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과 최고임금, 조양호 전 회장의 연봉과 퇴직금은?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 혁신성장, 소득주도성장이 날개를 채 펼치기도 전에 비판과 저항에 부딪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양새이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 경제를 만들려는 의도였지만, 소득주도성장이 바로 최저임금상승으로 치환되는 바람에 경제적 약자들 간의 대립과 다툼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최저임금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높은 부동산 가격, 선전국보다 2~3배 높은 영세 사업자 비중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했지만 정부의 섬세한 정책 역량이 부족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큰 담론은 흐릿해지고, 최저임금 논란만이 남아 우리 사회를 배회하면서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상승에 대다수의 보수언론들이 비난에 가까운 시선을 보이고, 여론은 여기에 집중되었지만 최저임금 못지않게 최고임금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경제는 생산과정에 참여한 이들이 자신들이 기여한 것보다 적은 대가를 받는다면, 다른 누군가는 기여한 것보다 많은 대가를 받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자본 친화적인 우리 사회의 주류 언론은 최저임금에는 엄격한 비판을 가했지만, 고액연봉자들에 대한 비판과 엄격한 잣대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조양호 전 회장의 퇴직금으로 본 적정성 논란
지난 몇 해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대한항공 조양호 전 회장이 지난달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 딸들의 갑질 파동, 횡령, 배임 등은 우리나라 대기업이 어떤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과 불법 행동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매우 드물게 조양호 회장은 임원진에서 배제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그런데 대한항공 조양호 전 회장의 퇴직금은 대기업 임원의 퇴직금 적정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고, 이것이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조양호 전 회장은 최근 한진칼, 대한항공, ㈜한진에 집중했지만 2018년까지 대한항공, 한진칼, ㈜한진, 진에어, 한국공항 등에 대표이사·회장 자격으로 이름이 올라있었다. 대한항공 사업보고서에 의하면, 조 회장은 지난해 약 27억 원의 보수와 4억3,000만 원의 상여를 받아 총 31억3,044만 원을 수령했다. 월 평균 2억6,087만 원이다. 이밖에도 한진칼 회장으로 26억5,830만 원, 한진 회장으로 11억985만 원, 진 에어 회장으로 14억9,621만 원, 한국공항 회장으로 23억2,335만 원 등 모두 107억1,815만 원의 연봉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45년 동안 근속한 조양호 전 회장의 퇴직금(평균월급×근속연수)을 계산해보면 약 117억 원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임원에게 적용되는 퇴직금 지급률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2015년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회장에 한해 퇴직금 지급률을 6배로 인상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퇴직금 지급률은 대기업 임원에게만 있는 특별한 ‘배수’다. 대다수 기업들이 임원 퇴직금 지급률을 갖고 있지만 정확히는 공개하지 않는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2015년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상장기업들은 임원 퇴직 시 대체로 3배의 지급률을 적용한다고 한다. 대한항공의 지급률 6배를 대입하면, 조양호 전 회장의 퇴직금은 대한항공에서만 704억349만 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체의 직책까지 포함하면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퇴직금을 수령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을 제외한 다른 한진 계열사는 퇴직금 지급률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통상적인 3배수를 적용하면 조 회장의 예상 퇴직금은 1,085억 원이고, 대한항공의 지급률 6배를 모두 적용하게 되면 최대 1,465억 원에 이를 수 있게 된다. 또 여기에다 대표는 아니지만 이사로 등재된 부동산회사 정석기업, 한진정보통신, 한진관광 등의 연봉까지 합치면 퇴직금은 다시 수십 억 원이 오른다.
이런 대기업 CEO의 급여와 퇴직금이 정상적일까? 기업의 CEO는 스스로 연봉을 정하기에 통제할만한 장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받는 연봉만큼 능력이 뛰어나고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을까? 대한한공 임원을 제외한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8,083만 원인데, 조양호 전 회장은 이들보다 133배나 많은 임금을 받은 셈이다. 모든 것을 능력주의로 계산하는 현대자본주의의 다양한 폐해도 발생하고 있지만, 설사 능력주의를 인정하더라도 조회장이 일반 직원들보다 133배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위스의 ‘CEO 연봉 제한법’과 한국의 ‘살찐 고양이법’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만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직접민주주의가 발달한 스위스에서도 이런 대기업 CEO의 고액 연봉 때문에 최고임금에 대한 국민투표가 발의됐다. 2013년 스위스는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꼽혔던 투자은행 UBS가 12명의 경영진에게 7010만 스위스 프랑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하고, 제약사 노바티스의 다니엘 바젤라 회장이 7200만 달러(846억 원)의 퇴직금을 받기로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확산됐다. 이에 ‘토마스 민더’라는 상원의원의 발의로 ‘CEO 연봉 제한법’이 발의되었고, 국민투표를 통해 68%의 찬성률로 통과되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CEO 급여에 대해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에는 6년 동안의 급여를 벌금으로 내거나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회사를 떠나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 합병할 때 받던 거액의 수당도 없애도록 했다.
스위스에서는 이 법의 영향을 받아 더욱 강화된 ‘1:12 이니셔티브’라는 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즉, 한 기업 내에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의 차이를 12배 이상 두지 못하도록 하는 이 법안은 국민발의는 성사되었지만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서는 부결되었다. 12배라는 것이 과도하다는 지적과 함께 기업 CEO의 임금을 주주들이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것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거부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스위스 등의 영향을 받아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2016년 한국판 ‘살찐 고양이법’을 발의했다. 전문경영인 등의 과도한 보수를 규제하는 이 법안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민간기업 임직원은 30배, 공공기관 임직원은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를 초과하여 받지 못하도록 했다. 이 법률에 따르면, 2016년 최저임금액(월 126만여 원)에 따라 민간 법인의 전문경영인이 연간 약 4억5000만 원을 초과하는 보수를 받게 될 경우, 부담금 또는 과징금이 부과되는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된다.
심 의원이 제시한 근거 자료를 보면, 10대 그룹 상장사 78곳의 경영진 보수는 일반 직원의 35배, 최저임금의 180배에 달한다고 한다(2014년 기준). 또한 323개 공공기관 가운데 기관장의 연봉이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도 130곳에 이른다며, “임금 소득에서 상위 10%와 하위 10%의 평균 격차는 11배로, OECD 평균인 5~7배를 웃돌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협동조합 그룹 ‘몬드라곤’ 실험에서 배울 점은?
한 기업 내에서 생산과정에 참여한 이들에게 어떤 임금 체계를 가져갈 것인가 하는 것은 경영의 중요한 문제다. 생산만큼 어려운 것이 분배의 문제이기 때문에 분배의 공정성, 민주성, 투명성을 가져가지 않으면 생산의 효율도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 고용창출 3위, 재계서열 7위, 매출순위 8위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Mondragon Corporation Cooperative)은 연매출 30조 원(2014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사례로 흔히 제시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연매출 30조 원은 우리나라의 재계순위 6~7위에 해당하는 매출이다. 몬드라곤 기업은 스페인 북동부 바스크 지역의 도시인 몬드라곤에서 1956년 돈 호세 마리아 신부의 지도 아래 5명의 조합원이 모여 첫 번째 노동자 협동조합인 석유난로 공장 울고(Ulgor)를 설립함으로써 시작됐다.
60여년이 지난 현재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을 형성하여 산하에 257개의 협동조합 및 기업과 15개의 연구센터에서 약 74,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자본주의적 기업의 병폐인 분배의 불평등으로 인한 빈부격차의 확대, 경영의 비민주성, 노사갈등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인식에서 시작된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노동자가 직접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 발생된 수익이 노동자들에게 고르게 분배되는 기업의 대명사라고 볼 수 있다.
일반 기업이 많은 주식을 보유한 소수에 의해 의사결정이 좌지우지된다면,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는 노동자가 총회에서 직접 최고 경영자를 선출 또는 해임할 수 있으며, 잉여금도 주주이자 노동자인 구성원들에게 고르게 분배한다. 설립 초기에는 최저임금과 최고임금 간의 격차를 1 : 4 이상이 되지 않도록 해서 분배의 불균형을 방지하도록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노동자의 천국, 경영자의 지옥’으로라 불리기도 했다.
때문에 차츰 이 부분을 완화해서 지금은 기업 내에서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의 격차가 최대 8배가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몬드라곤 그룹은 그 규모에 달하는 세계 기업에 비하면 임금 격차는 비할 수 없이 적지만, 어느 곳보다는 탄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CEO의 최고임금의 적정선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죽음 앞에서는 매우 관대하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든 간에 죽음 앞에서는 너그러운 평가를 내리고 인생무상을 이야기한다. 조양호 전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막대한 유산과 퇴직금 같은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조양호 전 회장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최저임금과 함께 최고임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고, 최저임금만큼이나 치열하게 최고임금의 적정선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해야 한다. 경제는 단순한 능력 있는 이들의 ‘돈벌이’이가 아니라, ‘세상을 경영하고 민중들의 삶을 구제하는(經世濟民)’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포용적 성장을 거쳐 국민행복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서 이 부분을 정치사회적으로 꼭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