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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전문지

독일의 비영리 복지,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

송영신(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사회복지학 박사)

새해 초부터 뉴스를 통해 한 가족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복지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복지 정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다시 반복된 사건이었다. 일가족은 “삶이 힘들다”는 말을 유서에 남겼다. 이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 생활고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개인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회

지난해 이와 같이 일가족 사망 사건은 무려 17건에 이르렀고, 60여명이 세상을 등졌다(한겨레, 2020.1.7). 생활고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되는 현금 및 현물 서비스 형태의 적절한 지원 등 복지적 대응 조치에 대한 문제를 이런 참담한 결과의 주된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를 반영하는 다양한 정책 및 새로운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근본적으로 우리는 ‘내 주변의 이웃에 대해 관심이 있느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요즘은 지역사회에서 커뮤니티 케어나 맞춤형 사회서비스 등을 통해 개인의 욕구 중심으로 정부가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각 개인의 욕구와 구체적인 생활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해당 관청, 담당 공무원, 전문 인력에게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인적 연결망이 되는 이웃 관계에도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요즘은 옆집 사람들의 얼굴도 모르고 산다. 서로 마주쳐도 인사도 하지 않는 팍팍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물리적으로 지역사회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이들은 ‘이웃’이다.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신약성서 누가(루카)복음에는 유명한 비유 중의 하나인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한 율법 교사가 예수를 찾아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예수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채로 내버려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 사람을 지나쳐가는 세 부류의 사람이 여기서 등장한다. 첫 번째는 당시 종교 최고 지도자인 제사장이었으며, 두 번째는 역시 사제의 역할을 맡은 레위(Levit)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도 만난 사람을 마주친 사람은 바로 당시 사람들(특히 유태인)에게 무시당하고 사람으로조차 대접받지 못했던 사마리아 사람(Samariter)이었다.

이 가운데서 결국 강도 만난 사람을 치료해주고 돌봐준 자는 사마리아 사람이다. 이제 예수는 다시 율법 교사에게 질문한다.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물론 율법 교사는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이 이웃이라고 대답했다. 이 이야기에서 이웃이 누구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이 율법 교사처럼 자신을 강도 만난 사람에 대입하여 “내 이웃은 누구인가?”라는 생각은 쉽게 하지만,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라는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디아코니(Diakonie) 정신

독일의 비영리 자율복지단체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디아코니(Diakonie)”의 창설자인 요한 힌리히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rn, 1808-1881)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이다. 19세기 프로이센(지금의 독일)의 함부르크 출신인 비헤른은 이런 이웃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1833년 빈곤한 어린이들을 위해 구호의 집(Rettungshaus)을 설립하였는데, 이는 “라우에 하우스(Rauhe Haus)”로 발전해 아이들과 선생님(양육 교사)들이 함께 가족처럼 거주하는 하나의 구호 마을을 형성했다.

또, 아이들을 돌보는 ‘디아콘(Diakon: 남성 집사 / Diakonin, Diakonisse: 여성 집사)’을 교육하였다. 1844년부터는 라우에 하우스에서 “비행하는 잎사귀(Fliegende Blätter)”라는 주간지를 발행하여 교육적이고 대중적인 선교에 대한 아이디어를 확산시켰다. 비헤른은 교회에서 소외된 하층 계급의 재기독교화(Rechristianisierung), 활력 있는 대중 교회 조성, 지역 교회의 분열 극복을 목표로 삼았다.

비헤른을 통한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당시의 사회 문제에 대해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각성과 개혁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내적 선교(Innere Mission)’의 기치를 걸고 교회 내부로부터 각성 운동을 일으켜 사회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성서(Bible)의 질서로 변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1848년 9월, 비헤른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발생한 곳인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열린 “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에서 모든 교회를 향해 ‘내적 선교’를 위한 열정적 연설을 했다.

이를 기반으로 설립된 “독일 개신교회의 내적 선교를 위한 중앙위원회”와 1849년 “독일 국가에 대한 회고문”이 출판되면서 독일의 내적 선교에 대한 정신적·조직적 확장이 이루어졌다. 바로 이 시기를 현재 독일의 디아코니(Diakonie; Diakonisches Werk) 역사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약자들의 보금자리 “베텔(Bethel)”

비헤른의 뒤를 잇는 디아코니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은 “베텔(Bethel)”을 설립한 프리드리히 폰 보델슈빙 시니어(Friedrich von Bodelschwingh d.Ä., 1831-1910)이다. 귀족 집안 출신인 폰 보델슈빙은 신학 공부를 마친 후 인도에 선교사로 떠나기로 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1858년 파리에 있는 독일 교회의 목사를 맡게 되었다. 그 당시는 유럽의 많은 도시에는 산업혁명 시기에 발생한 수많은 빈민들이 있었는데, 폰 보델슈빙은 파리의 슬럼가에 모여 살던 독일 출신의 빈곤한 이주 노동자들을 돌보았다.

그는 1864년 다시 독일로 돌아와 작은 지역의 교구 사제를 담당했다. 이후 현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빌레펠트(Bielefeld)에 “라인란트와 베스트팔렌의 뇌전증(Epilepsy) 환자를 위한 치료 및 간호 센터(Evangelische Heil- und Pflegeanstalt für Epileptische Rheinlands und Westfalens, 1867)”를 설립하고, 이곳과 함께 “빌레펠트 디아코니센 하우스(Bielefelder Diakonissenhaus, 1869)”의 책임자를 맡게 되었다. 폰 보델슈빙이 이 기관들을 담당한 후, 이것들이 발전하여 1873년 “베텔(Bethel)”이 탄생하게 되었다.

히브리어로 ‘신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텔(Bethel)은 폰 보델슈빙이 사망한 후 4천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자립적인 교회 공동체와 지역사회가 조직된 작은 도시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수십여 개의 병원과 요양센터가 세워져 2천 명 이상의 뇌전증 환자, 정신장애인, 정신질환자를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 약 1,250명의 디아코니세, 450여 명의 디아콘이 봉사를 담당했다. 폰 보델슈빙 사후에는 막내 아들인 폰 보델슈빙 주니어(Friedrich von Bodelschwingh d.J., 1877-1946)가 베텔을 책임지고 관리하였다. 베텔은 도시 속의 작은 도시로서, 또 공동체로서 현재까지 사회적으로 매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웃 사랑(Nächstenliebe)’의 이념과 실천

올해로 디아코니는 창립 172주년을 맞이한다. 그 동안 두 번의 세계대전과 정치적 압박,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디아코니는 현재 독일 전역에 약 31,500여 개의 의료시설과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약 525,000여 명의 직원과 700,000명의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매우 거대한 조직이 되었다. 이런 역사 속에서 디아코니가 확고하게 지키고 있는 것은 ‘이웃 사랑(Nächstenliebe)’에 대한 이념이다. 다음과 같은 핵심 이념을 통해 디아코니가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각 사람을 개별적으로 인식한다.”
“우리는 고난, 고통, 약점을 삶의 일부로 바라본다.”
“우리는 특히 존엄성에 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우리는 삶의 한 가운데서 마주치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행동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간 존엄을 위한 입법, 공정한 기회가 있는 사회, 공동 선(善)에 대한 일관된 관점을 지향한다.”
“디아코니의 다양한 기관들은 협력 관계 속에서 복지국가를 함께 구성해간다.”

디아코니는 모든 사람을 다른 이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개인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신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리고 아무도 해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이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생각의 중요한 근거가 됨을 강조한다.

비헤른과 폰 보델슈빙이 활동하던 19세기는 어린이·여성·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디아코니 운동을 확산시킨 핵심 인물들은 위와 같은 정신으로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하며 현장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특히 비헤른의 “모든 일(봉사)은 먼저 심장에서 나와야하고, 그런 다음에 말과 행동으로 실행해야 한다.”라는 말은 디아코니의 지향점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이로써 디아코니의 정신과 행동은 나아가 독일이 복지국가로 자리를 잡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과연 누가 나의 이웃이 될 수 있고, 또한 나는 누구에게 이웃이 될 수 있을까? 독일 디아코니의 역사와 활동을 고찰해볼 때 우리나라의 종교계, 특히 기독교는 이웃이 되어줄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밤 풍경을 보면 동네마다 붉은 십자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크고 작은 교회(개신교)들이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 주변의 매우 가까이에 있는 이 교회들은 일상 속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지역사회 안에서 이웃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교회들도 많이 있지만, 이른바 기독교 정신에서 출발하는 ‘이웃 사랑’의 행위가 사람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우리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그 ‘이웃’이 내부에 소속된 구성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생계와 돌봄의 문제로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향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시야를 넓히는 것도 교회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공식적인 사회 안전망에 들어오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조금 더 촘촘한 사회적 지지 네트워킹을 형성하여 ‘이웃’의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초반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사천의 선인(Der gute Mensch von Sezuan)”에는 쉔테(Shen Te)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쉔테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가족을 받아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누울 곳이 없어요. 그들은 친구들도 없어요. 그들은 누군가가 필요해요. 그때 ‘안 돼요’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쉔테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것이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이웃이 될 때, 그 누군가도 나의 이웃이 되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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