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필드

노동·인권 전문지

노동부 몰려간 가전제품 방문점검원 “표준계약서 마련하라”

1년 넘게 특수고용직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표준계약서 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가전제품 방문점검원들은 29일 “고용노동부가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기조에 따라 표준계약서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생존을 걸고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은 이날 오전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전제품 방문점검원들의 현장은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최소한의 노동조건 기준이 돼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가전제품 방문점검원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취급을 받는다. 따라서 법이 강제하는 근로계약서 대신 회사가 임의로 규정한 위임계약서에 따라 일을 한다.

가전렌탈 업계에 통용되는 위임계약서에는 가전제품 방문점검원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업무상 비용을 전가하는 등 방문점검원의 일방적 손해와 희생을 강요하는 내용이 관행처럼 명시돼있다. 이들이 법·제도상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매우 취약한 노동환경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불합리한 위임계약서를 대체할 표준계약서를 도입해 업계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노동조합의 요구다.

가장 고질적인 사례가 ‘수당되물림’ 관행이다. 고객이 렌탈계약 체결 이후 회사가 정한 기간 내에 렌탈제품을 반환할 시 방문점검원이 받은 영업수수료를 회사가 도로 받아가는 제도다. 고객이 렌탈료를 체납해도 마찬가지다.

SK매직에서 방문점검원으로 일하는 김경희 조합원은 “저도 회사에 빼앗겨 돌려받지 못한 되물림 수당이 있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며 “우리의 생계가 걸린 문제임에도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고 해결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초저임금 문제도 심각하다. 서비스연맹 노동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업무상 사용비용 등을 제외하면 방문점검원의 평균 시급은 4,350원이다. 2023년 최저임금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코웨이의 방문점검원 신희수 조합원은 “코웨이에서 일하면서도 식당 설거지 알바나 홀서빙 알바, 물류창고 스캔작업 알바 등 투잡·쓰리잡은 기본으로 하고 있다”며 “동료 중에는 쿠팡 알바를 하다가 본업이 쿠팡 직원처럼 된 경우도 있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관리계정(고객이 사용하는 렌탈제품에 대한 점검 수요 건)에 대한 중간관리자의 갑질 문제도 심각하다.

방문점검원들은 기본급이 없는 탓에, 신규 영업 건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자신의 관리계정이 유일한 일감이자 수입원이다. 관리계정은 중간관리자에 의해 매월 배정되는데, 방문점검원의 생사여탈권을 쥔 이들에 의해 불평등한 배정이 이뤄지는 등 갑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계정갑질은 노조활동에 나선 조합원들을 콕 집어 탄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중간관리자의 친소관계 및 성별을 기준으로 계정을 몰아주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SK매직 방문점검원 A씨가 계정갑질로 생계곤란에 시달리다가 고독사한 채 발견된 적도 있다.

가전통신노조 이현철 위원장은 “이러한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7만5천여 장에 달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서명용지를 노동부에 전달했지만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라며 “최소한의 노동환경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표준계약서가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회견 직후 표준계약서 마련을 촉구하는 엽서 1천여 장을 노동부에 전달했다.

원고료 응원하기

LEAVE A RESPONSE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