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적 법제도 철폐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29일 오전 11시에 개최된 이번 기자회견에는 전국 이주·인권·노동·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했으며, 최근 불거진 나주 벽돌공장 이주노동자 학대 사건을 계기로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민주노총 구철회 미조직전략조직국장이 사회를 맡은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장, 권영국 정의당 대표,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대표, 최정규 민변이주노동팀장, 송은정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챗 디미아노 카사마코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괴롭힘과 폭력은 중범죄이며,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고 차별적인 법제도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주노동자 향한 끊이지 않는 폭력과 차별
최근 나주 벽돌공장에서 발생한 이주노동자 학대 사건은 전국적인 충격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가 온몸이 벽돌에 휘감긴 채 지게차로 들어 올려지는 모욕을 당한 이 사건은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해당 사건을 “차별과 폭력은 용서할 수 없는 중범죄”라고 규탄하며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하자, 고용노동부는 즉각 기획 근로감독에 착수하고 사업장 변경 제한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이 너무 늦었으며, 임시방편적인 미봉책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 2월 전남 영암 돼지농장에서 발생한 네팔 노동자 자살 사건, 5월 경기 용인 식품업체에서 베트남 여성노동자가 폭행당한 사건 등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용허가제 등 현행 법제도가 이주노동자를 취약하게 만들고 사업주에게만 유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노동허가제 전환 촉구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E-9)를 비롯한 대부분의 이주노동제도에서 사업장 변경이 가로막혀 있고, 고용 연장 등 모든 권한이 사업주에게만 있어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는 단순히 사장의 이윤을 벌어주는 기계나 노예가 아니고 노동자이고 사람이다”라며, 노동자에게 자유가 없으면 노예가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업주 동의 없이는 사업장 변경도, 고용계약 연장도, 재입국도 불가능한 현 제도를 ‘강제노동’으로 규정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고용허가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주노동을 ‘고용’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는 사업주의 ‘고용’을 손쉽게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를 일터에 묶어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이주노동자에게 노동권을 보장하는 노동허가제로의 전환을 촉구했다. 또한, 사업장 변경 제한 사유에 대한 입증책임을 사업주에게 전환하고, 변경 횟수 제한을 폐지하는 등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가 ‘포용과 통합’의 이주노동 정책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강제노동을 양산하는 사업장 변경 제한을 철폐하고 노동허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고용기간 연장 신청 자격을 노동자에게도 부여하고, 이주노동자 차별과 폭력에 대해 엄중히 처벌하며, 이주노동제도 근본적 개선을 위한 노정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번 대통령의 지시와 노동부의 대책 마련이 단순히 ‘립서비스’나 ‘미봉책’으로 끝나지 않기를 강력히 요구했다.
피해 사례들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의 무게를 엿볼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 B씨는 사업주의 괴롭힘과 업무방해 신고로 고통받았고, 이주노동자 I씨는 3년 계약 후 재계약을 했음에도 사업주의 일방적인 계약 취소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주노동자 M씨는 본국에서 암 치료 중임에도 회사 측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로 치료를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현행 제도 속에서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공정한 노동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단순히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일회성 대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이주민 정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