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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무더위 속에 더 절실한 ‘에너지 복지 정책’의 전환

이상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야간까지 이어지는 열대야로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폭염 주의보와 경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표되고 있고,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19일까지 900여 명이 열사병 등 온열 질환을 겪었고 사망자도 9명을 넘었다고 한다.

폭염 주의보는 하루 중 최고기온이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되고, 폭염 경보는 일 최고기온이 35℃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되므로 태풍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폭염도 주의보 보다는 경보가 더 심각한 상태이다. 그리고 폭염 경보나 폭염 주의보 여부에 상관없이, 이렇게 외부 기온이 높은 시간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그늘에서 쉬거나 작업을 멈추어야 한다. 특히 어린이나 노인들의 경우 체온조절 기능이 떨어져 있으므로 주의를 해야 한다.

소득, 에너지 소비 그리고 건강

그러나 폭염 주의보나 경보가 내린 무더운 날에도 일을 멈추거나 쉬지를 못하고 힘들게 일해야만 하는 분들이 있고, 이들에게 온열 관련 질환이 더 많고 사망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5년간(2013~2017) 온열 질환 감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총 6,500명의 온열 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에서 40%(2,588명)는 논밭/작업장 등 실외에서 12시~17시 사이에 발생했다. 특히 온열 질환자는 50세 이상이 전체의 56.4%였고, 이로 인한 사망자도 50세 이상이 75.9%로 장년과 고령층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같은 고열 환경에서 일을 하거나 생활을 하더라도 에너지 소비가 높은 계층은 사망률이나 관련 질환의 발생률이 낮아서 온열 질환도 소득에 따른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표 1. 분위별 가구 소득, 연료비 지출액, 연료비 비율

주1) ( )안의 숫자는 소득 1분위 가구를 기준으로(=100.0) 지수화한 수치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2016년)에 따르면, 가난할수록 연료비 부담이 크고, 부자일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을 10단계로 나누어 가장 가난한 1분위와 가장 부자인 10분위의 에너지 소비량을 살펴보았더니, 가구 소득은 10분위가 1분위에 비해 21배 높은데 비해, 에너지로 사용하는 연료비는 2.3배 정도 부자가 더 많았다. 빈부 격차에 비해 연료비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은 에너지가 “필수 생활재”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소득 대비 연료비의 비율을 살펴보았더니, 가난한 사람은 가구 소득의 18.5%를 연료비로 사용하는 데 비해 부자인 10분위는 1.8%만을 연료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즉 가난할수록 전체 소득에서 에너지 관련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가난한 사람들은 옥탑방이나 지하방 등 상대적으로 고온·다습한 불량한 주거환경에 거주하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함에도 오히려 단열이 잘 되는 쾌적한 주거에 사는 부자들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같은 도시의 같은 동네에 살아도 가난한 사람들은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춥게 지내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소득 수준에 따른 에너지 소비의 차이는 감기 등 질병 발생율의 차이로 나타나고, 공부와 휴식 등 재충전과 교육 환경의 차이로 귀결되어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킨다. 따라서 생존을 위한 필수재인 에너지를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에너지 빈곤층이란 난방과 보온을 위한 적절한 에너지의 사용에서 제한을 받는 계층을 말한다. 영국의 ‘주택난방 및 에너지 절약법(Warm Homes and Conservation Act, 2000)’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에너지 빈곤 여부를 구분하게 된다. 영국 정부는 겨울철 거실 온도 21℃, 거실 이외의 온도 18℃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에너지 구매 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규정하고 있다. 에너지 빈곤층의 경우 비용 부담 때문에 겨울철 추위나 여름철 무더위에도 냉난방 장치의 가동이 힘들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빈곤층의 상당수가 폭염에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246개 환경·소비자·여성단체 전문 NGO 네트워크인 에너지시민연대가 작년에 발표한 ‘2015년도 여름철 빈곤층 에너지 주거환경 실태조사(3차 년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60%가 폭염으로 인한 대표적인 온열 질환인 어지럼증을 호소했으며, 41%가 두통을 앓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14%는 폭염으로 인해 호흡곤란을 앓는 등 위험 수위까지 경험했고, 높은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실신한 경험이 있는 경우도 6%에 달했다.

우리나라 에너지 복지 정책의 현 주소

인간으로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에너지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기관이 제공하는 사회적 서비스를 ‘에너지 복지’라고 한다. 이런 개념은 에너지가 현대 사회에서 의(옷), 식(음식), 그리고 주(거주 공간)의 한 부분으로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성별, 지역별, 연령별, 그리고 소득 수준에 따른 차별 없이 적정 수준으로 공급돼야 한다는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6년 3월 3일 공포된 에너지 기본법 제4조 제5항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 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 대한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에 기여하여야 한다.’라고 에너지 복지를 국민의 보편적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에너지 복지를 위한 사업 방법은 다양하다. 겨울에 연탄을 취약 가정에 배달해 주는 것이나 전기요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에너지 바우처를 배급해 주는 방법도 있고, 취약 가구를 대상으로 보일러를 고쳐주거나 배관을 새로 깔아주는 것도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방안이다.

창문틀을 열 차단 효율이 높은 것으로 바꾸어 주거나 겨울에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비닐을 발라주는 것, 그리고 단열재를 추가로 시공해주는 것도 에너지 복지 사업의 일환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신재생 에너지의 보급을 통해 에너지 비용을 줄이고,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지역 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수력이나 태양광, 풍력뿐만 아니라 조력이나 지열발전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도 국가가 에너지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하는 것들이다.

이런 에너지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정부는 2015년 겨울부터(12-2월) 약 80여만(추산) 에너지 취약 가구를 지원 대상으로 확정하고, 최소한의 난방을 보장하기 위해 전자카드 형태의 에너지 바우처(이용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에너지 바우처의 지원 대상은 기준 중위소득의 40% 이하인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수급자들로서 겨울철 추위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만 65세 이상의 노인이나 만 6세 미만의 영·유아, 그리고 1~6급 장애인이 포함된 약 80만 가구이다.

동절기인 12월에서 2월까지 3개월 간 1인 가구는 8만1천 원, 2인 가구는 10만2천 원, 3인 이상 가구는 11만4천 원으로 가구당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3단계로 차등 지급하고 있다. 지원 형태도 전기·도시가스·지역난방·등유·LPG·연탄 등 난방 에너지를 선택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카드 방식의 바우처로 지급되며, 보완적으로 수급자가 신청 시 카드 결제가 어려운 전기, 지역난방 등 아파트 에너지원을 선택한 경우 요금을 자동 차감하는 가상카드도 도입할 예정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겨울철 복지 사각지대 집중 발굴 기간」을 운영해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 59만8000명을 선도적으로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찾아서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위험도가 높은 1인 가구 2만 명을 추가한 총 14만 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통해 실시했고,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17.11.~)로 보호 가능성이 커진 노인·장애인 부양가구 등을 집중 조사하여 추가로 4만2000명이 기초생활보장이나 긴급복지 지원과 더불어 에너지 바우처 등 공공 복지급여를 새로 지원받게 됐다.

정부가 국민의 기본생활 보장을 위해 전 방위적으로 복지 제도를 확충하고 있지만, 복지 제도를 잘 몰라서 신청을 못하는 취약계층도 있다. 각종 취약계층이 복지 지원 대상에서 누락되어 사망하는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보건복지부가 행자부, 산자부, 여성부, 교육부 등의 자료를 취합하여 전산으로 연계하는 “행복e음”을 통해 전기료 등의 감면 누락 예상 대상자 명단을 확인하고, 신청 안내문을 발송한 뒤, 읍·면·동 주민 센터에서 도시가스 비용이나 전기요금, 그리고 난방비 등 감면 서비스 일괄 신청 제도를 시행하여 대상자들이 절차나 방법을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해 주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바람직한 에너지 복지 정책의 방향

폭염 경보와 주의보가 계속되고 있다. 이번 폭염은 한 달가량 이어지는 사상 최장이자 최악이 될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고 있다. 전국에 에너지 빈곤층은 150만 명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쪽방 촌에 사는 주민들은 은행이나 관공서도 없어 더위를 피하기 위해 근처 슈퍼마켓을 찾는다. 전기요금이 무서워 불도 제대로 못 켜고 사는데, 선풍기는 사치인 분들에게는 열병이 나도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 폐지 줍는 일을 하다 더위에 지쳐 집에 돌아와도 더위를 피할 수 없는 형편인 노인들도 많다.

폭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는 건강 수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물 자주 마시기, 더운 시간대에는 휴식하기 등 기본적인 건강 수칙을 준수하고, 폭염 시에 갈증을 느끼기 이전부터 규칙적으로 수분을 섭취하도록 하며, 어지러움, 두통, 메스꺼움 등의 초기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시원한 곳으로 이동해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폭염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면 가능한 12시~17시까지 위험시간대엔 활동을 줄이고, 활동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챙 넓은 모자와 밝고 헐렁한 옷 등을 착용하면 온열 질환의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폭염 시 음주 또는 다량의 카페인 음료를 마신 후 작업하면 위험하고, 심혈관 질환, 당뇨병, 뇌졸중 등이 있는 사람은 폭염에 더 취약할 수 있으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이런 기본 수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건강을 지켜내기에 충분하지 않다. 한여름에 누구는 에어컨을 너무 세게 가동하여 냉방병으로 병원에 가고, 또 다른 누구는 선풍기조차 틀지 못해 온열 질환에 시달리는 등 에너지 이용에도 불평등이 심각한 것은 소득의 양극화로 인한 피해를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하겠다.

한 달에 받는 국민기초생활 수급비는 집세와 병원비, 식비 등 우선 급한 부분에 쓰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지난해 에너지 빈곤층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선풍기조차 없는 가구가 300가구 중 10가구나 됐다. 냉장고나 창문이 아예 없는 집도 많았다. 이런 집들은 열대야가 있는 날은 밤에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독거노인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더위에 더 취약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에서 선풍기를 무료로 지원해 주기도 하지만 일부 빈곤층에게는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다. 몇 천 원의 전기료 낼 돈이 부족해 선풍기를 틀지 못하거나 전기료 연체로 단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에너지 복지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겨울철에만 초점을 맞추고 난방 지원에만 머물러 있는 정책에서 여름철의 냉방 지원까지 에너지 복지 정책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는 우리나라의 기후뿐만 아니라 식생조차 바꾸고 있다. 사과 농사의 북방 한계선이 강원도까지 올라오고 동해안의 난류 유입으로 어족 자원도 바뀌고 있다. 이제 4계절이 뚜렷한 온대 기후에서 겨울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는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됐다. 이런 변화에 맞추어 겨울철 난방 중심으로 짜인 정부의 에너지 복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한낮의 실내 기온이 50℃ 이상으로 올라가는 옥탑방이나, 여름철 내내 곰팡이가 피는 지하방은 최소 주거기준 미달로 거주 지역에서 제외해서 건축 인허가를 불허하는 것부터 가정마다 선풍기를 보급하고 최소한의 냉방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적인 전기를 공급하는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 복지 정책을 좀 더 세밀하게 주민의 실정과 요구에 맞도록 운영해야 한다. 전국의 각 지자체들이 경로당이나 복지관, 주민 센터 등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만 해도 무더위 쉼터가 3천여 개나 있다. 개별 가정을 지원하기보다는 한 곳에 냉방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발상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이 좋아하지 않고 이용률도 매우 낮다. 무더위 쉼터가 가장 절실한 독거 와상노인의 경우 무더위 쉼터까지 혼자 찾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이용이 어렵다. 경로당이나 노인정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구분뿐만 아니라 개인적 친소 관계로 이용하는 대상들이 나누어져 있어 외부인이 들어갈 경우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시설들을 만들어 놓고, 알아서 찾아오라고 하거나 주의보가 내렸으니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로변에 설치한 무더위 그늘 막에도 햇빛을 막을 수 있는 차광 천을 추가로 덧붙인 곳은 이용하는 주민들이 많은데, 유리 천장을 그대로 노출하여 비는 막아 주지만 햇살이 그대로 내리 쬐는 곳에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제는 지역별, 가구별 특성에 맞게 좀 더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

셋째, 이제 에너지 복지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에너지 기본법에 있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 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 대한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에 기여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법은 지키지 않아도 처벌하는 조항이 없으니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이 조항에 따른 재원 마련의 근거가 없으니 실제로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에너지 기본법에 근거하여 에너지를 유통하고 판매하는 기업들이 그 수익금의 일부를 에너지 복지재단에 출연하여 에너지 복지 사업의 생색을 내는 소극적 수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에너지 복지기금으로 전출하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에너지 복지 사업에 투입할 수 있도록 재원을 조성해야 한다. 이제는 선풍기도 사치라는 에너지 빈곤층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에너지는 생존의 문제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돈이 없어 무더위에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 촛불혁명은 정부의 적극적 역할로 국민을 건강하게 지키고 보호하는 ‘복지국가’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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