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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사진=HD현대중공업)
사회

1차 입찰 깬 현대중공업의 ‘보이콧’… ‘전략적 기권’인가 ‘안보 발목잡기’인가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사진=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사진=HD현대중공업)

대한민국 해군의 차세대 함정 건조를 위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의 1차 지명 경쟁입찰이 HD현대중공업의 불참으로 유찰된 가운데, 방위사업청이 즉각 재입찰 공고를 내고 후속 절차에 착수했다. 방산 대기업 간의 법적 공방과 전략적 셈법이 맞물리면서 총 사업비 7조 원 규모의 국책 전력화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심화하고 있다.

19일 방위사업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당초 방사청은 지난해 12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통해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방식을 기존 수의계약에서 경쟁입찰로 확정하고 올해 3월 입찰 공고를 냈다. 이어 지난 5월 14일 제안서 제출을 마감했으나, HD현대중공업이 입찰 참가 등록을 하지 않아 한화오션만 단독 응찰하면서 1차 입찰은 자동 유찰됐다.

방사청은 1차 유찰 직후인 지난 5월 18일 신속하게 재입찰 공고를 게재했다. 이번 재공고에 따른 입찰 참가 등록 마감은 5월 28일이며, 제안서 제출 마감은 5월 29일로 예정됐다. 방사청은 오는 7월 사업자 선정을 마무리하고 2032년까지 선도함을 해군에 인도하겠다는 기존 일정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KDDX 사업은 총 사업비 7조 439억 원을 투입해 선체와 전투체계를 모두 국산화한 6천000톤급 이지스 구축함 6척을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대형 국책 프로젝트다. 대한민국 해군이 추진하는 ‘대양해군’ 및 ‘스마트 네이비’ 건설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그러나 2023년 기본설계가 완료된 이후 상세설계 사업자 선정을 두고 기업 간 대립이 이어지면서 2년 넘게 후속 사업이 지연돼 왔다.

HD현대중공업이 밝힌 1차 입찰 불참 사유는 ‘사업 조건의 현실성 부족에 따른 경영 리스크’다. 회사 측은 3년 전 기본설계 당시 가계약 기준으로 책정된 사업비(선도함 기준 8천820억 원)가 원자재 가격 및 인건비 상승분 가중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조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기존 전제 조건이었던 공사 기간(76개월)보다 5개월 단축된 71개월로 사업 기간이 설정된 점을 지적하며, 기술적 부담과 수행 리스크를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 제반 여건 분석 시간이 추가로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쟁사인 한화오션과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향후 진행될 2차 입찰에는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점을 두고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1차 입찰에서 경쟁사의 제안 가격과 세부 전략 등 이른바 ‘패’를 먼저 파악한 뒤, 뒤이어 열리는 2차 재입찰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적 기권이자 ‘보이콧’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이에 대해 HD현대중공업 측은 공식적으로 “자사 경쟁력이 발휘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경제성, 수행 리스크, 사업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별적으로 입찰에 참여한다”는 경영 원칙에 따른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양사 간 갈등은 이미 법정 공방으로 번진 상태다. KDDX 사업에서 개념설계는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각각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22년 11월 HD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이 한화오션 측의 개념설계 자료를 불법 촬영·유출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며 갈등이 심화했다.

최근에는 HD현대중공업이 경쟁입찰을 앞두고 “기본설계 자료에 자사의 영업비밀이 포함돼 있다”며 방사청을 상대로 ‘한화오션 자료 제공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월 8일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해당 자료가 계약 목적물로 납품된 것이고 이미 제공이 완료돼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15일 법원의 기각 결정에 불복해 항고장을 제출했다.

법적 공방과 별개로, 사업자 선정 평가 기준을 둘러싼 ‘보안 감점’ 문제도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했다.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은 지난 13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KDDX 사업의 공정한 집행과 노동자 생존권 보호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19일 밝혔다. 탄원서에는 함정·중형선 사업부 소속 노동자 2,800여 명의 서명이 담겼다.

노조는 “2022년 유죄 판결과 관련한 보안 사고는 이미 사법부 판단과 행정 처분을 거쳤음에도, 방사청이 최종 유죄 선고 시점을 기준으로 추가 보안 감점을 적용하면서 공정성 논란이 재점화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안을 단순한 기업 간 이해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고용 불안과 지역경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 판단에 반영해달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특수선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두 업체는 독자적인 연구개발과 함정 설계 실적 등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정조대왕함 등 이지스함 건조 실적과 병력 절감형 함정 최적 설계 기술을, 한화오션은 개념설계 경험과 잠수함 건조 역량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전문가들과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과도한 대립이 안보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냉전 기조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핵심 안보 사업의 전력화 시기가 대기업 간의 소송전과 입찰 전략 싸움으로 인해 지연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정부 차원의 명확하고 단호한 중재를 통해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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