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가까이 5대 시중은행에서 대출 직후 드러난 금융사고 10건 중 9건이 KB국민은행에서 나왔다. 일부 직원은 실적을 올리려고 위조 서류인 줄 알면서 대출을 내주거나 서류를 직접 고쳤다.
사고가 쌓인 기간 상당 부분 은행을 이끈 이재근 전 행장은 KB금융 차기 회장 최종 후보에 올랐고,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둔 이환주 행장에게는 연임이든 지주 이동이든 거취를 가를 내부통제 성적표가 됐다.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김형연 의원이 5대 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7월까지 대출을 내주거나 만기를 연장한 뒤 6개월 안에 보고된 금융사고는 134건, 관련 대출금은 449억원이다.
이 가운데 국민은행이 124건, 406억원이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세 곳을 모두 합쳐도 10건, 43억원에 그친다.
사고 내역에 적힌 수법은 대담했다. 직원이 위조된 소득서류를 알고도 대출을 심사하거나 서류를 직접 고쳤다. 팔리지 않는 상가가 할인 판매되는 것을 알면서 허위 분양계약서로 대출을 내줬고, 주민등록등본을 변조해 전세자금대출을 해준 사례도 있었다.
한국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용으로 싸게 공급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 대상이 아닌 업종을 차주의 사업자등록증에서 지운 뒤 대출을 내준 직원도 있었다. 지원 대상인 것처럼 서류를 꾸민 셈이다.
이런 수법은 지난해 2월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이미 지적됐다. 금감원은 당시 국민은행 영업점 팀장이 시행사·브로커와 손잡고 허위 매매계약서로 차주를 꾸미고 대출이 쉬운 업종으로 바꾸게 하는 방식으로 892억원을 부당하게 대출했다고 발표했다. 일부 대출에서는 금품과 향응을 받은 정황도 나왔다.
그로부터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국민은행이 공시한 올해 6월 말 기준 제재 현황에는 이 892억원 부당대출에 대한 제재가 아직 올라 있지 않다.
금융당국 수장도 같은 문제를 짚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 19일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은행 금융사고가 왜 급증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의원의 질의에 허위 계약서를 이용한 집단대출형 사고가 많다며, 은행들이 내부통제를 “코스트 관점에서” 관리한 결과로 본다고 답했다.
같은 날 국감에서 이환주 국민은행장은 해킹 사고 대응을 두고 추궁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만 의원은 국민은행이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해커 침입을 받고도 단순 IP 차단에 그쳐 추가 유출을 불렀다고 지적했고, 이 행장은 “신속하게 차단하고 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라고 답했다.
김 의원이 로그 삭제와 관련한 은폐 지시 제보가 있다며 그런 지시가 있었느냐고 묻자 이 행장은 “없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김 의원이 재차 묻자 본인이 은폐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고,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은폐 지시 제보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임 문제도 거론됐다.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은 이날 출석한 5대 은행장 모두 연말 임기가 끝나 연임 심사를 앞두고 있다며 “내부 통제 관리 책임도 미흡한 은행장이 있다면 연임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KB금융지주가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이고, KB금융의 최대주주는 지분 9.23%의 국민연금이다. 오너가 없는 구조에서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를 총괄 관리할 의무는 대표이사인 은행장에게 있다.

이환주 행장은 지난해 1월 취임했고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이 행장은 올해 상반기 보수로 5억4800만원을 받았고, 2027년부터 3년간 나눠 받을 주식보상 15억3800만원이 남아 있다. 금융사고가 성과보상 평가에 반영됐는지는 공시에 나와 있지 않다.
김형연 의원 자료의 집계 기간 가운데 2022~2024년은 이재근 전 행장 재임기다. 자료에서 사고가 연도별로 어떻게 나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금감원이 국민은행 영업점 팀장의 892억원 부당대출을 적발한 2024년 정기검사도 이 전 행장 재임 중에 이뤄졌다.
이 전 행장은 2024년 말 행장에서 물러난 뒤 KB금융지주 글로벌사업부문장을 거쳐 올해 글로벌·WM·SME부문장을 맡고 있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9월 11일 이 전 행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했고, 이사회는 지난 2일 다음 달 20일 임시주주총회에 그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올리기로 결의했다.
KB에서는 국민은행장을 마친 인사가 지주 요직으로 옮기는 일이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이 전 행장이 그 길을 밟았고, 금융권에서는 같은 전례를 들어 이환주 행장이 임기를 마친 뒤 회장 아래에서 특정 사업을 총괄하는 지주 부문장으로 옮길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대출사고와 해킹 책임론에 대한 설명보다 다음 자리가 먼저 오르내리는 셈이다.
김 의원은 “직원이 실적을 늘리려고 서류 조작에 가담하거나 허위계약을 알고도 대출을 취급했다면 서류 확인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무리한 대출을 부추기는 실적평가와 보상 관행부터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은행은 공공마이데이터로 소득서류를 자동으로 받고 서류 진위 확인과 기업대출 사전점검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은행 측은 대출 이후 모니터링으로 이상 징후를 일찍 잡아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124건에는 부정행위 하나로 대출이 여러 건 나가 각각 사고로 집계된 경우도 상당수 포함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