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도체 업체 펄스포지, 텍사스·뉴저지 법원에 소송
– 한화비전 공식 입장 “피소 사실 인지하나, 해당 업체와 거래 관계조차 없어”
– 김승연 회장·김동선 부사장 등 임원 등재… 오너가 직접 챙기는 계열사서 ‘이례적’ 분쟁
한화그룹의 보안 및 반도체 장비 핵심 계열사인 한화비전(주) 미국 현지 법인(Hanwha Vision America, Inc.)이 물품 대금 미지급 문제로 미 법원에서 잇따라 피소됐다.
이번 소송은 한화그룹이 올해 초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통합 한화비전’을 출범시키고, 김승연 회장과 삼남 김동선 부사장을 경영 전면에 배치한 지 1년 만에 발생했으며, 소송 결과에 따라 글로벌 인지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 텍사스·뉴저지 ‘투트랙’ 소송… 미 법원, 소장 접수 이틀 만에 소환장 발부

(아래) 뉴저지 지방 법원에 접수된 별도의 계약 위반 소송 상세 기록. 2025년 12월 15일 자로 피고인 한화비전 아메리카에 대한 법원의 공식 소환장(Summons)이 발부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18일 미국 법원 공시 시스템(Justia Dockets) 등에 따르면, 원고인 펄스포지는 지난 12일 텍사스 서부 연방지방법원(사건번호 1:25-cv-02050)에 이어, 13일 뉴저지 연방지방법원(사건번호 2:25-cv-18600 등)에도 소장을 제출했다.
원고가 이처럼 두 지역에서 동시에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는 한화비전 아메리카의 미국 내 사업 거점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원고인 펄스포지의 본사는 텍사스에 위치해 있고, 한화비전 아메리카의 미국 법인 본사는 뉴저지에 소재하고 있어, 법인의 총괄적인 책임을 묻고 판결 이후 자산 압류 등 집행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본사 소재지 법원을 추가로 선택한 전략적 대응이라는 분석이다.
뉴저지 연방지방법원 기록에 따르면, 법원은 소장이 접수된 지 이틀 만인 지난 12월 15일 피고인 한화비전 아메리카를 대상으로 공식 소환장(Summons)을 발부했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인 펄스포지 측은 소장과 함께 거래 사실을 뒷받침할 구매주문서와 미결제 송장 등 구체적인 증거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이 이를 근거로 소환장을 즉각 발부했다는 것은, 재판부가 “원고의 주장이 법적으로 충분히 다뤄볼 만한 근거를 갖췄다”고 판단하여 정식 재판 절차를 개시했음을 의미한다.
최근 일부 매체에 따르면, 원고인 펄스포지 측은 소장을 통해 “2021년 12월 장비 공급 계약에 따라 물품을 정상적으로 인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화비전 측이 약 35만 달러(한화 약 5억 원)의 대금을 4년째 미지급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해당 내용을 최초 보도했던 기사는 삭제된 상태이나, 본지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한화비전 측에 해당 수치와 내용의 진위 여부를 직접 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한화비전 홍보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국 법인이 피소를 당한 사실 자체는 맞다”고 공식 인정했다.
다만, 기사 삭제 사례 등을 언급하며 삭제된 기사 속의 구체적인 미결제 금액이나 기간 등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해당 업체와 거래 관계가 전혀 없다는 것이 회사의 공식 입장”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한화비전 측은 ‘거래 관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원고가 주장하는) 금액이 맞는지 틀리는지, 혹은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며 답변할 가치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사측은 원고인 펄스포지의 존재와 소송 제기 사실은 인지하고 있으나, 계약 당사자로서의 연결고리가 없으므로 법무팀이 대응할 사안일 뿐 경영상의 채무는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 법인명만 바뀐 ‘동일 주체’… 한화비전 “무관하다” 해명은 책임 회피인가?
다만 업계에서는 거래 시점인 2021년과 현재의 법인 명칭·지배구조 변화로 인해 해석상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당시 지금의 한화비전이 아니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산하 손자회사 ‘한화테크윈 아메리카(Hanwha Techwin America)’였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4년 9월 인적분할을 통해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를 설립했고, 해당 법인은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를 100% 자회사로 두는 구조였다. 이후 2025년 1월 1일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는 자회사였던 구(舊) 한화비전을 흡수합병하고, 존속 법인의 사명을 ‘한화비전㈜’으로 변경하며 통합 법인으로 출범했다.
구체적인 법인 이력을 살펴보면, 원고가 거래 시점으로 지목한 2021년 12월 당시 사업 주체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 한화테크윈 → 한화테크윈 아메리카라는 체계였다. 이후 2023년 3월, 모회사인 한국 한화테크윈의 글로벌 브랜드 통합에 따라 법적 실체는 그대로 두고 이름만 ‘한화비전 아메리카(Hanwha Vision America)’로 변경됐다.
2024년 9월~2025년 1월 한화그룹 지배구조 개편 이후 통합 한화비전 체제 아래에서, 2021년 한화테크윈 아메리카와 2025년 한화비전 아메리카는 사명 변경 전후를 관통하는 사업·운영의 연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화비전 측의 ‘거래 무관’ 입장이, 해당 거래 자체를 전면 부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 법인과 현재 법인을 별개로 간주하는 법적 해석에 따른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 합병과 함께 등판한 ‘오너가(家)’… ‘책임 경영’ 1년 여 만에 터진 글로벌 악재
이번 소송이 업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한화비전이 올해 초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합병을 거치며 ‘오너 책임 경영’ 체제로 전환한 직후 발생한 첫 글로벌 법적 분쟁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DART)에 따르면, 김승연 회장과 셋째 아들 김동선 부사장은 2024년 12월 한화비전 흡수합병 절차와 동시에 이 회사로 전입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재직 12개월 차를 맞이한 김승연 회장은 한화비전의 상근 회장으로, 김동선 부사장은 ‘미래비전총괄’ 직함을 달고 실질적인 경영과 전략 수립을 담당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올해 상반기 한화비전에서 약 23억 4,100만 원의 급여를 수령, 월 평균 약 3억 9,000만 원을 리더십과 회사 기여도의 대가로 받고 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한화비전은 오너 일가의 핵심 거점으로 평가된다.
최대주주는 ㈜한화(33.95%)이며, ㈜한화의 최대주주는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지분 5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18.80%)다.
아울러 한화비전은 올해에만 등기·미등기 임원 9명에게 총 46억 3,000만 원 규모, 14만 6,506주의 RSU(Restricted Stock Unit)를 부여했다. RSU는 일정 기간 후 주식이나 현금으로 전환되는 장기 성과 보상 제도이다.
한편, 한화비전의 핵심 종속기업인 한화비전 아메리카(HANWHA VISION AMERICA)는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5,814억 원, 순이익 98억 원을 기록하며 본사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책임지는 핵심 거점으로 성장했다.
연간 매출 1조 원대를 상회하는 거대 기업이 오너 일가에게 수십억 원의 보수를 지급하며 경영을 맡기는 가운데, 원고가 주장하는 대금 분쟁에 대해 “거래 사실이 없다”는 회사 측 입장이 법정에서 어떻게 소명될지가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직접 경영에 나선 시점에서 발생한 이번 소송은, 소송 금액의 사실 여부를 떠나 한화비전이 추구하는 글로벌 신뢰 관리 체계를 점검해야 할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