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승무원 노동 실태 고발: 국회 토론회, 안전 위협과 제도 개선 촉구

공공운수노조가 28일, 「하늘 위 노동의 진실, 항공승무노동자 실태를 말하다」라는 제목의 국회 토론회를 열어 항공 노동자들이 처한 근무 여건과 건강상의 어려움을 상세히 논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국회의원들과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항공 노동의 현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회에는 항공 현장의 승무원들을 비롯해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한국항공협회 관계자, 그리고 노동 및 산업 보건 전문가들이 참석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산재재해노동자 추모의 날’에 토론회가 개최되어 그 의미를 더했다.
■ 서비스 가면 뒤 숨겨진 항공 노동의 고통
공공운수노조 박정훈 부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항공 산업이 국민의 이동과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언급하며, 최전선에서 일하는 객실 승무원들이 흔히 ‘서비스 노동자’라는 인식 때문에 고강도의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박 부위원장은 최근 발생한 항공 사고들을 단순한 기술적 결함이 아닌 인적 재해로 규정하며, 인력 부족, 무리한 비행 일정 운영, 그리고 반복적인 피로 누적이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항공 승무 노동의 본질은 단순한 서비스 제공이 아닌 ‘안전’ 확보에 있음을 분명히 하며, 항공 승무 노동자들은 더 이상 특별법의 그늘 아래 놓인 존재가 아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가진 동등한 노동자임을 강조했다.
더불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라는 중요한 시점에서 경영진의 결정 과정에서 승객과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하며 인력 충원과 조직 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고강도 노동과 건강권 침해, 위태로운 하늘 위 노동
한국노동연구원의 조규준 책임연구원은 승무 노동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항공기 객실 승무원들이 높은 노동 강도, 감정 노동, 차별, 그리고 건강 문제 등 여러 어려움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어 있음을 제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승무원들이 체감하는 노동 강도는 ‘빠르게 걷는 수준’으로 평가되었으며, 심각한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재 업무량을 65.5%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최근 한 달 동안 승객으로부터 모욕적인 언행을 경험한 비율은 42.8%에 달했으며, 언어 폭력 피해 경험은 39.4%로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의 89.5%는 회사 지침에 따라 자신의 감정 표현을 억제해야 하며, 88.6%는 업무 중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답했다.
특히 건강권 침해의 심각성이 두드러졌는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이현진 노동안전보건부장은 현장 발언을 통해 장거리 비행과 불규칙한 근무 일정, 그리고 기내 방사선 노출 등으로 인해 승무원들의 유방암 및 갑상선암 발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암 진단을 받은 대다수의 승무원들이 제대로 된 통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조용히 퇴직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 국제 기준에 미흡한 현실
토론회 발제자들은 항공 승무원들이 기본적인 노동법의 보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며 우려를 표했다.
현재 항공 승무원의 근로 조건은 ‘항공안전법’에 따라 규정되어 있으며, 이는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은 일반적인 노동 관련 법규의 적용을 상당 부분 제한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권오성 교수는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미국은 항공기 승무원에게 최소 10시간의 연속적인 휴식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연간 비행 시간 제한을 900시간 이내로 규정하고 충분한 휴무일을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한국 역시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관계자들도 토론회에 참석하여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고시 체계의 적절성을 다시 검토하고, 승무원들의 피로 관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인력 확충 및 제도 개선 요구, 국민 안전과 직결
설문 조사 결과, 항공기 승무원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되기를 희망하는 사항은 ‘임금 인상(45.7%)’, ‘비행 시간 단축(21.7%)’, 그리고 ‘인력 충원(11.0%)’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근무 일정과 과도한 업무량은 승무원들의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어렵게 만들어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하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력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일부 항공기에서는 승무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조차 부족하여 일반석 승객들 사이에서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사례까지 보고되었다.
이에 대해 이현진 부장은 “충분한 휴식 없이 장거리 비행에 투입되는 것은 명백한 건강권 침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토론회는 단순한 항공 승무원들의 복지 문제를 넘어, 항공 안전과 궁극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석자들은 항공 노동을 단순한 ‘서비스’ 제공이 아닌 ‘안전’을 책임지는 중요한 공공 노동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앞으로 항공 승무원들의 노동 조건 개선, 노동법 적용 범위 확대, 근로 시간 단축, 그리고 인력 확충을 위한 사회적 압력과 입법 활동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임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