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신문(닛케이)이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한국 대기업 총수들이 현 정부의 ‘AI 3대 강국 도약’ 정책에 동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해당 기사의 원문을 확인하면 총수들이 마주 앉은 상대와 계열사가 따낸 계약, 투자 결정 시점에서 닛케이의 ‘동원론’과 다른 장면이 드러난다. 이들은 정권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실익을 계산해 움직인 경영 주체에 가깝다.
닛케이는 이 회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 뇌물공여로 실형을 산 일까지 끌어와 ‘한국 재벌의 숙명’으로 묶었다. 하지만 경영권 승계 현안을 안고 권력에 건넨 뇌물과 고객사를 만나 수주를 따내는 영업은 상대와 목적부터 전혀 다른 사안이다.
닛케이는 일본 최대 경제지로 닛케이225 주가지수를 산출하고 2015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인수한 매체다. 일본 재계와 경제 관료를 주요 취재원으로 삼는다.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이 지난 12일 'AI 강국을 짊어진 삼성, 한국 최대 재벌의 숙명…그때그때의정권에 농락당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사진=닛케이 홈페이지 캡처]](https://newsfield.net/wp-content/uploads/2026/08/20260814_074009-582x600.jpg)
정권에 농락당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사진=닛케이 홈페이지 캡처)
14일 뉴스필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2일 보도된 해당 기사는 ‘AI 강국을 짊어진 삼성, 한국 최대 재벌의 숙명…그때그때의 정권에 농락당하다(「AI強国」背負うサムスン、韓国最大財閥の宿命 時の政権が翻弄)’라는 제목으로, ‘반도체 패권-열광과 초조의 한국’ 4회 연재의 두 번째 편이다.
닛케이가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와 기업의 갈등을 다룬 저서를 바탕으로 한국 사례를 4회에 걸쳐 소개하는 기획으로, 이번 2편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과 삼성의 관계를 다뤘다. 3편은 삼성의 기술 경쟁력이 SK하이닉스와 대만 TSMC에 밀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닛케이는 지난달 24일 샌프란시스코 회동을 앞머리에 세웠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최한 이 자리에는 이 회장과 SK·현대차·네이버 수뇌부가 동석했고, 이 대통령이 “우리는 식구다”라고 하자 총수들도 웃으며 호응했다고 전했다. 닛케이는 “가게 예약과 회계를 맡은 것은 한국 정부”라며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미 테크기업의 친밀함을 각인시킨 자리였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부가 식당을 잡고 비용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총수들이 동원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를 보면 그렇다. 회동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혹 탄 브로드컴 CEO, 마이크로소프트 간부가 함께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과 파운드리 수주 등 실적이 걸린 삼성전자의 핵심 거래처다.
닛케이는 2025년 10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방한도 정부가 마련한 자리로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삼성과 오픈AI의 연계 강화를 촉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닛케이는 같은 대목에서 그 자리의 결과도 함께 적었다. 삼성전자와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 4개사가 오픈AI와 AI 인프라 구축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다리를 놓은 자리에서 계열사 4곳이 계약을 따냈다면 이는 동원의 결과가 아니라 수주의 결과에 가깝다.
닛케이는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미에 앞서 대통령실로 총수들을 불러 “미국에 가능한 한 많이 투자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두고 “민간 투자를 외교 교섭의 선물로 삼아 미국 정권의 환심을 사려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4대 그룹은 20조엔, 약 1천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의 핵심인 삼성전자 텍사스 테일러 반도체 공장은 관세 협상 이전인 2021년 11월 부지가 확정되고 2022년 상반기 착공된 사업이다. 이미 진행 중이던 투자가 협상 국면에서 대미 투자 약속으로 재집계된 셈이다. 4대 그룹은 2025년 11월 국내에도 5년간 8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해 국내 몫까지 챙겼고 이 가운데 삼성이 450조원이다.
닛케이는 이 회장의 사법 절차를 다루면서 1심 재판부가 뇌물공여와 횡령 등 5개 죄목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익명의 재벌 간부 발언을 이어 붙였다. 이 간부는 “당시 대통령이 부탁하는데 대체 누가 거절할 수 있겠나. 만약 그때 정권의 요구를 거절했다면 어떤 보복을 당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닛케이는 이어 정권과의 거리감을 잘못 재면 큰 정치적 위험이 따른다며,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것이 좋다”는 재벌 간부의 말을 인용해 그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가는 것이 한국 재벌의 숙명이라고 맺었다. 유죄 사실을 적은 뒤 사건 관계자 측 해명을 검증 없이 결론 문장으로 올린 구성이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 회장은 2017년 구속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2021년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된 뒤 재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두 차례에 걸친 실제 수감 기간은 1년 6개월가량이다. 법원이 인정한 것은 거절할 수 없어 응했다는 사정이 아니라,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청탁의 대가로 권력에 금품을 건넸다는 사실이다.
뇌물 사건의 출발점도 정권의 압박이 아니라 경영권 승계라는 삼성 내부의 숙제였다. 정권이 무엇을 요구하든 청탁할 현안이 없었다면 건넬 금품도 없었다. 어느 정권이 들어섰어도 마찬가지다.
삼성 측은 재판이 이어지면서 “신속한 경영 판단에 차질이 생겼다”고 주장해 왔다. 이 회장은 2022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사건도 2025년 7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현재 경영 활동에 걸린 법적 제약은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뇌물은 잘못된 선택이었고, 거래처를 만나 수주를 따내는 것은 기업이 마땅히 할 일이다. 질은 다르지만 둘 다 이 회장 본인의 선택이었다.
닛케이는 이 둘을 ‘재벌의 숙명’으로 묶었다. 이렇게 보면 잘못된 선택으로 처벌받은 과거는 한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감수해야 할 일이 되고, 시장에서 쌓은 실적은 정권에 끌려다닌 결과가 된다. 정권과 기업의 관계를 따지려면 누가 동원됐는지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판단하고 어떤 실익을 얻었는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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