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 AS 노동자 사망 뒤엔 ‘아침부터 쏟아진 실적 압박 문자’와 ‘열악한 노동 환경’
삼성전자서비스 가전 수리 노동자가 세탁기 수리 도중 감전사를 당한 사건과 관련해, 열악한 근무환경과 실적압박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금속노조는 30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별관 4층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잔뜩 밀려있는 수리 건과, 매일같이 실적 독촉을 하는 회사 압박에 위험을 감수하며 1인 작업을 해야 했던 서비스 노동자의 죽음 앞에 우리는 참담함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고 윤00 씨(44세·삼성전자서비스 디지털양천센터 소속)는 지난 28일 수리를 의뢰한 고객 집에서 세탁기 수리 업무를 하던 중 감전돼 사망했다.
윤씨는 사건 당일 ‘세탁기에서 전기가 느껴진다’는 고장 접수를 받고 오후 1시30분 경 고객 집을 방문했다.
고인이 수리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전산 등록을 한 시간이 1시 41분, 감전돼 쓰러져 있는 것을 본 고객이 119에 신고한 시간은 1시 54분. 13분 만에 참혹한 사건이 발생됐다.
당시 작업을 하던 장소는 수리 작업을 하기에 매우 열악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 공간은 세탁기를 움직이는 것 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협소했다.
건물이 노후 돼 전기 차단기를 내릴 수 없는 곳이었고, 작업을 하려면 제품 전선을 콘센트에서 빼야 하는데 콘센트는 손이 제대로 닿지 않는 안쪽에 있었다.
윤씨는 전선을 제거하고 작업이 가능하도록 좁은 공간에서 세탁기를 밀면서 이동시켜야 했다.
사망 원인은 제품을 움직이는 과정에 세탁기 뒷부분의 급수 밸브가 파손돼 물이 튀었고, 이로 인해 전기에 감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 당시 혼자서 작업했던 상황이라 정확한 사고 원인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사고 장소와 제품 위치 등을 확인한 동료 노동자들은 “도저히 안전하게 작업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씨는 사건 현장에서 작업을 제대로 하기도 어렵고, 여러 위험이 예측되는 상황이었지만 작업을 강행 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가전제품 구매와 사용이 급증하면서 가전 수리 의뢰가 증가했다.
AS 노동자들은 기존 6월~9월 성수기 수준의 업무량을 이미 4월부터 지금까지 처리해오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업무량은 늘었는데 확진자 센터 방문 등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인력은 제한되고, 대형 가전제품이 늘어나면서 수리시간은 늘어나고 업무강도 역시 예전보다 심해졌다.
심지어 2020년부터 회사가 신규사업을 시작하면서 기존 수리 업무를 하던 인력을 새로운 사업에 배치해 인력 부족 문제도 더 심해진 상황이었다.
안그래도 3~4일씩 업무가 밀려있는 상황에서 한 차례 방문으로 처리가 안되는 수리 건은 스케줄을 쪼개서 또 방문해야 했다.
고인을 비롯해 대부분의 수리 기사 노동자들은 20~30건 이상의 미처리 건이 밀려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회사의 실적 압박은 끊이지 않았다.
윤씨는 사망하기 며칠 전부터 실적을 채우라는 관리자들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사고를 당하기 전날에는 ‘실적이 미달됐으니 경위를 제출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28일 고인과 통화한 동료는 윤씨가 스케쥴이 밀려 심하게 압박을 받던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양천센터 노동자들은 1시간에 1건 기준으로 하루 8건의 수리건을 배정받는다.
윤씨 역시 당일 8건의 수리를 배정받았지만, 점심시간에 통화할 당시 오전에 두 건 밖에 처리하지 못했다고 동료는 전했다.
오후에 남은 6건을 모두 처리하지 않으면 안그래도 밀려있는 처리건이 더 밀리고, 당일 실적을 다 채우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더 급하게, 위험한 상황이라도 뒤로 미루지 못하고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료 노동자들은 “작업 환경이 열악하고 이대로 일하면 위험하다는 걸 알아도 실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3~4일 뒤로 미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고객에게 3일 이상 기다려달라는 얘기를 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도 윤씨와 같이 수리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알아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업무 실적과 고객 평가를 토대로 연말 평가를 받고 이를 통해 진급 여부 등이 결정되는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일 할 권리를 강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윤씨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고객 평가, 실적에 대한 압박으로 인한 심적 어려움이 매우 컸다고 증언하고 있다.
빠르게 고객 집을 찾아가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수리 업무를 마친 뒤 고객 만족도 조사를 진행하는 ‘해피콜’로 인한 심적 부담이 컸다.
회사의 실적 압박도 늘상 있었다. 회사는 메신저로 개인별 실적을 공유하고 다그쳤다.
‘신속방문’, ‘초도수리(첫 방문에 한번에 수리를 완료하는 것)’라는 이름으로 고객 집에 한 번 방문하면 무조건 한 번에 해결할 것을 강요하고 다그쳤다.
처리건이 적으면 아침마다 메시지를 보냈다.
회사는 이벤트를 열고 9건을 처리하면 상품권을 주고, 11건을 처리하면 돈을 주면서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고 비교하며 실적을 압박했다.
게다가 실적은 등급표로 매겨졌고, 등급에 따라 호봉과 진급 여부가 결정됐다.
모두 노동자들의 안전보다는 비용절감을 위한 조치로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동료들은 “임금, 승진 등과 직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노동자들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됐고, 위험해도 작업을 멈추거나 미룰 수 없다”고 입을 모아 토로한다.
“혼자 하지 않았다면 살았다. 죽지 않았다.”
윤씨의 죽음 앞에 삼성전자서비스 동료 노동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열악한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덜 위험하게 작업을 하려면 두 명이 함께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는 2인 1조 작업을 의무적으로 배치하지 않고 있다”
“일부 작업에 대해서만 2인 1조 작업을 하도록 하고, 그마저도 이미 몇 십건의 수리 건이 밀려있는 노동자들이 서로의 스케쥴을 조정해서 업무를 분담해야 가능한 상황이다”
비단 28일의 감전사고만이 아니라 각종 대형 가전을 취급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두 명이 한다면 그나마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인력은 부족하고, 수리건은 감당하기 어렵게 밀려있는 상황에서 2인 1조 작업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그림의 떡 같은 존재다.
가전 수리 노동자들은 혼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빠르게 업무 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내몰려 있는 상황이지만, 감전 뿐 아니라 다양한 위험요인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보건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8일 사건 당시 고인이 해야 했던 업무는 감전 위험이 높은 전기 작업이었지만 사전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안전작업표준이나 안전작업 매뉴얼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수리 작업 시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작업 절차를 휴대폰 동영상과 안내문 형태로 제공할 뿐, 작업별로 점검해야 할 안전보건조치 사항, 작업 방식 등을 명시한 안전작업표준은 없었고 노동자들에게 구체적인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
감전 방지를 위한 절연장갑, 절연안전화를 모든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도 않았다.
윤씨의 부인은 저녁이면 집에 와서 허겁지겁 밥을 먹던 신랑의 모습을 안타깝게 얘기했다.
점심시간이 있지만 시간을 쪼개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수리 건을 해결해야 하면 밥도 먹지 못하고 하루종일 뛰어다니다 뒤늦은 저녁밥을 먹어야 했다.
충분한 안전조치가 되지 않은 작업환경, 안전작업을 위한 안전작업표준도 없고 교육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 그 와중에 밀려드는 콜을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들. 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한 삼성으로 인해 11살과 2살 두 어린 자녀를 둔 노동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그동안 숱하게 ‘위험한 작업을 2인 1조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 인력을 늘려달라, 실적 압박을 중단하라’고 요구해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속노조는 “삼성은 수리 작업 시 안전확보를 위해 인력을 충원하고 2인 1조 작업을 시행해야 한다”며 “전기 작업을 포함해 모든 수리 업무 시 사전에 안전을 확보하고 작업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조치와 작업방식 등을 담은 안전작업표준을 즉각 마련하고 노동자들에게 구체적인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험작업 시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안전전문인력 배치 등 근본적인 대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금속노조는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요구한다. 회사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노동자들을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지 않도록 즉각 작업중지를 명령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2인 1조 작업 및 구조적인 대책, 전기 작업 시 안전대책을 사업주가 즉각 실시하도록 지도감독하라”며 “또 다른 노동자가 이렇게 허망하고 끔찍하게 죽지 않도록,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삼성전자서비스(이하 회사)는 삼성전자(주)가 전체 지분의 99.33%를, 나머지는 개인주주가 보유하고 있다.
회사는 삼성전자(주)의 서비스사업부에서 분사해 1998년 10월에 설립됐으며, 전국에 지사와 센터를 두면서 가전제품 수리서비스 및 유지보수 등의 용역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