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이 온다고 하면 미리 청소해놓고 눈에 띄지 말게 숨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투명인간입니다” – 원고 A씨 발언
서울행정법원이 삼성디스플레이 생산라인에서 청소 업무를 해온 비정규직 노동자의 유방암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피해자 ·유가족 등이 참여한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환영하며 근로복지공단에 항소를 포기하고 판결을 조속히 확정할 것을 촉구했다.
법원은 이 노동자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클린룸의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청소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유해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복합적, 누적적으로 노출되었음을 인정하고 유방암 발병과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했다. 특히 주간 근무만 했더라도 유해물질에 복합적·누적적으로 노출되어 유방암이 발병했다고 본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반올림’은 밝혔다.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기까지는 6년 7개월이 소요되었으며,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분 이후 4년간의 행정소송 끝에 판결을 받았다.
■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업무와 유방암 인과관계 인정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1월 26일, 유방암 진단을 받은 삼성디스플레이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산업재해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A씨는 2011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약 7년 9개월간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A2공장 OLED 생산라인에서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청소 업무를 수행했다. A씨는 4천 평 규모의 생산라인에서 클린룸(지상층)과 RP층(지하층)을 오가며 먼지와 화학물질을 닦는 업무를 했으며, 청소 시 배관 누출 화학물질을 리트머스 종이로 확인하거나 엔지니어들이 방독면을 쓰는 구역의 잔여물을 보호장구 없이 청소하기도 했다.
법원은 A씨가 전리방사선(엑스선), 극저주파 자기장,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에 노출된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여 유방암이 발병했거나 악화되었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가 제조공정 자체를 수행하지 않았으나, 청소 업무 과정에서 전기를 이용한 생산설비와 이오나이저 등으로 인해 전리방사선과 극저주파 자기장에 상시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OLED 생산 전 공정에서 발생하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에 광범위하게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었을 개연성이 있다고 봤다. 근로복지공단이 노출수준이 낮다는 점을 불인정 근거로 들었으나, 법원은 노출수준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발병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서울행정법원은 A씨와 유사한 청소 업무(주로 스막룸)를 수행한 다른 노동자 황모 씨의 유방암 사례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이미 2021년 산재를 인정한 바 있으므로, A씨의 상병에 관하여 달리 판단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 역시 A씨가 노출기준 미만으로 노출되었더라도 유해물질들의 상승작용(시너지 작용)으로 직업병이 발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학적 소견을 제시했다. 법원은 인과관계 존부는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판단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원고 대리인 문은영 변호사는 “법원은 청소노동자가 공정 전체를 이동하며 업무를 수행하는 특성상, 생산 설비에서 발생하는 방사선과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복합 노출’ 위험이 결코 낮지 않음을 분명히 인정했다”고 판결의 의미를 밝혔다.
원고 A씨는 “위험한 공정에서 엔지니어들은 방독면을 쓰는데 우리는 그런게 없었다”라고 지적하며, “우리 청소노동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다. 임원이 온다고 하면 미리 청소해놓고 눈에 띄지 말게 숨으라고 한다. 우리는 투명인간입니다”라는 심경을 전했다.
또한 그는 “산재가 인정되어 다행이면서도 좀 더 일찍 인정되었더라면 하는 속상함이 있다”며 “청소노동에 대해 존중을 좀 해주고, 안전한 환경이 제공되길 바란다”는 심경을 덧붙였다.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이 항소 없이 판결을 조속히 확정할 것을 촉구하며, 국회가 노동자의 입증 부담을 덜고(규범적 인과관계 법제화), 처리 지연에 국가책임 ‘선보장’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으로 산재보험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재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 점을 지적하며 산재법 개정을 외면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번 판결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업무상 질병 인정의 범위를 확대하고, 기존의 개별 유해물질 노출 농도 중심의 판단에서 벗어나 복합적·누적적 노출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인정한 선례를 제시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 기조는 향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 내 청소 등 간접 공정 노동자들의 직업성 질환 인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