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최대 실적에도 회장 교체…윤종규 재임 시절 발탁된 이재근 선택
고문 위촉 승인한 이사 4명 회추위 참여…전직 회장 영향력 관리에 물음표
KB금융그룹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양종희 회장의 연임 대신 이재근 KB금융지주 부문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택했다. 그런데 이번 인선에서 눈여겨볼 인물은 정작 회장 후보도 아닌 윤종규 전 회장이다. 퇴임 이후에도 경영고문으로 활동한 전직 회장과 이를 승인했던 이사회 구성원들이 차기 회장 선임에도 참여한 사실은 묘한 인사 구도를 보여준다.
15일 KB금융그룹의 경영실적과 지배구조 공시 등에 따르면 KB금융은 올해 상반기 3조884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13.1% 증가한 역대 최대 반기 실적이다. 그러나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지난 9월 11일 양 회장이 아닌 이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자로 선정했다.
물론 실적이 좋다고 회장직을 계속 맡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상 최대 이익을 낸 경영자를 교체하면서 내세운 변화와 세대교체의 실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 윤종규 퇴임 앞두고 고문 운영안 의결…이재근도 위촉안 찬성
윤종규 전 회장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9년간 KB금융그룹을 이끌었다. 양 회장은 윤 전 회장 재임 시절 KB손해보험 대표이사와 KB금융지주 부회장에 올랐고, 이 부문장 역시 2022년 KB국민은행장에 발탁됐다.
결국 현직 회장과 차기 회장 후보 모두 윤 전 회장 재임 기간 핵심 경영진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세대교체를 선택했지만 기존 인적 관계의 연속성까지 끊어진 것은 아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윤 전 회장의 퇴임을 전후한 이사회 결정이다. KB금융 이사회는 2023년 10월 24일 ‘경영자문역 운영(안)’을 의결했다. 윤 전 회장의 임기 만료를 불과 27일 앞둔 시점이다.
이후 2024년 6월 21일 이사회에서는 ‘지주회사 경영자문역 위촉(안)’이 의결됐다. 당시 양종희 회장과 KB국민은행장이자 지주 기타비상무이사였던 이재근 부문장도 찬성했다.

윤 전 회장은 2024년 6월 경영고문으로 위촉돼 올해 7월까지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 이후에도 약 2년간 그룹과 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한 셈이다.
다만 윤 전 회장이 이번 회장 후보 선정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영고문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만으로 인사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경영자문역의 역할은 어디까지였을까. 전직 회장의 경영 경험을 활용하는 것과 최고경영자 인선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사회가 어떤 자문 업무를 맡겼고, 보수와 지원은 어느 정도였으며, 인사 관련 의견 전달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는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 고문 위촉 승인한 이사들이 차기 회장도 선택…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회추위는 조화준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독립이사 7명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조화준·최재홍·이명활·김성용 이사 등 4명은 2024년 6월 경영자문역 위촉안에도 찬성한 것으로 공시돼 있다.
전직 회장의 고문 위촉을 승인한 이사회 구성원들이 차기 회장 후보를 고르는 자리에도 참여한 것이다.
물론 이사회가 고문 위촉과 회장 선임을 모두 담당하는 것은 정상적인 지배구조의 일부다. 같은 이사들이 두 결정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충돌이나 부당한 개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선의 공정성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됐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직 회장의 자문 활동과 차기 회장 후보 평가 사이에 어떤 경계를 두었는지, 공식적인 회추위 심사 외에 인사 관련 접촉은 없었는지 이사회가 설명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24년과 2025년에 이어 올해도 경영자문역 위촉 관련 안건이 이사회에서 다뤄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공개된 안건명만으로는 매번 위촉 대상이 누구였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겼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KB금융 회추위는 이재근 부문장을 선택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이 부문장 역시 은행장과 지주 주요 보직을 거치며 경영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그의 자격이나 역량을 과거 인적 관계만으로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양 회장 역시 윤 전 회장 재임 중 중용된 인물이다. 같은 인적 기반에서 성장한 경영진 사이의 교체가 무엇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것인지, 역대 최대 실적에도 현직 회장을 교체할 만큼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이 부문장은 오는 11월 20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정식 선임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KB금융은 특정 오너가 없는 금융지주회사다. 전직 회장을 경영고문으로 위촉하고 그 역할을 관리한 것도, 최대 실적을 거둔 현직 회장 대신 새로운 후보를 선택한 것도 이사회다.
그렇다면 이사회는 고문의 업무 범위와 처우, 인사 관련 접촉 여부, 후보 평가 과정에서 독립성을 확보한 근거를 주주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회장의 얼굴은 바뀌게 됐다. 그러나 회장을 선택하는 기준과 인적 관계의 구조까지 달라진 것인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