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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4차 산업혁명시대와 장애인의 새로운 동행

안진숙(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사회복지사)

사용자의 기분과 감정을 읽고 평소 취향에 따라 음악도 선곡해 틀어주는 로봇, 거울을 통해 안색을 살펴주고 손을 잡으면 심장 박동수와 혈압을 자동으로 체크해 건강까지 챙기는 로봇이 곧 나온다고 한다. 외출을 준비할 때는 날씨에 따라 옷을 추천해주고, 길을 나서면 방향을 안내해주는 로봇, 심지어 보행이 힘든 곳에서는 도움을 주는 반려 로봇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집집마다 말로 소통이 가능한 기계를 통신사에서 설치해 주고 있고, 스마트폰에는 말로 지시를 하면 문자도 보내주고 음악도 찾아주는 기능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나온다. 요즘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보고 있자면,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멀지않은 시간에 현실이 될 것 같다.

이런 4차 산업혁명시대로 열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한편으로는 가족이나 친구처럼 든든하게 나를 도와주는 존재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소외(疏外)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과연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는 우리들에게 특히 장애인들에게는 축복이 될까, 아니면 재앙이 될까?

로봇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스포츠 용품 기업 아디다스는 인건비가 싼 해외로 생산 공장을 이전한 지 23년 만인 2015년 독일 안스바흐로 복귀했다고 한다. 이른바 ‘리쇼어링’이다.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하는 이 공장의 고용 인력은 주로 기계 기술자 위주인 160여 명에 불과하다. 비슷한 규모의 신발 공장에서 약 500~600명의 단순 노동자들이 생산에 60일, 운송에 60일 걸렸던 상품의 제조·판매가 이곳에서는 며칠 만에 가능하다고 한다. 현대자동차는 인도 첸나이에 스마트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590대의 협동 로봇이 일하는 이곳에서는 30초마다 한 대씩 완성차가 출고된다고 한다. GM이 철수하는 곳은 우리나라 군산공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컨설팅업체 메킨지가 발표한 보고서는 “자동화되는 속도에 따라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최대 8억 명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보다 더 많은 최대 8억9천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제조업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수를 말하는 ‘로봇 밀집도’에서 한국은 531을 기록해서 이미 세계 1위 수준이다(2015년 기준). 세계 평균(69)을 크게 웃도는 것은 물론이고, 2위인 싱가포르(398)나 3위인 일본(305)과도 크게 차이가 나는 탁월한 1등이다. 그래서 메킨지는 우리나라에서 2030년까지 전체 일자리의 25~26%가 자동화로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산업성장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가 성장하고 산업이 발전할수록 기업의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예전의 방식으로는 일자리도 안 생기고 소득도 올라가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마차가 사라졌고, 마부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은 실직자가 됐다. 대신 택시 운전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지만, 100년이 되지 않아 자율 주행 자동차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운전사’라는 직업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탁기가 보급되면서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세탁소가 문을 닫았고, 세탁부라는 직업은 병원 세탁물 등의 특수 분야에만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는 필름 공장들은 문을 닫았지만, 일찌감치 디지털 카메라 생산으로 전환한 기업들은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 폰에 “비구면 렌즈” 등 첨단 기술이 집약된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기존의 디지털 카메라로 어렵게 적응한 기업들은 또 다시 운명이 갈리는 기로에 서 있다. 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발 빠르게 적응하고 시대를 앞서가지 않으면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또 기술의 발전은 소득 양극화를 초래하고 자산(資産)의 배분을 악화시킨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들 기술을 가진 소수의 자본과 관련 인재들은 더 부유해질 기회를 잡게 되지만, 이들 신기술이 대체하는 기존의 재래 산업 종사자들에게는 오히려 실직과 공장 폐쇄를 초래하는 등의 재앙이 되고 있다. 생산과 유통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맡게 되면, 고기술·고임금 노동자와 저기술·저임금 노동자 간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노상헌, 2018).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출산율을 크게 낮추고 있고, 이미 주요 국가들 중에서 2위 수준인 심각한 소득 불평등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 정책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니, 장애인들을 대하는 정부의 정책도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발표한 “제5차 장애인정책 종합계획”을 통해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장애 등급을 없애는 대신에 개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해 나갈 계획이다.

장애인 소득보장 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장애는 그 자체로 경제적인 부담이고 추가적인 비용을 유발한다. 장애인들은 장애로 인해 취업이나 경제활동이 어려워 비장애인들과 비교해서 소득이 적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장애인 가구의 소득 수준은 비장애인들과 비교하면 120만 원 정도나 낮다. 거기에 더해 장해로 인한 보장구나 약값 등 추가적인 고정 지출이 매월 평균 36만 원이나 더 든다. 국민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장애로 인해 추가로 지출되는 부분이나 손해를 보는 것만큼을 보완해 주는 취지의 장애인 연금을 월 30만 원까지 인상해도 모자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애인 고용 정책도 중요하다.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애인 소득보장의 근본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된 ‘국정현안 점검 조정회의’에서 양질의 장애인 일자리를 확대하고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제5차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기본계획(2018∼2022년)」을 발표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와 등급제 폐지, 장애인의 소득보장과 일자리 보장 등 일련의 정책들은 모두 당사자들인 장애인들이 직접 나서서 요구해서 얻어낸 ‘승리의 전리품’이고, 직접 행동해서 쟁취한 성과들이다. 촛불혁명의 역사적인 변화에 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이런 성과들이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엄청나게 빠르게 열리고 있는 새로운 기술 발전의 시대, 4차 산업혁명시대를 장애인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선다. 지금도 비장애인들에 비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장애인들은 이미 취업도 힘들고 소득 수준도 매우 낮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으로 전개될 4차 산업혁명이 장애인들에게 축복이 되면 좋겠지만, 또 다른 재앙이 되지는 않을 것인지, 걱정부터 앞선다.

역사(歷史)는 끌고 가지 않으면 끌려간다고 했다. 이런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장애인들에게 또 다른 소외를 낳지 않으려면, 비장애인들의 자비심에서 나오는 ‘배려’가 아니라 장애인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변화를 선도하고 활용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장애인들이 4차 산업혁명시대를 활용하는 방법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인공지능(Al) 등 지능정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장애인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정부 지원으로 “well tech 특성화 사업단”이 만들어져서 사회복지 분야에 새로운 과학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포용적 성장이라는 목표 하에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많은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미세먼지나 한파 등 장애인을 위해 재난 안내가 기존의 문자 안내와 별도로 시각장애나 청각장애 등 장애의 종류에 맞게 변환되어 전달되고 있고, 또 요양시설에서는 와상 노인을 위한 돌봄 로봇이 우선적으로 도입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능정보화 사업이 여러 곳에서 전개되고 있다.

또,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일상적인 생활의 편리를 증진시키는 수준을 넘어 감성 케어까지 가능해지고 있다. 장애인들이 직면한 여러 가지 신체의 장애를 넘어서도록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계를 통해 우울증 환자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치매 환자가 인공지능 스피커와 대화하면서 인지 기능과 기억력이 소실되지 않고 더 이상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의 격차가 빈부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의 핵심적 요인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를 통해 이런 정보화 시대의 기술적 한계가 점차 극복되고 있다. IT(정보통신 기술)와 BT(생명공학기술)의 발달로 신체적 장애 문제가 점차 해결되고, 장애인들의 타인과 사물에 대한 접근성 문제도 점점 해소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은 여러 가지 직업에 대한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노동 생산성과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이미 ‘기가 지니’나 ‘프랜즈’ 등 지난해부터 국내 이동통신사와 인터넷 기업들이 출시한 인공지능(AI) 스피커가 10종을 돌파했다. 이들 인공지능을 탑재한 스피커를 포함한 인공지능 기계들은 사용자가 더 많이 묻고 기계와 대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성능이 발전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기계와 생각을 공유하고, 기계와 소통하고 참여해야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은 그동안 사회에서 소외된 채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은 장애인들이 이제 역으로 이들 기술을 활용해서 4차 산업혁명의 발전을 지원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공지능과 장애인의 협업이 중요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장애인 정책이 뒷받침 된다면, 저출산·고령 사회가 당면하게 되는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인 노동력 부족을 장애인들을 통해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인간이 하는 일들 중에서 많은 부분들이 기계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판단하고, 기획하고,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일은 기계가 할 수 없다. 새롭게 전개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이들 기계와 기술의 도움으로 장애인들의 거리 접근성과 시간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지금까지 노동시장에서 소외되었던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과 비장애인들의 인식과 생각의 개선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장애인들의 노력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는, 장차 급변하는 이 시대에 장애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4차 산업혁명은 특정한 소수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장애인들이 필요한 것을 먼저 요구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런 시대적 변화가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려면, 과학기술이 열어주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함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비장애인에게 의존하는 의식에서 스스로 벗어나서 주인의식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장애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시대변화를 제대로 인식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교육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면, 훌륭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은 새로운 시대에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성장하고 함께 공유하면서 동행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 모두가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최고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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