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여당이 형법상 배임죄 폐지 및 대체 입법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시민단체들은 배임죄가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억제하는 핵심 형사 장치라며, 충분한 보완 입법 없이 폐지부터 추진하는 것은 경제 정의와 기업 투명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이로움재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1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이재명 정부·민주당의 형법상 배임죄 폐지 추진, 무엇이 문제인가’ 좌담회를 열고 이같이 지적했다. 이들은 “기업 활동 위축 우려는 과장된 주장이며, 배임죄 폐지 방침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배임죄, 재벌 권한 남용 억제하는 형사적 통제 장치”
참가자들은 배임죄가 횡령이나 사기 등으로 규율되지 않는 경제범죄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해왔으며,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및 부의 세습을 억제하는 핵심 형사제도라고 입을 모았다. 이로움재단 이상훈 이사가 사회를 맡은 이번 좌담회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배임죄 폐지 방침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장진환 박사는 배임죄가 단순한 재산권 보호를 넘어 ‘사회적 신뢰의 기능적 안정성을 보호하는 공익적 의미’를 가지며, 이 때문에 민사책임으로 대체될 수 없는 형사적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박사는 배임죄와 관련된 해외 입법 모델을 제시하며 독일을 포함한 85개국이 배임죄를 채택하거나 유사 유형을 부분적으로 처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 노종화 정책위원은 “기업활동 위축 우려는 과장된 주장”이라며, 이미 경영판단원칙이 법리적으로 확립되어 있어 기소 여부 판단에 적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배임죄가 대규모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규율 공백을 막는 역할을 해왔다며, 주주 충실 의무 도입만으로는 배임죄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대체 입법 없이 폐지 시 경제질서 훼손 부작용 피할 수 없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연성 재벌개혁위원회 위원장은 배임죄 폐지 논의가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경제 정의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조 위원장은 재벌 집중적 불투명한 소유구조와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가 사회적 불평등의 핵심 원인이라며, 배임죄를 폐지하면 형사적 통제 장치의 약화, 정보 비대칭 심화, 경영자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 심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김남주 위원장은 “배임죄는 기업 사유화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억제하는 핵심 형사제도”라며, 정부가 마치 배임죄가 선의의 기업인을 처벌하는 것처럼 오인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대법원 판례로 경영판단원칙이 확립되었고, 헌법재판소 역시 배임죄가 명확성 원칙을 위반했다고 보지 않았다고 판시했기 때문에 충분히 예측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한경수 실행위원은 현행 제도의 불명확성과 자의적 집행 우려 때문에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정부와 여당의 폐지 입장은 섣부른 발표였다고 지적했다. 한 실행위원은 폐지에 앞서 주주대표소송제도 실질화, 자료 제출 의무 확대, 집단소송법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최소한의 제도 개선 방안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담회 참가자들은 배임 행위를 방지할 민사적 수단을 마련하지 않은 채 배임죄를 폐지하면 경제 질서가 훼손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충분한 보완 입법 없는 배임죄 폐지는 기득권에 대한 특혜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벌 총수 일가의 부당한 사익 편취를 막는 최소한의 방파제를 허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시민 사회의 일관된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