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필드) 진용준 기자 = 삼성물산이 해외 대형 프로젝트를 대거 수행하면서도 미청구공사와 공사미수금에 대한 손실충당금 인식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해외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겪은 이후 ‘선별 수주’와 ‘리스크 관리’를 강조해왔지만, 아직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은 잠재 부담이 누적되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삼성물산의 ‘직전 회계연도 매출액의 5% 이상’ 주요 공사 가운데 해외 장기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미청구공사(계약자산)와 공사미수금(매출채권)이 상당 규모로 남아 있다. 반면 이들 자산에 대해 인식된 손상차손이나 손실충당금은 대부분 ‘0’으로 처리됐다.
■ 수천억대 해외 미수금에도 충당금은 ‘제로’… 낙관적 회계 처리
구체적으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사업에서는 153억원,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탱크 공사에서는 2020억원, 미국 테일러 반도체 공장(FAB) 프로젝트에서는 1588억원의 미청구공사가 인식돼 있다. 사우디 리야드 메트로(289억원), 알제리 모스타가넴(148억원),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879억원) 등에서는 공사미수금이 잔존하고 있지만, 회계상 손상 인식은 이뤄지지 않았다.

회계에서 손실충당금이란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손실을 미리 비용으로 반영해 쌓아두는 일종의 ‘완충 장치’를 의미한다. 건설사의 경우 공사를 수행하고도 아직 청구하지 못한 미청구공사나, 청구는 했지만 회수하지 못한 공사미수금 가운데 일부를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해 일정 비율을 충당금으로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이들 계약자산과 매출채권에 대해 충당금을 대부분 ‘0’으로 설정했다. 이는 발주처의 신용도가 높고 계약 구조가 안정적이어서 해당 금액을 100% 회수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재무를 운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충당금을 쌓아두지 않은 상태에서 공기 지연이나 발주처와의 공사비 분쟁, 원가 상승 등이 발생할 경우, 그동안 누적된 미수금이 한꺼번에 손실(대손상각)로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이 경우 특정 분기에 수천억 원대 손실이 일시에 반영되는 이른바 ‘빅배스(Big Bath)’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실적뿐 아니라 주가와 시장 신인도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해외 EPC 사업은 환율, 원자재 가격,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 변수에 취약한 구조라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삼성물산은 전체 매출의 약 68%를 해외에서 올리는 구조다. 해외 매출의 중심은 에너지·환경과 첨단산업 부문으로, 지난해 국내 건설사 가운데 해외 수주 실적 1위를 기록하며 외형상 ‘해외수주 탑티어’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높은 해외 비중과 달리, 미청구공사와 공사미수금이 아직 손실로 전환되지 않았다는 점은 재무 안정성을 판단하는 또 다른 변수로 남아 있다.
■ ‘로이힐의 악몽’ 잊었나… 반복되는 리스크 관리 시험대
이 같은 구조는 삼성물산이 과거 대형 해외 프로젝트에서 손실을 경험한 이후 수주 전략을 대폭 수정한 결과이기도 하다. 삼성물산은 2010년대 중반 호주 로이힐(Roy Hill) 철광석 프로젝트에서 약 8000억~86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기록했고, 일부 중동·해외 인프라 사업에서도 공기 지연과 원가 상승이 겹치며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당시에도 초기에는 ‘정상 진행’으로 분류됐던 사업들이 시간이 지나며 대규모 손실로 전환된 바 있다.
이후 삼성물산은 자원·개발형처럼 시장 변수에 따라 수익성이 급변하는 사업 비중을 줄이고, 국영·공공 발주 중심의 EPC 사업으로 해외 전략을 재편했다. 최근 2년간 해외 수주 역시 중동과 오세아니아 지역에 집중돼 있으며, 태양광·CCUS, 발전소, HVDC 송전망, ESS 등 회수 안정성과 공정 관리 가능성을 우선한 프로젝트가 주를 이룬다.
결국 삼성물산의 해외사업은 수주 규모보다 그 수주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현금과 이익으로 전환될지가 관건이라는 평가다. 과거 손실의 기억 위에 세운 보수적 전략이 실제 리스크 관리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부담으로 돌아올지는 향후 해외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가늠될 전망이다.
한편 삼성물산은 향후 해외 수주 전략과 관련해 기존 주력 시장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 측은 “중동을 비롯한 기존 해외 핵심 시장에서 발전·인프라 분야를 중심으로 연계 수주를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며, 공항과 데이터센터 등 기술 차별화가 가능한 특화 상품 발굴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