 회장 사임 이후 그룹 핵심 경영진은 조 회장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인사들로 재편됐다. 박종호 사장은 조 회장 사퇴 당일인 2026년 2월 20일부로 지주사 한국앤컴퍼니의 단독 대표이사에 선임돼 그룹 전반을 총괄하고 있으며, 안종선 사장은 2025년 3월부터 핵심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공동 대표이사로 경영을 맡고 있다.
이들 모두 과거 조 회장 재임 시절부터 주요 보직을 수행해 온 인물로, 업계 일각에서는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연속성 인사”라는 평가와 함께 “전문경영인 체제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독립성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미등기 임원의 경우 법적 책임 범위가 등기이사보다 제한적인 만큼, 향후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 귀속의 명확성이 중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사측이 추진 중인 ‘2026 주니어보드 5기’ 역시 평가가 엇갈린다. 회사는 이를 MZ세대와의 소통 강화, 조직문화 혁신의 일환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만 회사 공식 자료에서 조현범 회장의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혁신의 출발점”이라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총수의 영향력이 조직 전반에 여전히 반영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기수에는 인수 기업인 한온시스템 소속 직원들도 포함돼, 그룹 차원의 통합 메시지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인수 이후 조직 융합을 위한 상징적 프로그램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전문경영인 체제 하에서의 권한 분산 여부는 향후 운영 방식에 따라 평가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조직 운영 전반에서 총수의 영향력 범위를 둘러싼 해석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사회 책임 구조를 둘러싼 제도적 변화 역시 같은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26일 열린 제14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핵심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최근 1년간 받은 보수액의 일정 배수로 제한하는 정관 변경안을 의결했다.
개정된 정관(제39조의2)에 따라 회사는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 중 최근 1년간 받은 보수액의 6배(사외이사 3배)를 초과하는 부분을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이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나, 경업금지·회사기회유용금지·자기거래금지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이러한 면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장 일각에서는, 총수 관련 법적·경영 리스크가 상존하는 기업일수록 이사회의 책임과 견제 기능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며, 책임 초과분을 사전에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사 책임 감경 조항 신설 안건(제2-6호)은 주총에서 반대·기권 비율이 16.3%를 기록해, 다른 정관 변경 안건들(제2-1호~제2-5호, 0.1~0.2%)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반대율을 보이며 이사회 견제 기능 약화와 거버넌스 후퇴 우려를 키웠다.
이처럼 이사회 책임 범위가 제한되는 가운데, 조 회장의 보수 규모를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3민사부(부장판사 송인권)는 지난 1월, 조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형 조현식 전 한국앤컴퍼니 고문이 제기한 주주총회 결의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조 회장이 이해관계인임에도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 상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공시에 따르면 조 회장은 최근 3년간 한국앤컴퍼니에서만 약 140억 원의 보수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2023년 약 47억 700만 원, 2024년 약 47억 1,700만 원, 2025년 약 45억 3,700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 2025년 기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서 받은 보수까지 합산할 경우, 조 회장의 연간 총보수는 약 93억 원에 달한다.
지난 3월 26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한국앤컴퍼니 주주연대는 ‘조현범 이사 보수 0원’ 안건을 주주제안으로 제출했으나, 조 회장이 2026년 2월 20일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하면서 해당 안건은 ‘회사가 실현할 수 없는 사항’으로 판단돼 주총 안건에 상정되지 않았다. 주주연대가 제기한 의안상정가처분 신청도 이후 취하됐다.
회사는 보수 산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25년 12월 2일 이사회에서 보상위원회 설치를 결의하고, 같은 달 29일 이상훈 사외이사를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보상위원회가 설치되기 전에 이미 조 회장이 최근 3년간 한국앤컴퍼니에서만 약 140억 원의 고액 보수를 수령한 뒤였다는 점에서 실효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사 책임 제한 조항 신설과 고액 보수 논란이 맞물려 있는 만큼, 지배구조 개선 의지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영 투명성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 회장이 미등기 임원으로 전환한 만큼, 등기이사에게 적용되는 개인별 보수 공시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어 보수 집행의 투명성 확인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주와 시장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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