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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사망에 정부 책임 인정 판결…주거권·건강권 보장 경종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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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주여성 노동자 속헹(Nuon Sokkheng) 씨의 사망이 열악한 주거 및 노동 환경과 정부의 관리 부실로 인해 초래되면서, 이주노동자의 건강권과 주거권에 대한 정부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금 제기됐다. 이번 판결은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8월 1심 재판에서 패소했던 이주노동자 속헹 씨 유가족이 항소심에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및 노동 환경에 대한 정부의 관리 소홀을 명확히 지적했다. 2020년 12월, 영하 20도 한파 속에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속헹 씨의 사망 원인은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로 밝혀졌다.

그러나 사망 당시 사업주는 난방장치를 가동하지 않았고, 숙소는 위법적인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고인은 평소 간경화 증세가 있었지만, 건강검진과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속헹 씨 사망 이후 유족과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끈질긴 노력 끝에 산재 인정을 받았다. 이후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 재판부는 공무원의 직무유기와 속헹 씨의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유족은 즉각 항소했다.

■인간다운 삶의 권리 인정, 정부에 경종 울린 판결

2심 재판부는 19일 이주노동자에게도 내국인 근로자와 동일하게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거주할 권리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담당 근로감독관이 열악한 숙소 환경을 개선하고 사용자가 건강진단을 실시하도록 조치했더라면 사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의 관리 부실을 인정했다. 이는 정부의 책임과 이주노동자의 인권 보호 의무를 강조한 판결이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를 포함한 20여 개 시민단체는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이를 계기로 모든 이주노동자의 건강, 주거, 노동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다. 특히 농업 이주노동자 70%가 임시가건물에 거주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임시가건물 전면 금지와 인간다운 주거환경 보장을 위한 정부, 지자체, 사업주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정부가 상고를 포기하고 판결을 즉시 수용함으로써 속헹 씨의 죽음이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린 의미를 온전히 살려야 한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에 대한 배상을 넘어,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재고하게 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와 기업은 이 판결을 계기로 이주노동자를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대하는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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