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이 자기주식 44만44주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하며 527억원을 비용으로 인식했다.
의결권이 없던 이 주식은 기금으로 넘어간 뒤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졌고, 기금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특별관계자로 추가되면서 조 회장 측 신고 지분율에 합산됐다.
이에 따라 조 회장 측 신고 지분율은 30.42%에서 31.08%로 0.66%포인트 상승했다. 정작 조 회장은 출연을 결정한 이사회에 불참했고, 회사는 이 거래를 ‘이사의 자기거래’로 분류하지 않았다.
한진칼은 회사가 얻은 이익과 조 회장의 불참 사유 등을 묻는 본지 질의에 세부 내용은 “확인 불가”라고 답했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한진칼 사업보고서와 관련 공시를 종합하면 한진칼은 지난해 5월 15일 이사회에서 자기주식 44만44주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하기로 결정하고 8월 14일 출연을 마쳤다.
별도 재무제표에는 이 과정에서 527억6128만원을 비용으로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법에 따른 공시에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증여’로 기재됐으며 증여가액은 528억6100만원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최근 이 출연과 관련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등 혐의로 한진칼 등을 압수수색했다. 지난해 5월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조 회장과 류경표 한진칼 대표를 고발한 데 따른 수사다.
■ 주총에선 “176억”, 손익엔 527억 비용
한진칼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이 출연을 약 44만주, “176억원 규모”라고 설명했다. 현금 지출이 없고 법인세 감면 효과가 있어 회사에 유리하다는 취지였다.

176억원은 해당 자기주식의 장부상 금액이다. 재무제표상 장부가액은 175억7465만원이다. 반면 출연 과정에서 회사 손익에 반영된 비용은 527억6128만원이었다.
쉽게 말해 주총에서는 “176억원 규모”라고 설명했지만, 회사 손익에는 527억원의 비용이 반영됐다.
형법상 배임은 임무에 위배해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 본인이나 제3자에게 재산상 이익을 얻게 한 경우 성립할 수 있다. 이에 본지는 한진칼에 527억원을 비용으로 인식하면서 회사가 얻은 구체적인 이익이 무엇인지,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다.
다만 회계상 비용 527억원이 그대로 배임죄의 재산상 손해액이나 이득액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 ‘0표’였던 44만주, 출연 뒤 의결권 생겨
한진칼이 직접 보유할 때 이 주식은 자기주식이어서 의결권이 없었다.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넘어가면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출연 당일 기금은 조 회장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에 특별관계자로 추가됐고, 조 회장 측 신고 지분율은 30.42%에서 31.08%로 올랐다.
다만 44만44주가 조 회장 개인 소유가 된 것은 아니다. 주식은 기금이 보유한다. 따라서 핵심은 이 주식의 의결권을 실제 누가 결정하고 어떻게 행사하는지다. 기금이 독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신고 지분율에 합산됐다는 사실만으로 조 회장이 의결권을 확보했다고 볼 수 없다.
자본시장법은 상장회사가 자기주식을 처분할 때 이사회가 처분 목적과 금액, 방법, 주식의 종류와 수 등을 결의하도록 하고 있다.
■ 출연 결정한 이사회에 조원태는 없었다
지난해 5월 15일 이사회에는 ‘자기주식 출연 승인의 건’을 포함해 3개 안건이 올랐다. 조 회장은 세 안건 모두 불참했고, 출석한 나머지 이사 10명은 전원 찬성했다.
조 회장의 불참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상법 제399조는 이사의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제1항은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한다. 제2항은 이 같은 행위가 이사회 결의에 따른 경우 “그 결의에 찬성한 이사”도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제3항은 “이사회결의에 참가한 이사로서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는 그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출연이 향후 법령·정관 위반이나 임무 해태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결정으로 판단될 경우, 누가 이사회 결의에 참여하고 찬성했는지는 이사의 책임을 따지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조 회장은 해당 결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불참이 이사회 결의 참여에 따른 법적 책임 문제와 관련이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유였는지는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또 상법 제391조 제3항은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이사의 의결권을 제한한다. 이번 출연 이후 기금이 조 회장의 특별관계자로 신고되면서 조 회장 측 신고 지분율은 0.66%포인트 상승했다. 회사가 조 회장을 이번 출연과 관련해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이사로 판단했는지도 공개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상법 제398조는 이사나 주요주주 등이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와 거래하는 경우 일정한 승인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진칼 사업보고서의 ‘이사의 자기거래에 해당하는 사항’에는 이번 출연 건이 포함되지 않았다.
본지는 이에 한진칼에 조 회장의 이사회 불참 사유와 법적 책임 문제와의 관련성, 특별이해관계인 판단 여부, 이번 출연을 자기거래로 분류하지 않은 근거 등을 질의했다.
한진칼에 보낸 질의에 대해 대한항공 커뮤니케이션실은 한진칼 입장이라며 “한진칼 압수수색 관련 추후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며 “그외 세부적인 내용은 확인 불가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회신했다.
한진칼은 그동안 출연 이유로 지주사의 전략적 역할 수행과 아시아나항공 편입에 따른 임직원 만족도 향상, 기금 운영의 안정성과 독립성, 재무구조 개선 등을 제시해왔다.
조 회장과 류 대표는 현재 고발돼 수사를 받는 단계로 기소되거나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자기주식 출연이 배임이나 상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역시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상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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