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처브(Chubb)그룹 계열 라이나생명이 지난해 3천500억 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거두고 미국 지배기업에 2천200억 원의 현금 배당을 결정한 가운데, IT 부문 정규직 인력의 절반가량이 회사를 떠나거나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는 구조조정을 추진해 노사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흑자 경영 속 희망퇴직을 가장한 정규직 외주화”라며 지난 27일부터 본사 로비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 순익 23% 줄었는데 배당성향 61.7%…3개 연도 결산배당 6천400억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라이나생명의 지난해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은 3천564억 원으로 집계됐다. 감사인은 적정의견을 냈다.
다만 실적은 뒷걸음질쳤다. 영업이익은 4천502억 원으로 전년(6천73억 원)보다 25.9% 줄었고, 당기순이익도 전년 4천643억 원에서 23.2% 감소했다. 보험서비스수익은 2조4천957억 원으로 2.95% 늘었지만, 보험서비스비용이 2조3천161억 원으로 9.6% 불어난 영향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2025년 결산배당으로 총 2천200억 원(1주당 3만1천555원, 액면가 대비 631%)을 책정했다. 당기순이익 대비 배당성향은 61.7%다.
라이나생명의 지배기업은 미국 처브그룹의 지주회사인 처브 리미티드(Chubb Limited)다. 회사는 2025년 중 지배기업에 배당금 3천억 원을 지급했고, 2024년 지급액은 1천200억 원이었다. 각각 2024년과 2023년 결산배당이 이듬해 집행된 것으로, 2023년 중에는 배당이 집행되지 않았다.
2023년 결산배당 1천200억 원, 2024년 3천억 원, 2025년 2천200억 원을 합하면 최근 3개 사업연도 결산배당 총액은 6천400억 원에 이른다.
배당 여력 자체는 충분하다. 2025년 말 기준 자산총계는 8조6천422억 원, 자본총계 6조78억 원이며 사내에 쌓인 이익잉여금만 5조9천207억 원이다. 감사보고서는 보험업감독규정이 지급여력비율(K-ICS)을 100% 이상 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며, 회사가 보고기간말 현재 최소요구수준 이상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기재했다.
■ IT 인력 48.5% 이탈 수순…노조 “외주화 위해 채용공고까지”

이처럼 대규모 이익을 내고 고배당을 실시하면서도 인력 감축을 추진하자 내부 반발이 거세졌다.
업계에 따르면 라이나생명과 자회사 라이나원의 IT 부문 인력 97명(라이나생명 79명·라이나원 18명) 가운데 28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잔류 인원 중 19명은 타 부서 전환배치 대상에 포함돼, 결과적으로 IT 인력의 48.5%인 47명이 기존 업무에서 이탈하게 된다. 회사는 최대 48개월치 특별퇴직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생명보험업종본부 라이나유니온지부는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라이나타워 본사 로비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지부는 매일 오전 8시 출근 선전전과 오전 11시 중식 선전전을 진행하고 철야 농성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정찬희 라이나유니온지부장은 “회사는 매년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으면서도 직원들에게는 희망퇴직을 강요했고, 그것도 모자라 남은 직원들까지 대규모 구조조정의 칼날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말했다.
백창용 생명보험업종본부장은 “희망퇴직이라는 미명 하에 퇴사를 강요하더니, 이것이 끝나자마자 남은 인원 중 20%에 달하는 189명에 대해 직무 연관성이나 개인의 역량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무연고 부서로 강제 발령을 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입사 이래 줄곧 IT 전문 업무나 지점 사무직 부서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직원들을 하루아침에 전혀 모르는 부서로 날려버리는 것이 어떻게 합리적이고 공정한 인사인가”라고 반발했다.
김태갑 사무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뒤로는 해당 IT 업무를 외주화하기 위해 이미 외부 업체 채용 공고까지 낸 상황으로 파악됐다”며 “이것이 어떻게 자발적인 희망퇴직인가”라고 반문했다.
■ 인건비는 줄고 경영진 보상은 그대로…자회사 편입이 배경
감사보고서를 보면 인건비 절감은 이미 진행 중이다. 2025년 종업원급여 총액은 904억8천만 원으로 전년(929억3천만 원)보다 2.4% 감소했다. 반면 이사·감사 등 주요 경영진에 대한 보상은 189억6천만 원으로 전년(190억9천만 원) 수준을 유지했다. 종업원급여 총액의 21%에 해당하는 규모다. 같은 해 광고선전비는 856억8천만 원이 집행됐다.
종업원 수는 2023년 말 731명, 2024년 말 761명, 2025년 말 78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이번 인력 조정은 올해 들어 본격화한 사안이어서 아직 공시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번 사안의 배경에는 지배구조 재편이 있다. 연결감사보고서 주석에 따르면 라이나생명은 2025년 7월 1일자로 처브 계열사인 라이나코리아로부터 보험대리점(GA) 자회사 주식회사 라이나원의 지분을 취득해 지배력을 확보했다. 인수대가는 123억6천만 원이며 동일지배하의 사업결합으로 처리됐다. 이에 따라 라이나생명은 2025 회계연도부터 처음으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고, 감축 대상에 라이나원 IT 인력 18명이 함께 포함됐다.
편입된 라이나원의 재무구조는 취약하다. 2025년 영업수익 3천292억 원, 당기순이익 278억 원으로 흑자 전환했지만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46억 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다. 회사는 지난해 924억 원 규모의 무상감자를 실시해 자본금을 257억 원에서 42억 원으로 줄였다.
한편 감사보고서에는 2025년 말 현재 보험금 지급 청구소송 등 29건이 계류 중이며 소송가액은 9억9천만 원, 이 가운데 회사가 피고인 사건은 24건이라고 기재돼 있다.
이번 인사 조치와 관련해 라이나생명 관계자는 “인사에서 노조와 협의가 계속되고 있는 단계”라며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