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PC 투자로 빚 2조 늘었는데 부채비율 500% 허용
정몽준 26.6%·정기선 6.12% 지배 구조 정점에…사채 부담은 HD현대오일뱅크와 투자자 몫
(뉴스필드) 진용준 기자 = 7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순차입금과 항소심에서도 이어진 전직 경영진의 실형 선고, 여기에 천문학적 과징금 부담까지 겹치며 사면초가에 몰린 HD현대오일뱅크가 이번에는 수천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 숨통을 틔우는 데 나섰다.
HD현대오일뱅크는 채무 상환을 위해 총 2,500억 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하고 시장 자금 조달에 착수했다. 수요예측 결과를 반영해 당초 계획했던 1,500억 원에서 발행 규모를 1,000억 원 늘렸지만, 영업적자 지속과 급증한 부채 부담 속에서 ‘빚으로 빚을 막는 구조’라는 우려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특히 매출의 절반가량을 내부거래로 떠받치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자리하고 있어, 경영 실패의 부담은 회사와 투자자에게 전가한 채 책임은 비켜서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는 오는 12일 채권 시장 상장을 목표로 총 2,500억 원 규모의 제132-1회 및 제132-2회 무보증 공모사채 발행을 확정했다.
당초 1,500억 원을 모집할 계획이었으나, 수요예측에 자금이 몰리자 만기 도래 채무 상환을 위해 발행 규모를 1,000억 원이나 대폭 증액 결정했다. 빚을 갚기 위해 더 큰 빚을 내는 ‘차입금 돌려막기’의 규모를 키운 셈이다. 이번 사채는 금융기관의 보증이 없는 ‘무보증’ 상태로, 회사가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할 경우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가 떠안아야 한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회사가 제시한 재무 약정 조건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사채관리계약을 통해 ‘연결 부채비율 500% 이하’ 유지를 약정했다. 보통 우량 기업들이 200%를 기준으로 관리하는 것과 비교하면, 500%라는 기준은 사실상 재무 상태가 파탄 직전까지 가도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항복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미 부채비율이 220%를 상회하고 1,760억 원의 과징금에 대해 20개월 분할 납부와 행정심판 청구로 당장의 지급은 미뤘으나 막대한 현금 유출 부담은 여전한 상황에서, 이 약정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 ‘연간 흑자’ 착시 뒤엔…3분기 영업적자·7.5조 빚더미의 민낯
실제로 HD현대오일뱅크의 재무 성적표를 뜯어보면 ‘연간 흑자 전환’이라는 헤드라인 뒤에 가려진 처참한 민낯이 드러난다. 지난해 3분기 말 연결 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9.9% 감소한 20조 9,949억 원에 그쳤고, 영업이익은 -190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요 회복 지연 직격탄을 맞으며 매출총이익률은 2.55%까지 추락했다. 4분기 반짝 실적으로 연간 흑자를 맞췄으나, 정제마진 의존도가 높은 사업 구조상 언제든 다시 적자의 늪에 빠질 수 있는 ‘살얼음판’ 수익성임이 증명된 셈이다.
이처럼 불안한 수익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이다. 3조 4천억 원을 쏟아부은 HPC(중질유 복합석유화학시설) 설비 투자는 수익 대신 차입금 폭증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왔다. 2021년 말 5조 7,238억 원이었던 순차입금은 2022년 6조 9,390억 원, 2023년 7조 5,042억 원으로 급증했고, 2025년 3분기 말 기준 7조 5,166억 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부채비율 역시 2021년 말 217.8%에서 2024년 235.97%까지 치솟았다가 2025년 3분기 226.8%로 소폭 감소했으나, 여전히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3.4조 원을 투자하고도 이익률 2%대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는 동안, 빚은 5년 새 2조 원 가까이 늘어난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 매출 절반이 ‘내부거래’…오너 일가 지배력 지탱하는 ‘안방 영업’
이처럼 위태로운 경영 상황의 배후에는 HD현대 그룹의 견고한 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의 최대주주는 지주사인 에이치디현대(주)로, 73.85%(특수관계인 포함 74.10%)의 압도적인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지주사의 지분 정점에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26.60%)이 있고, 에이치디현대(주) 대표이사인 정기선 수석부회장(6.12%)이 경영을 총괄하는 구조다.
결국 9조 원대의 총차입금을 짊어진 HD현대오일뱅크의 경영 의사결정은 오너 일가의 지배력 아래 놓여 있는 셈이다. 재무적 얽힘은 심각한 수준이다. 3분기 말 별도 기준 종속·관계기업 투자자산은 1조 3,392억 원으로 자산총계의 9.4%를 차지하며, 특수관계자 매출은 8조 9,194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44.9%에 달한다.
특히 HD현대케미칼과 HDO Singapore Pte.Ltd.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절대적이며, 7,423억 원에 달하는 특수관계자 채권(매출채권 6,545억 원 등)은 유동성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있다. 오너 일가는 이러한 ‘안방 영업’을 통해 지배력을 공고히 해왔으나, 이는 향후 정부 규제의 타깃이 되거나 외부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대표 구속·상장 무산에 ‘출구 전략’ 실종…투자자에 ‘폭탄 돌리기’
신용평가사들은 이번 사채에 대해 ‘AA-(우수)’ 등급을 부여했으나 시장의 시각은 싸늘하다.
연간 당기순이익(531억 원)의 3.3배에 달하는 환경 과징금이 부과되고, 전직 경영진이 줄줄이 실형을 선고받는 사법적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026년 1월 30일, 서울고법 형사7부는 물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HD현대오일뱅크 부회장 A씨에게 1심과 동일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전 안전생산본부장 역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는 등 주요 임원진에 대한 실형 판단이 유지됐다.
이번 사건은 2016년부터 6년간 대산공장의 페놀 함유 폐수 약 130만 톤을 자회사로 무단 배출하거나 굴뚝을 통해 증발시킨 혐의로 시작되었다. 2025년 2월 1심 재판부는 전 대표이사 등 5명을 법정구속하며 엄중히 처벌했고, 비록 피고인들이 항소 기간 중 보석으로 석방되기도 했으나 2심 재판부는 이들의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이 검찰의 기소 범위를 초과해 유죄 근거를 삼은 점에 대해 ‘불고불리 원칙’ 위반을 지적하며 해당 부분을 파기했으나, 기소된 사실만으로도 유죄가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사측이 적법한 수질오염 방지시설이라고 주장해온 가스세정시설(WGS)에 대해 “오염물질을 완벽히 제거할 수 없고, 폐수가 피고인의 통제를 벗어나 외부 환경에 노출되었다”며 그 정당성을 전면 부인했다. 수질 오염을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악취 민원 등을 은폐하려 한 정황은 고의성을 입증하는 결정적 근거가 됐다.
이로써 조직적인 환경 범죄 리스크는 2심에서도 해소되지 못한 채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혔다. ‘경영 공백 리스크’는 송명준·정임주 각자대표 체제로 봉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세 차례나 무산된 상장(IPO) 역시 오너 일가의 지배력 유지와 기업가치 평가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7.5조 원의 순차입금을 해결할 유일한 탈출구였던 상장이 막힌 상태에서, 회사는 다시금 투자자들에게 ‘폭탄 돌리기’식 사채 발행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3분기 누적 적자로 기초 체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업황이 조금만 악화돼도 재무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본다. 1,760억 원의 과징금 역시 분할 납부로 현금 유출을 늦췄을 뿐, 중장기 부담은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무보증 사채 발행에 의존하는 선택을 두고 투자자 위험을 키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장부상 흑자 뒤에 9조 원대 부채가 누적된 구조를 투자자들이 직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