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어서 일하라” 기록 조작 지시 의혹… 한화에어로 ‘임산부 보호’ 시스템 붕괴?
근로기준법 위반 넘어 ‘형사 처벌’ 비화하나… 한화시스템 노조 “계열사가 도피처냐” 반발
한화그룹의 차기 리더인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핵심 계열사에서 발생한 ‘임산부 혹사’ 논란이 성희롱 및 근로기준법, 법인카드 유용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비위 의혹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이후에도 징계 여부와 수위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채, 가해자로 지목된 관리자가 계열사로 이동하는 이른바 ‘도피성 전배’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사측의 조직적 은폐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11일 한화 내부 커뮤니티와 한화시스템 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발단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인사 관련 부서 소속 모 부장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폭로였다. 가해자로 지목된 해당 부장은 임산부 부하직원에게 “술을 못 마시니 팀 회식에서 사회라도 보라”며 회식 참석을 강요하고, 지속적으로 모멸적 언행을 반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관리자는 임산부 직원에게 주 48~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을 사실상 강요했으며, 근로기준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실제 근로시간과 다른 기록을 남기도록 지시했다는 중대한 노동 착취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내부 블라인드에는 “임산부가 48시간, 52시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일했다”, “근로기준법에 위배되지 않게 숨어서 일했다”는 폭로성 글이 올라왔다. 이어 “아이디카드 태그 기록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밖에도 내놓을 수 있는 팩트는 널리고 널렸다. 성희롱? 법인카드? 근태? 뭐든 가능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화시스템 노동조합은 해당 게시글이 피해 상황을 직접 목격하거나 인지한 내부 관계자가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게시글들은 임산부 괴롭힘을 넘어 성희롱, 법인카드, 근태 등과 관련한 추가 의혹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라 관리 체계 전반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내부 고발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의 동료로 추정되는 인물은 후속 글에서 “처음 그 글을 썼던 건 순전히 나의 괴로움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 동료에게 미안하다”, “나도 여전히 익명의 공간에 숨어있고 회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피해를 당한 동료를 위해 폭로에 나섰다가 무력감과 자책을 드러낸 것으로, 내부에서 문제 제기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환경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 “DK가 문제” 그룹사 라운지까지 번진 공분… 계열사 직원들도 동조

이번 논란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내부를 넘어 그룹 계열사 공통 블라인드 공간인 ‘그룹사 라운지’로까지 확산됐다.
블라인드 캡처에 따르면 “에어로→시스템의 직장내괴롭힘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그룹사 라운지에 올라왔으며, 이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계정 사용자들이 “에어로에서 팀원들이 싫다는 임산부 이용한 그 사건 말하는건가?” “시스템 왜 그런 사람들만 가는데가 된거야?” “인사팀은 천룡인임” “임산부 건이면 진짜 팀장이 말이되나?” “dk가 이뻐한다함. 계속 있을거임”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게시글이 올라오자마자 삭제·신고 처리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손재일 대표님,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블라인드 게시글이다. 이 게시글에는 이번 사태의 핵심 배경과 함께 그룹 내부에서 김동관 대표이사를 지칭하는 ‘DK’를 직접 언급하며 언론 제보를 독려하는 댓글이 달렸다. 또한 해당 게시글에는 ‘김승연 있었고 김동관의 한화엔 없는 것’이라는 제목의 외부 언론 기사 링크가 공유되며 김동관 체제에 대한 내부 불만이 표출됐다. 단순한 인사 불만을 넘어, 그룹의 최고 전략 책임자를 향한 내부 신뢰 붕괴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논란이 가장 거세지는 대목은 사측의 이른바 ‘선택적 정의’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현재 한화시스템과 그룹 차원에서는 일반 직원들을 상대로 5년 전 법인카드 사용 내역까지 소급해 뒤지며 징계를 남발하고 있다.
사소한 사용 내역까지 문제 삼는 회사가, 정작 성희롱·법인카드·근태 관련 추가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된 관리자에게는 ‘계열사 이동’이라는 안전한 출구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과 조직적 봐주기 의혹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회사 측이 “법령 위반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블라인드 게시글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법적 판단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될 수 있다.
사용자 측의 자체 판단이나 해명은 형사 책임 성립 여부와 무관하다는 점에서다.
■ “법 위반 없다”는 해명과 엇갈린 증언… 한화, ‘임산부 보호’ 책임 공백 논란
근로기준법 제74조는 임산부에 대한 연장근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임산부가 주 48~52시간 이상 근무했다는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를 지시한 팀장은 동법 제110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양벌규정(제115조)에 따라 법인도 동일한 벌금형 대상이 되며, 대표이사가 이를 방지하기 위한 상당한 주의·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입증될 경우 관리·감독 소홀에 따른 형사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
더 심각한 대목은 근로기록 조작 지시 의혹이다. ‘숨어서 일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실제로 있었다면,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근로기준법 제56조 위반(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은 물론, 허위 기록 작성 강요 행위에 대해 형법상 강요죄 적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아울러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 적절한 조사와 피해자 보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 처우가 확인될 경우 이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위반에 해당하며, 행위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사용자인 법인도 양벌규정에 따라 동일한 벌금형 대상이 된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성희롱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에는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에 따른 조치 의무 위반 책임도 추가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사안이 단순한 내부 분쟁을 넘어 최고경영진의 법적 책임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대표이사의 형사 책임은 개인의 직접 행위 또는 감독 소홀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최종적인 법적 판단은 수사기관의 조사를 통해 결정될 사안이다.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업부문 대표이사이자 HR실장은 손재일이다. 인사·노무 전반에 대한 사용자 책임의 1차적 귀속 주체는 손 대표이사로 특정될 수 있으며, 전략부문 대표이사인 김동관 역시 해당 팀장이 소속된 조직의 최고 책임자로서 지배구조상 책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해 의혹자의 전배지인 한화시스템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분 46.7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여기에 손재일 대표이사가 양사의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두 회사는 명목상 별도 법인일 뿐 사실상 단일 경영권 체제 아래 긴밀하게 종속된 구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계열사 이동’이 독립적 인사 조치라기보다 내부 조정에 가깝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김동관 부회장은 비록 한화시스템의 등기임원은 아니지만, 최대주주 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내이사이자 대표이사로서 한화시스템의 경영권과 인사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 형식적 직함과 무관하게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나아가 김 부회장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한화 전략부문 대표이사를 맡아 계열사 간 인적 이동과 핵심 인사 전략을 총괄하는 실권자로 평가된다. 이번 전배 인사가 단일 계열사의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ESG와 준법 경영을 전면에 내세워온 김동관 체제의 한화에 이번 사태는 치명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021년 방산업계 최초로 준법경영시스템(ISO 37301) 인증을 획득했음에도, 정작 중대한 인사·노무 리스크 앞에서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책임 공백 논란은 그룹의 상층부 지배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김승연 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양사 모두에서 ‘미등기 상근 회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2025년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50억4천만 원, 한화시스템에서 50억4천만 원 등 단 두 곳에서만 연간 100억 원이 넘는 보수를 현금으로 수령했다.
미등기 임원은 등기 임원과 달리 이사회 결의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경영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어, 법적 책임에서는 한 발 비켜선 채 최고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한화식 지배구조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인사 조치에 대해 한화시스템 노동조합(위원장 이성종)은 “한화시스템은 그룹 내 문제 인물들의 도피처가 아니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조는 이번 인사가 가해자에게는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반면, 피해자에게는 2차 피해를 가하고 조직 구성원 전체를 기만하는 조치라며 한화그룹의 불공정한 인사 정의를 강도 높게 규탄했다.
반면 한화시스템 측은 공식 해명을 내고 “임산부 직원에 대한 회식 강요와 장시간 노동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회사는 “임산부는 근로기준법 등에 따라 특별 보호 대상이며, 노조가 문제 삼은 팀장은 관계 법령과 취업규칙을 준수해 직원을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또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법률상 위반 사항은 없었으나, 업무상 우위에 있는 팀장과 직원 간 업무 지시 과정에서 인식 차이가 발생했다”며 “이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차원에서 징계 조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행위자와 대상자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게 하지 않기 위해 선제적으로 분리 조치를 시행했고, 그 결과 계열사 전배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회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징계의 구체적 내용과 수위, 판단 기준이 공개되지 않은 채 가해 의혹자가 계열사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선제적 보호 조치’라는 설명과 달리, 결과적으로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에게 안전한 출구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결국 김동관 부회장 체제의 한화가 징계의 실체와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한, 혁신·ESG·준법 경영은 책임 회피를 가리기 위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