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포용금융’ 대의 아래 탄생했던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국내 인터넷전문은행 3사가 돌연 ‘혁신 역행’ 행보를 보이며 시장의 엇박자가 심화되고 있다. 당국과의 충분한 소통과 합리적인 해결 방안 모색에 앞서, 기업들이 먼저 서비스 축소와 혜택 철회에 나서면서 모든 문제 해결의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려는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정부의 정책 취지와 기업의 현실적 어려움이 충돌하는 지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동시에, 향후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무료’ 혜택 사라진 ATM, 시중은행 ‘구태’ 답습하며 서민 부담 가중
한때 은행권에 수수료 면제 경쟁을 몰고 왔던 인터넷은행들이 10년 전 시중은행처럼 다시 수수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토스뱅크는 2021년 10월 출범 이후 줄곧 유지하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용 수수료의 무제한 면제 혜택을 다음 달 1일부터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매달 30회가 넘는 ATM 입·출금과 이체에 건당 500~1500원의 수수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이는 직접적으로 서민들의 금융 이용 부담을 높이는 조치로 풀이된다.
앞서 케이뱅크 역시 2017년 4월 출범 이후 지속해 온 ATM 이용 수수료 무제한 면제 조치를 지난 4월 폐지하며 월 30회 초과 시 수수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금융권은 이러한 인터넷은행들의 행보를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금융산업의 혁신’이라는 출범 취지가 퇴색하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으로 보고 있다. 비용 절감 필요성이 커지자 인터넷은행이 주도했던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수수료 면제 조치가 번복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 ‘포용금융’ 핑계로 고신용자마저 외면…대출 문턱은 소비자에게 더 높아져
인터넷은행들은 소비자의 금융 접근성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토스뱅크는 2022년 2월 국내 최초로 개인사업자 대상 100% 비대면 신용대출을 출시하며 혁신성을 내세웠지만, 건전성 악화에 따라 2023년 말부터 올해 3월 말까지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을 20% 가까이 줄이는 등 대출 문턱을 크게 높였다. 이는 혁신이 사라진 것은 수익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특히 전체 신용대출의 30% 이상을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채워야 하는 정부의 규제가 4년 넘게 인터넷은행에만 부과되자 연체율이 치솟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케이뱅크는 지난해 12월 신용점수 900점이 넘는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 공급을 전면 중단하기까지 했다. 신용점수가 하위 50%인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잔액을 전체 신용대출의 3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 금융당국 규제를 지키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로 해석된다.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금리를 고신용자보다 낮게 책정하며 규제 준수를 위해 노력했지만, 비중을 맞추기 어려워지자 고신용자의 유입 자체를 차단한 것이다. 이로 인해 고신용자는 은행 선택권에 제약이 생기고, 인터넷은행은 안정적 수익을 얻을 기회를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당국이 인터넷은행에 부과하는 중·저신용자 비중 규제는 올해 더 강화됐다. 결국 이러한 변화의 부담은 고스란히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정부-기업 ‘대화 부재’가 낳은 엇박자…소통으로 상생 해법 찾아야
금융당국이 인터넷은행에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규제를 처음 부과하기 시작한 것은 2021년 5월이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인터넷은행에 2023년 말까지 전체 신용대출 잔액 중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30%로 높이라고 주문했다. 올해 2월에는 평균 잔액뿐만 아니라 분기별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도 30% 비중을 충족하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이에 카카오뱅크는 중·저신용자 대출 금리를 고신용자보다 낮게 책정하는 ‘역마진’ 정책까지 쓰고 있다.
문제는 고신용자가 인터넷은행을 이용할 기회를 사실상 잃었다는 점이다. 현재 인터넷은행 3사의 고신용자 신용대출 평균 금리(연 4.57~4.86%)는 4대 시중은행(연 4.02~4.18%)보다도 0.6%포인트 정도 높은 수준이다. 한 인터넷은행 임원은 “대면 영업이 법으로 금지돼 있어 기업대출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동시에 중·저신용자 대출 규제를 강화하다 보니 성장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은행들의 결정은 정부 당국과의 충분한 교감이나 합리적인 해법 모색이 선행되지 않은 채 기업의 ‘생존’이라는 명분 아래 단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 간의 엇박자가 심각하다는 평가다. 정부의 ‘포용금융’이라는 중요한 정책 취지는 분명히 지켜져야 하지만, 그 방식이 기업의 현실적 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이 모든 문제 해결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형태로 나타난다면, 결국 서민 금융 접근성 저하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인터넷은행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포용금융’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