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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소득주도 성장의 성공을 위한 3박자: 정책・예산・행정

김진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노무법인 벽성 대표)

지난해 판문점 귀순 병사를 기적처럼 살려냈던 이국종 교수(아주대학교 권역외상센터)가 지난 11월 8일 JTBC 뉴스 인터뷰에서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환경과 부실한 운영 실태를 담담하게 고발했다. 귀순 병사를 극적으로 살려낸 것이 의사로서 한 인간이 발휘했던 극도의 정신력 덕분이었다면, 낙후된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인 많은 사람들이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에 이르고 있는 현실은 또 다른 일상이다. 바로 인터뷰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중증외상센터는 우리 사회의 단면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환경과 부실 운영의 문제점을 호소했던 그의 인터뷰는 비효율적이고 구태의연한 행정의 결과가 얼마나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런 현실이 과연 중증외상센터만의 문제일까. 해마다 엄청난 예산이 수혈되어 돌아가는 우리 사회가 어째서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없었는지, 중증외상센터라는 단면을 통해 우연히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경직된 행정, 비효율적 예산 운영으로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달리 이 사회 시스템을 후퇴시키거나 악용되는 사례를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하지만 빠르게 체념하곤 했다. 그럼에도 이번 중증외상센터 실태가 다시 파문을 일으켰던 이유는 생명과 직결된 사망, 장해 사고가 실은 사고가 아닌 일상이었다는 점과 그런 사고들이 시스템 운영자들의 제도 개선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던 안타까운 인재라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가의 행정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예산의 투입(Input)으로 돌아간다. 투입의 결과(Output)는 국민의 ‘삶의 질’이라는 수치로 나타난다. 그러나 해마다 투입되는 예산의 규모와 용도는 분명했지만 결과(효과)는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았다. 이국종 교수가 말하는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국민들 삶이 개선되지 못하는 사회 전반의 맥락이 드러난다. 개선이 필요한 불합리한 운영 시스템으로 인해 응급처치가 지연되면서 사람들의 희생이 일상화된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이 뉴스를 통해 주목받았지만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여전히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로막는 것일까.

부실 운영의 행정 시스템 피해자는 결국 사회적 약자

그는 뉴스 인터뷰에서 세 가지 지점을 분명히 짚었다. 첫째, 행정 실무의 중간 관리자들이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없고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 둘째, 이런 불통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개선할 위치에 있는 기득권층, 특히 정치인들조차 이를 방치하고 있는 점, 셋째, 이로 인한 피해는 이 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블루칼라와 약자들이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위급 상황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바로 정상적인 행정 루트를 방치한 채 인맥을 동원한 이른바 ‘새치기’를 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해마다 편성되는 예산(Input)은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 것일까. 그는 예산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들어와서 봐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유한한 자원으로 움직이는 인간 사회는 늘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조직을 지향한다.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추구하는 목적이 ‘이익’의 극대화라면, 정부의 행정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의 극대화다. 한정된 자원을 기반으로 하니 효율적 운영으로 극대화를 뒷받침해야 한다. 국민이 낸 세금 역시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만 국민 행복의 증대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런 최상의 결과를 위해 Input과 Output이 연동되도록 관리하는 역할이 바로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비합리적이고 소모적인 운영 시스템이 자주 목격되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낙후된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에 인맥을 동원한 ‘직행표’에나 기대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이 이를 설명해준다고 할까. 굳이 ‘직행표’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가는 행정 시스템의 개선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예산을 분배하고 집행하는 행정 시스템과 세금 납부자인 국민의 삶이 따로 가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 다르다. 내 문제만 해결되면 그만이다.’라는 의식이 우리 사회의 전반에 팽배해 있다. 우리 안에 깊숙이 내재된 일종의 성숙치 못한 계층 우월감이다. 그러나 ‘나’는 영원히 다를 수 있을까? 그리고 인맥은 언제까지 내 문제를 해결해줄까? 인맥이란 주고받을 것이 있을 때까지만 유효한 한정된 기반이다. 국가의 정상적 시스템이 언제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면 인맥을 동원한 뒷거래가 굳이 필요할까.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과 장해가 일상화된 현실도 불행이지만, 이로 인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고 이국종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불합리한 행정으로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은 조직의 본래 목적을 반감시키는 단순 비용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닌 잘못된 행정의 뒤처리를 감당하는 데 예산이 낭비된다는 의미다.

빈곤 탈출을 넘어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회로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조세재정 정책의 소득재분배 효과 국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저소득층은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80.5%가 여전히 저소득층으로 남아 있고 빈곤 탈출률은 19.5%에 불과하다고 한다. 미국·프랑스·영국 등 OECD 28개 회원국(총 36개국 중 일본·터키 등 8개국 제외)의 평균 빈곤 탈출률은 64.1%였다. 조세재정 정책을 통한 저소득층의 ‘소득 개선 효과’도 한국은 OECD 평균(62.1%포인트)에 비해 크게 낮은 11.5%포인트에 그쳤다. 이는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지출액 비중이 OECD 평균인 2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0.4%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금의 기능인 소득재분배와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함을 보여주는 지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두 가지 기능 모두가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은 428조 원이었다. 내년 예산은 9.7% 늘어난 470조 원이 될 전망이다. 증가분의 상당 부분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기반을 다지는 데 쓰이게 된다. 일자리와 함께 취약 계층의 민생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보건・복지・고용 예산(12.1% 증가)과 취약한 산업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14.3% 증가) 부분이다. 우리나라 빈곤 탈출률, 소득 개선 효과의 성적표가 모두 낙제점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방향이다.

일자리 창출 확대를 위한 중소기업 지원과 고용 지원, 사회안전망인 보건・복지의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빈곤 탈출은 물론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회로 가야함은 선택이 아닌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업 등으로 빈곤층으로 진입하게 되더라도 복지 등 사회안전망이 튼튼하면 다시 재기할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이 부실하면 다시 정상 궤도로 회복하기는 어렵다. 소득재분배 정책과 사회안전망은 불가분의 관계로 고질적인 빈곤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에서 일자리와 복지 지출의 규모를 대폭 증가시킨 이유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결국 양극화를 해결하고 보편적 복지가 작동하는 안전한 사회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이해된다. 복지 예산의 획기적 확충에 더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는 이렇게 투입되는 예산을 가지고 소득재분배 문제와 사회안전망의 강화를 어떻게 보통사람들이 실감할 만큼 제대로 실현할 것인가, 바로 이 부분이다.

효율적 예산 운영을 하려면 행정 시스템을 개선해야

이런 목표들을 실현하려면 합리적 행정을 가로막는 누적된 적폐가 함께 개선되어야 하는데, 그 개선 작업이 아주 더디다. 때로 시민들 비판이 빗발쳐도, 장관들을 질타해 봐도 번번이 국민들의 기대치를 넘지 못하곤 했다. 일각에서는 장관이 개혁하려고 해도 관료들이, 실무진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우연인지 이국종 교수도 같은 얘기를 했다. 지난해 월남한 병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외상 응급의료 체계의 심각한 문제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도 장관이 나서서 예산도 추가 배당하고 직접 지시하고 챙겼지만 관리자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1년이 지난 지금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을 뿐, 날마다 세월호가 터지는 심각한 상황을 지속적으로 알리기라도 하려면 ‘날마다 북한군이 내려와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나왔다니, 그 자괴감이 짐작되고 남는다.

인맥의 힘이 행정 시스템을 능가하는 사회이니 시스템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인맥의 힘을 자랑스럽게 말했다는 그들의 행태는 국가 예산을 낭비하도록 방치한 요인 중의 하나다. 드러난 중증외상센터를 보면 그야말로 폭탄을 안은 채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대로 묵인하고 가야 할까? 그러나 폭탄은 언젠가 터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터질 때 고통 받는 건 피해갈 방법을 알고 있는 기득권층이 아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이런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서민들,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천재’가 아닌 ‘인재’로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귀중한 세금이 국민의 안전과 희망을 위해 지출되고 더 이상 인재로 사망하는 일도 없는 나라가 되려면 합리적 행정의 운영은 필수적이다. 이는 예산을 집행하는 주체들(공무원) 스스로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려는 열린 자세,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행정으로써만 가능하다.

열악한 환경과 부실 운영의 문제점이 중증외상센터를 통해 드러났지만 우리는 수많은 예산 사용처 중의 하나를 보았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이전 보수 정권의 국방・4대강・자원비리 등 커다란 비리를 체험했고, 최근의 유치원 비리 등 크고 작은 예산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더 나은 방향과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행에만 머무르는 행정 체계 하에서는 어떤 청사진으로도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취약한 기반을 개선하고 기초를 다지기 위한 정부의 정책 목표가 아무리 훌륭해도 조직이 그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단순한 유지에만 급급하다면 말이다. 중증외상센터라는 국가 행정 시스템 중의 일부분이 알려지면서 전체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실질적 개선에 이르기까지 언론과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채 드러나지 않는 많은 부문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행정을 감시할 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

중증외상센터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의 문제를 일반에 알린 것은 언론이었다. 그렇게 알려졌어도 지속적으로 이슈화가 되어야 개선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무관심 속에서 비판 받고 있는 언론의 현실이지만 여전히 언론의 역할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무수히 많은 이슈들이 생산되고 재빨리 묻혀간다. 생존 경쟁의 각박한 환경에서 독자들은 그 많은 이슈들에 피로감을 넘어 공해로 느끼기까지 한다. 이런 때일수록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들을 오래 끌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고질적인 사회 병폐만큼은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해내고 효과(개선)로 연결돼야 언론이 전달하려는 정보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 뉴스 전달자로서 언론의 역할은 끝난 지 오래다. 달라진 지금의 언론 환경에서는 전달하려는 이슈가 어떻게 소비되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 지 고민해야 한다.

이국종 교수는 외상의료 체계를 들여다보면 엄청난 비리도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내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인식을 가진 기득권층을 비판하기도 했다. 중증외상 진료의 중요성을 알렸던 그는 ‘권역외상센터 확충을 통해 대한민국은 생명의 위기에 처한 모든 사람이 최대한 가까운 시간에, 최대한 가까운 장소에서, 최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아 생명을 지키는 나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생명을 지키는 나라’가 되기 위해 변해야할 부문이 비단 중증외상센터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호소하듯 나라의 예산이 국민을 위해 제대로 지출되어 효과로 나타나려면 움직이지 않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경계해야 하고 예산이 효율적으로 지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취약 기반의 확충을 통해 국민의 삶의 안정을 이루려는 정부의 정책 목표가 달성되려면 올바른 예산 편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비소비지출이 소득보다 지나치게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3분기 비소비지출은 1년 전보다 23.3% 늘어난 반면 전체 가계소득은 4.6%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가계가 실제 소비에 쓸 수 있는 처분가능소득(총소득-비소비지출)이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물가를 고려하면 실질처분가능소득은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고용과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한 예산은 소득양극화, 부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소득주도 성장의 기틀을 다잡기 위한 것이다. ‘예산 따로, 정책 따로, 행정 운영 따로’가 아닌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가야 한다. 그러려면 예산을 운영하면서 나타나게 될 각종 민생 지표들도 꼼꼼히 살피면서 뒷북이 아닌 선제적 대응도 필요하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서 그로 인한 자영업자, 영세 기업들 지원 정책이 엇박자를 냈던 경험이 있다. 경제 전반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는 정책이 곧바로 이어지지 않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경험도 마찬가지다.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누구라도 지금의 어려운 국면을 극복하기 어렵다. 국가 예산이 우리의 삶을 개선해줄 것이라는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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