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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본인부담 백만 원 상한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김철웅(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장, 충남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의료비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이다. 이것은 한 해 동안 환자 한 사람이 내야 하는 본인부담 의료비의 총액 상한을 100만 원으로 정하고, 그 금액을 넘는 의료비는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다. 만약 이 공약이 실현되어 한 해에 본인부담 의료비가 100만 원을 넘지 않는다면 보통사람들의 의료비 불안은 사실상 해소된다고 볼 수 있다.

선진 복지국가에서 이미 오래 전에 실현된 ‘의료비 상한제’

선진 복지국가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서 본인부담 의료비 상한제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스웨덴·네덜란드·호주 등은 연간 의료비 상한액이 20만~50만 원이다. 독일은 연간 본인부담 의료비가 총소득의 2%를 넘어서면 약제비 등의 본인부담이 면제되고 치과 보철과 의치에 대한 비용 분담액도 경감된다. 아시아에선 대만이 연간 160만 원 수준의 본인부담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고, 일본은 동일 의료기관에서 월간 본인부담액이 일정 금액(소득에 따라 50만~200만 원)을 초과하면 의료보험조합에서 초과분을 지급하는 ‘고액요양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형식적으로는 본인부담 상한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연간 본인부담 의료비의 총액은 소득구간에 따라 다르다. 국민의 소득 수준에 따라 7개의 본인부담 상한을 두고 있다. 가령, 소득 하위 10% 계층의 경우는 연간 본인부담 상한액이 122만 원이고, 소득 상위 10% 계층은 514만 원이다.

그러니까, 최고 소득 계층인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은 연간 본인부담 의료비의 총액이 514만 원을 넘을 때라야 초과 금액만큼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리고 최하위 소득 계층인 소득 하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본인부담 의료비의 상한액이 100만 원에 가까운 122만 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여기서는 122만 원을 초과한 본인부담 의료비를 돌려받게 된다.

그러나 고액진료비 환자의 본인부담 의료비는 법률에 정하는 상한액보다 훨씬 더 많다. 비급여 항목은 본인부담 상한제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자. 2010년 나의 어머니는 악성 뇌종양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이로 인해 3천만 원의 본인부담금이 발생했다. 당시 국민건강보험의 본인부담 상한제의 상한액은 200만원이어서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본인부담금은 200만원까지만 부담했지만 ‘선택진료비’, ‘병실료차액’, ‘신약, 신의료기술’ 등과 같은 비급여는 상한액에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3천만원의 본인부담금을 지불했다.

결국 나는 비급여 본인부담금으로 2800만 원을 추가로 부담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행 본인부담 상한제는 국민건강보험 급여 항목들만 포함하기 때문이다. 비급여는 아예 계산에서 빠져 있다. 이는 비급여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현행 본인부담 상한제는 반쪽 제도일 뿐이다.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를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는 현재의 본인부담 상한제와 다르다. 비급여 진료비를 포함한 총진료비에 대해 상한 금액을 100만 원으로 정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급여화하게 되면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재정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 공약집에는 재정 규모 추계와 재원 조달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총진료비 중 비급여 진료비의 비중이 17%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63%이다. 그러므로 비급여 진료비 17%를 급여화 할 수 있다면 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을 80%(입원은 9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추가 재정은 18.2조 원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추계에 따르면 18.2조 원이면 선택진료비(특진료), 상급병실료 차액, 의료적 필요성이 인정되는 비급여를 급여화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환자 간병 비용과 소득 하위 계층에 대한 건강보험료 면제를 위한 추가 비용이 제외되어 있으니 향후 정교한 재정 추계가 필요하다.

결국,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건강보험 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이 부분이 중요하다. 정부가 조달할 수 있는 건강보험 재정의 원천은 세 가지이다. 첫째, 국고지원 사후정산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가 법적으로 약속한대로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제대로 낼 수 있도록 강제한다면, 매년 2.7조 원을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당장 조달할 있는 재원이 아니다.

둘째,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여 추가적으로 재원을 확충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금융소득과 임대소득에도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고 건강보험료의 상한을 폐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올해 3월 개정된 정부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방안에 따르면, 건강보험료 수입이 오히려 줄어든다. 당장 내년 7월부터 9,789억 원의 예산이 매년 소요(4년간)되고, 5년째 접어드는 2단계 개편 시에는 연간 2조3,000억 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통해 연간 약 3~4조 원의 추가 재정이 확보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건 이미 물 건너간 형국이다. 그렇다고 부과체계 개편으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의 손실을 초래해선 안 될 것이다. 향후 건강보험료 부가체계를 구체적으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 재정이 감소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최소한 재정 중립이라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 건강보험료 인상이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의 주된 재원이 건강보험료이기 때문에 건강보험료의 인상이 불가피하다. 18.2조 원의 추가 재원 중 건강보험 가입자가 부담하는 비중은 50%라서 9조 원을 납부하면 된다. 나머지는 고용주와 정부의 부담이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내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료의 25~30%, 평균 금액으로 1인당 약 1만 원, 가구당 약 3만 원 정도를 더 내면 여기에 사용자와 정부의 법정 기여금 9조 원이 더해져 ‘100만원 상한제’가 가능해진다. 국민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추가 개편해서 얼마라도 재원을 마련한다면 건강보험료 인상액은 더 작아질 수 있을 것이다.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 정부 의지와 국민 동의 있어야 가능

건강보험 재정 확충을 위한 건강보험료율의 인상은 국회의 의결이 필요하거나 법률의 개정이 요구되는 사항이 아니다. 건강보험료는 매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심의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하여 25명인데, 가입자 대표 8인, 의약계 대표 8인, 공무원 및 공익 대표 8인으로 구성된다. 건강보험료 부담의 3주체인 건강보험 가입자과 사용자, 그리고 정부가 보험료 인상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확충을 합의하면 된다.

현행 건강보험료율 6.12%는 지난해 6월 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되었다. 이제 곧 내년도 건강보험 재정 규모를 결정하는 건강보험료율 인상 논의가 시작된다. 이때 정부의 의지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50%에 불과했던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을 65%까지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정부가 건강보험료 인상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건강보험료 인상이 정체되었고, 그에 따라서 보장률은 60%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반면 국민의료비의 연평균 증가율을 8.7%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 증가율은 그에 미치지 못해서 본인부담 의료비의 절대금액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가입자 대표인 국민과 의료공급자 대표 간의 협조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의료공급자들이 민간의료보험보다 국민건강보험에 우호적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 과정에서 의료수가를 적정화 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이 확대된다면 많은 비급여가 급여로 전환될 것이다. 이때 비급여의 급여화 때 적정수가의 보전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낮은 수준의 의료수가는 의료기관의 경영을 악화시켜 고가의 비급여를 늘리는 기전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수가만으로도 충분히 의료기관이 운영될 수 있도록 적정수가가 보장이 되는 게 필요하다. 또한 보장성이 확충되면 의료이용이 더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이는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하는 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이 제대로 의료이용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개별 의료기관의 수입이 증가할 수 있겠다.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는 서민가계와 국민경제에도 이로운 일

본인부담금이 줄어들면 의료비 지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과다이용-과다지출의 경우는 제도의 보완으로 막을 수 있다. 우선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가 실시되면 대부분의 비급여 진료가 국민건강보험의 통제를 받게 되므로 기존의 과잉진료가 줄어든다. 왜냐하면 과거에 병·의원들이 환자한테 전액을 직접 받던 비급여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와 평가를 거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현행 행위별수가제의 비중을 줄이고, 입원 질환별로 진료비가 결정되는 포괄수가제를 확대해 나가면 의료의 질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의료이용을 유도할 수 있게 된다.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를 통한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은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가구 당 월 평균 국민건강보험료가 약 10만 원이므로 월 평균 2만5천~3만 원 정도를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현재 88%의 가구가 매월 30만 원씩 내고 있는 민간의료보험료의 10%만을 떼어서 국민건강보험료로 내면 될 일이다. 대부분의 가계에서는 돈을 버는 일이다. 민간의료보험 없이도 의료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온 국민 완전 건강보장’의 새 세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본인부담 상한제는 이미 선진 복지국가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우리도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2017년 올해 문재인 정부가 건강보험료 인상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라는 대선 공약을 더 빨리 실현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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