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 발병과 업무 사이의 연관성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법원은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사용자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선고했다.
학교급식실 조리흄(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입자) 노출에 따른 산업재해 보상을 넘어 사용자의 민사상 위자료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와 학교급식실 폐암대책위원회(학교 급식노동자 폐암 산업재해 피해자 국가책임 요구 및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15일 오전 10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의 의미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대책위 참가단체들은 각 교육청에 피해 노동자들을 향한 신속한 손해배상금 지급을 요구하는 한편, 교육부와 교육청이 환기시설 개선, 인력 확충, 적정 식수인원 기준 마련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학교급식실에서 근무한 뒤 폐암 진단을 받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노동자 9명은 2025년 1월 22일 대한민국과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네 차례의 변론을 거쳐 지난 9월 8일 지방자치단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폐암이 학교급식실 업무와 관련성이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들이 해당 업무로 인해 폐암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가 소속 원고에게 위자료 1천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정인용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은 이번 소송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의 사업주로서의 불법행위 책임을 확인하는 데 핵심이 있었다”며 “학교급식실 노동자의 폐암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충분히 예견하고 예방할 수 있었던 산업재해”라고 지적했다.
정 본부장은 “원고들은 오랜 기간 고온의 튀김·볶음·구이 작업을 하며 조리흄에 반복 노출됐고, 인력 부족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식사를 조리해야 하는 노동강도를 감당해 왔다”며 “교육청은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해야 할 사용자임에도 조리흄 배출이 미흡한 환기시설을 방치했고 보호구 지급, 위험성 교육, 인력 부족 개선에도 소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의 행정입법 부작위 책임이 이번 판결에서 인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조리흄을 관리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환기시설 전면 개선, 노동강도 완화, 조리흄 관리기준 법제화, 적정 인력 배치와 예산 확보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송대리인단 곽예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법원은 피고 지방자치단체들의 형식적인 법령 준수 주장, 소멸시효 완성 주장, 과실상계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곽 변호사는 국가배상 청구 기각과 관련해 “오랜 기간 급식실 노동환경을 방치해 온 국가 차원의 책임까지 끌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이번 판결은 조리흄 노출기준을 정립하고 국가 차원의 실효성 있는 노동안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를 명확히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박은경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표는 “법원이 학교급식노동자의 폐암과 업무 관련성을 인정하고 위험 예견 가능성을 판단한 만큼, 교육청은 판결을 수용하고 피해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조속히 지급해야 한다”며 사후 보상에 그치지 않는 예방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폐암대책위는 기자회견문에서 “법원이 지자체와 교육청을 학교급식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용자로 명확히 인정했다”며 “교육부는 개정 학교급식법 취지에 따라 조리종사자 1인당 적정 식수인원 기준을 마련하고, 교육청은 환기시설 개선과 인력 확충 등 노동환경을 즉시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