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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지가 답이다

최 민(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

과로사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1991년에 처음 과로사가 산업재해로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되었고, 그 뒤로 2000년대 초반까지 2천여 명이 과로사로 승인되었습니다. 2009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도입되고 산재승인율이 낮아지기 전까지 매년 500 여 명씩 과로사가 산재로 인정되다가, 최근에는 매년 300여명이 과로사 즉 과로에 의한 뇌심혈관질환 사망으로 산재 인정받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장시간 노동 외에도 업무에서 급성 스트레스 사건을 겪고 나서 발생한 사망도 포함돼 있지만, 거꾸로 이는 산업재해를 신청하고, 승인된 경우만을 포함하므로, 실제 과로사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법정 노동시간이 주당 40시간인데, 과로사가 왜 이렇게 많을까요? 한국사회에서 사는 누구나 느끼듯, 주당 40시간 일하고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취업자 연간 노동시간이 2013년 2,247시간에서 2014년 2,284시간, 2015년 2,273 시간으로 되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전 박근혜 정부에서도 연간 1,800시간대로 노동시간을 줄이겠다 떠들었고, 미디어들은 ‘저녁이 있는 삶’, ‘인간다운 노동시간’에 관심 있는 듯 보이지만 현실의 변화는 제자리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주당 40시간이라는 노동시간 제한을 무력화시키는 법과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밑그림이 됩니다. 근로기준법은 주당 40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으로 정해놓았지만, 주마다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26개 업종에 대해서는 이 12시간 제한의 적용을 안 받게 했는데, 그 결과 전체 노동자의 40%는 법리상으로 무제한 노동할 수 있게 돼 버렸습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이 주당 52시간 제한에 휴일근무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서, 주말 이틀간 16시간 총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행정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이 불안하고 급여가 적은 단시간 일자리를 내놓으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겠다고 하니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전혀 실효가 없었던 것이지요.

2015년 뇌심혈관질환 사망으로 산재 인정받은 293건을 보면, 과로사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지만, 세부 업종으로 들어가 보면 실제로 이렇게 노동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업종의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많이 인정받고 있습니다. 2015년 한 해에만 여객자동차 운수업 노동자 24명이 과로사 했고, 감시· 단속적 업무라고 노동시간 규정을 아예 면제 받는 경비 노동자가 포함된 건물 등 종합 관리사업에서만 30여명이 과로사로 산재 승인됐습니다. 제조업 전체에서 86명, 건설업 전체에서 36명인 것에 비해 무시무시한 숫자입니다.

이제라도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노동시간을 제대로 규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정치권의 대응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입니다. 원래 이 특례 업종을 현행 26개에서 10개로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었는데, 여기에 운수업은 해당이 안 됐습니다. 버스, 택시 노동자들이 수년 동안 장시간 노동 실태와 시민 안전 문제를 제기해왔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번에 버스 운전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이 문제가 되니, 특례 제외에 ‘노선버스’만 추가한다는 겁니다.

최근 이 노동시간 특례 조항(근로기준법 59조)이 이슈가 되면서, 교대자 없이 하루 종일 연속 근무하는 택시 1인1차제, 2박 3일씩 공항에서 쪽잠을 자면서 일한다는 공항 지상업무 노동자들, 하루 19시간씩 일하는 방송제작 노동자들의 울분에 찬 증언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금 특례업종에서 한두 개 업종을 넣고 빼겠다는 논의를 주도하는 자들은, 다음번에 택시 사고가 나면 택시 업종을 제외시키고, 공항에서 큰 사고가 나면 공항 지상 업무 노동자들을 특례에서 빼주겠다는 건가요? 젊은 PD가 열악한 노동환경과 압박을 못 이겨 자살하고, 매년 택시기사들이 업무상 뇌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하는 것은, 그들의 목숨 값은 특례업종을 아예 폐지시키기에는 모자라다는 건가요? 재난 수준의 큰 사고가 터진 후에야 겨우, 그것도 크고 넓은 원인과 배경은 그대로 둔 채 눈앞의 작은 수습대책만 거론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응과 무엇이 다른가요?

노동시간 특례 업종 축소 논의에 반대합니다. 노동시간 특례는 폐지가 답입니다.

사회구성원의 생명과 안전을 기준으로 정책과 법률을 구성하는 사회라면, 무제한 노동이 가능한 법 따위는 없어야 합니다. 게다가 그 제도로 이미 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있습니다.

폐지를 위한 더 이상의 이유가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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