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필드) 진용준 기자 = 최태원 회장이 그룹 체질 개선을 위해 내건 경영 화두인 ‘딥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혁신)’가 수조 원대 손실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 10년간 반도체 외형 확장에 성공했지만, 배터리와 수소 등 친환경 신사업에 쏟아부은 5조 원의 투자가 사실상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23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이 지난 10여 년간 반도체·소재(15조원), 배터리·친환경(5조원), 디지털·스타트업(4조원) 등 외형확장을 위해 투입한 자금은 30조 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 중 친환경 및 배터리 관련 사업은 업황 악화와 전략 부재 속에 그룹 재무 건전성을 갉아먹는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수소 사업이다. SK㈜와 SK E&S는 지난 2021년 1조 6천억 원을 들여 미국 수소 에너지 기업 플러그파워(Plug Power) 지분 9.9%를 확보했다. “2025년 글로벌 수소 1위 기업 도약”이라는 청사진을 그렸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나스닥에 상장된 플러그파워 주가는 지난 21일(현지시간) 기준 약 2.22달러로 마감했다. SK가 지분을 매입하던 2021년 초 약 29달러 수준과 비교하면 5년여 만에 주가가 약 92% 가까이 폭락한 수치다. 주가 하락분만 단순 계산해도 1조 원 이상의 자산 가치가 증발한 셈이다. SK㈜는 자회사를 통해 인식한 손상차손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충전 시장 선점을 노리고 2021년 2천932억 원에 인수한 SK시그넷 역시 ‘돈 먹는 하마’가 됐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직격탄을 맞으며 2024년 영업손실이 2천428억 원으로 전년 대비 60% 이상 확대됐다. 최근 3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급한 불은 껐지만, 흑자 전환 시점은 불투명하다.
글로벌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 2019년 2천200억 원을 투자한 중국 대체식품 기업 조이비오(Joyvio) 역시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SK는 해당 지분을 ‘매각 예정 자산’으로 분류했으나, 장부가가 1천300억 원대(2025년 1분기 기준)로 쪼그라들어 투자 원금 회수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가 실적 악화로 이어지자 경영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앞서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23년 8월 열린 지식경영 플랫폼 ‘이천포럼 2023’ 폐막식에서 “딥체인지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며 장기적 관점에서의 인내를 당부한 바 있다. 당시 최 회장은 “구성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소통하며 전에 없던 변화 과제를 도출하고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초라한 성적표 앞에서는 그 변화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SK그룹은 최근 몇 년간 리밸런싱(사업 구조 재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재계에서는 비핵심·중복 사업을 정리하고, 확보된 자원을 AI·반도체 등 핵심 성장 분야에 재투자하려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강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부 계열사는 구조조정 및 자산 매각을 통해 자본 효율성과 재무 건전성 확보를 도모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SK그룹은 올해 리밸런싱을 마무리하고,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핵심 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재무 안정성 확보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SK그룹 측은 배터리·수소 등 신사업 투자는 단기 실적이 아닌 미래 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의 일환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은 최근 리밸런싱을 통해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고, 최태원 회장이 강조해온 딥체인지 기조 아래 자본 효율성과 재무 안정성을 높이면서 핵심 사업 중심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