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처벌 강화를 위한 핵심 쟁점인 강간죄 구성 요건 변경을 두고 21대 대선 후보들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시민사회의 오랜 요구에도 불구하고, 주요 후보들은 침묵하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 ‘동의 여부’ 핵심…대선 후보별 온도차 극명
최근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는 21대 대선 후보들에게 정책 질의서를 발송하며 강간죄 개정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만이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향후 계획을 밝힌 유일한 후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답변을 회신하지 않았다. 이들의 무응답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여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시민사회는 윤석열 탄핵 광장, 사회 대개혁 정책 과제, 시민 여론조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강간죄 구성 요건을 동의 여부로 변경’하는 것을 주요 의제로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세 후보는 72년간 성폭력 피해자에게 ‘저항이 극히 곤란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요구해 온 한국 형법 297조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젠더 인식 부재 지적…공약 추진력 약화 우려도
더불어민주당은 ‘남성들에 대한 존중도 챙겨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해당 법안을 남녀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러한 시각은 교제 폭력, 디지털 성폭력 등 젠더 관련 공약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젠더 불평등이라는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공허한 정책을 추진하거나, 남녀 갈등으로 왜곡되어 정책의 실질적인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개혁신당은 대부분의 질의에 대해 ‘입법부와 법원 등에서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강간죄 구성 요건 변경이 입법부나 법원의 영역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의 첫머리에 내세운 것과 모순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이준석 후보는 지난 5월 27일 TV 토론에서 상대 공격을 위해 여성 혐오에 기반한 여성 폭력을 재확산하고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 성폭력 무고죄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후보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 없이 성차별과 여성, 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기조로는 성폭력, 가정 폭력, 성매매 성 착취, 디지털 성폭력 등 다양한 형태의 젠더 기반 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동의 모델’ 찬성하는 시민들…변화의 목소리 커져
반면 민주노동당은 형법상 강간죄를 동의 모델로 변경하겠다는 정책과 공약을 여러 차례 명확히 밝혀왔다. 특히 2차 TV 토론에서 ‘비동의 강간죄를 기다리고 계신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언급하며, 성폭력 현실과 용기 있는 피해 생존자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공약이나 정책을 대선 결과의 유불리 변수로 여기는 다른 후보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시민은 이미 성폭력에 대한 높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관계는 평등해야 하고, 타인을 성적으로 비하하거나 착취해서는 안 되며, 성적 차별과 혐오가 공공의 장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살피고 노력하며 사회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2025년 2월 더불어민주당이 전국 18~38세 성인 남녀 3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에 20·30대 남성의 60.3%, 20·30대 여성의 85.9%가 공감했다. 4월에 진행된 1천 명 대상 조사에서도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지 않더라도 이를 강간죄로 봐야 한다는 의견에 성별을 불문하고 다수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시민사회, 대선 후보에 강력 촉구…연대 지속 예고
변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는 21대 대선 후보들에게 강력한 요구를 보냈다.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금은 강간죄 개정!’을, 김문수 후보에게는 ‘새롭게 대한민국, 성폭력, 동의 여부로!’를, 이준석 후보에게는 ‘미래를 여는 선택, 사퇴하라’를 촉구했다. 또한 권영국 후보에게는 ‘갈아엎자, 폭행·협박 입증 책임!’을 요구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압박했다.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는 법, 정치, 그리고 생활 세계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계획이다. 여성, 소수자, 노동자, 농민,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과 연대하며 성폭력 없는 세상을 열어갈 것을 다짐했다. 이들의 요구가 21대 대선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