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이 신세계인터내셔날과 신세계면세점 운영사 신세계디에프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같은 날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의 조카사위가 등기이사로 있는 여행사 프로비다에도 조사 인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비다는 신세계면세점과의 거래에서 다른 여행사보다 높은 할인율을 받았다는 특혜 의혹이 제기된 곳이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를 맡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전날 신세계인터내셔날과 신세계디에프에 조사 인력 60여명을 투입해 PC 하드디스크와 노트북 등 전산자료를 확보하고 재무 장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조사 목적을 공개하지 않았고, 신세계 측은 “조사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세무조사를 받는 두 회사의 지배구조 정점에는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최대주주는 지분 39.71%를 가진 신세계이고, 정 회장이 15.45%를 직접 보유한 2대 주주다. 신세계디에프는 신세계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신세계의 최대주주는 지분 29.77%를 가진 정 회장 본인이다.

■ 여행업 진출 4개월 만에 매출 763억원 1위…다른 여행사보다 할인율 2%p 높아
프로비다를 둘러싼 의혹은 지난달 29일 뉴스타파 보도로 처음 제기됐다. 보도에 따르면 2016년 설립돼 여행업과 무관한 사업을 하던 프로비다는 지난해 11월 사업목적에 여행업을 추가했고, 올해 3~6월 신세계면세점 송객 매출 763억원으로 협력 여행사 가운데 1위에 올랐다.

7월 할인율 공지에는 프로비다 경유 고객에게 적용되는 할인율이 패션·화장품 등 모든 브랜드에서 다른 여행사보다 2%포인트 높게 적혀 있었다. 할인율이 높으면 중국 보따리상(따이궁)이 같은 물건을 더 싸게 살 수 있어 해당 여행사로 고객이 몰린다.
프로비다가 1위에 오른 시기 신세계디에프는 여행사 수수료를 크게 줄이고 있었다. 신세계디에프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여행사와 프리랜서를 통한 판촉활동 대가로 지급한 수수료는 727억3800만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1460억1200만원에서 50.2% 줄었다. 전체 송객 수수료가 절반으로 줄어든 해에 여행업 등기 넉 달 만에 뛰어든 업체가 매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수수료가 줄어든 자리에서 늘어난 숫자도 있다. 같은 보고서의 수익 주석을 보면 총매출에서 깎아주는 ‘매출에누리 등’은 올해 상반기 3108억7000만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2869억9100만원보다 238억8000만원(8.3%) 늘었다. 프로비다가 매출 1위를 기록한 기간과 겹치는 2분기(4~6월)만 떼어 보면 1708억6500만원으로 1년 전 1439억1700만원에서 18.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총매출은 1조3212억원에서 1조2841억원으로 2.8% 줄었다.
면세업계는 관세청이 2022년 말 중국 내 대량 재판매와 연결된 ‘과도한’ 송객수수료를 없애라고 요구한 뒤 여행사에 수수료 대신 할인이나 포인트를 주는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수료로 지급하면 판매관리비로 잡히지만 고객 할인으로 돌리면 매출에서 빠진다. 프로비다가 받았다는 2%포인트 높은 할인율도 이 할인 방식에 해당한다. 다만 ‘매출에누리 등’에는 여행사 경유 할인 외 다른 항목도 섞여 있어 프로비다 몫이 얼마인지는 공시로 확인되지 않는다.
뉴스타파는 이달 1일 후속 보도에서 프로비다 등장 이후 실적이 줄다 거래가 끊긴 여행사들의 증언을 전했다. 한 여행사 대표는 “패밀리 라인이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다 잘라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신세계면세점은 “프로비다는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선정됐으며 내부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다만 여행사별 할인율과 수수료 등 구체적인 계약조건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 이명희 조카사위가 등기이사인 프로비다…지분 구조는 베일 속
프로비다의 등기이사 조명희 씨는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손녀이자 고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의 딸인 이혜진 씨의 남편이다. 이혜진 씨는 이 총괄회장의 조카이고 정 회장과는 사촌 사이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동일인의 친족을 4촌 이내 혈족과 3촌 이내 인척으로 정한다. 기업집단 신세계의 동일인인 이 총괄회장을 기준으로 하면 조카 이혜진 씨는 3촌 혈족, 조카사위 조명희 씨는 3촌 인척으로 둘 다 친족이다. 신세계그룹이 2024년 10월 공식화한 백화점 부문 계열분리가 마무리돼 정 회장이 동일인이 되면 계산이 달라진다. 사촌 이혜진 씨는 4촌 혈족으로 친족 범위에 남지만, 사촌의 남편인 조명희 씨는 4촌 인척이어서 범위 밖으로 빠진다.
결국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 거래로 볼 수 있는지는 프로비다 지분을 누가 얼마나 갖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프로비다는 신세계 계열사가 낸 대규모기업집단현황공시의 계열회사 명단에 없고, 전자공시시스템에 감사보고서 등 이 회사가 낸 공시도 없어 주주 구성은 공시로 확인되지 않는다.

거래의 반대편인 신세계디에프는 이미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다. 신세계디에프가 올해 6월 낸 대규모기업집단현황공시에는 이 회사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높은 계열회사’로 분류돼 내부거래 내역이 실려 있다.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신세계가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여서다. 정 회장 지분이 15.45%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같은 공시에서 ‘해당사항 없음’으로 적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
다만 신세계디에프와 계열사 사이 거래 규모는 크지 않다. 지난해 계열사 매출은 39억원으로 전체 매출 2조3043억원의 0.17%, 계열사 매입은 725억원으로 전체 매입의 4.65%였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지난 8월 공시한 2분기 신세계디에프와의 상품 거래는 67억400만원으로 직전 연도 매출의 0.77%였고 모두 수의계약이었다. 이 공시의 이사회 의결일과 사외이사 참석 여부 칸은 비어 있다.
신세계디에프 이사회에는 사외이사가 없다. 같은 공시에 따르면 등기임원은 이석구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2명, 감사 1명이다. 지난 1년간 대표이사 선임과 인천공항 면세사업권 반납, 신종자본증권 발행, 임원 성과급 지급 등 안건이 모두 원안 가결됐고 사외이사 참석 기록은 없다.
■ 2015년 세무조사·2012년 공정위 제재…수수료 부당지원 전례도
신세계 계열사가 조사4국의 조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국세청은 2015년 이마트 등 신세계 계열사를 조사해 미납 법인세 등 800억원대를 추징했다. 이 과정에서 이마트·신세계·신세계푸드 전·현직 임직원 명의로 된 주식 37만9733주, 당시 종가 기준 약 827억원어치가 실명 전환됐고, 이 총괄회장 명의로 공시됐다.
수수료를 매개로 한 부당지원으로 제재받은 전례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10월 신세계와 이마트, 에브리데이리테일이 계열사 신세계SVN과 조선호텔에 판매수수료를 통상보다 낮게 책정해 지원했다며 과징금 40억6100만원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당시 보도된 부당지원 규모는 62억1700만원이었다. 공정위는 이듬해 7월 허인철 당시 이마트 대표와 신세계 임원 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지원을 받은 신세계SVN은 정 회장이 부사장이던 시절 지분 40%를 보유한 회사였다. 이 지분은 이후 회사가 사들여 소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달 30일 성명에서 이 전례를 들며 공정위에 프로비다의 실제 지분과 협력사 선정 경위, 할인율 차등 기준을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 신세계 순이익 87% 급감에도 정유경 보수·배당 263억원…배당성향 327%
정 회장은 신세계에서 등기이사가 아닌 미등기 상근 회장으로 올라 있다. 이사회 구성원이 아니어서 상법 제399조와 제401조가 정한 이사의 회사·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밖에 있고, 주주총회가 승인하는 이사 보수한도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이 총괄회장도 미등기 상근 총괄회장으로 기재돼 있다. 이 총괄회장은 지난해 5월 보유하던 신세계 주식 98만4518주를 정 회장에게 전량 증여해 현재 신세계 주식이 없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올해 상반기 신세계에서 보수 22억500만원을 받았다. 급여 12억500만원에 상여 10억원이 더해졌다. 지난해 연간 보수는 43억3000만원으로 급여 24억4600만원, 상여 18억8400만원이었고 2024년은 35억9600만원이었다.
올해 상여는 지난해 경영성과를 반영한 성과급이다. 신세계는 반기보고서에 영업이익의 일부를 재원으로 성과급을 정하며 “최대 매출을 달성한 점을 고려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지난해 신세계의 연결 순이익은 139억원으로 전년 1078억원보다 87.1% 줄었고, 별도 순이익도 923억원에서 595억원으로 35.5% 감소했다. 정 회장이 지난해 받은 보수 43억3000만원은 별도 순이익의 7.3%에 해당한다.
순이익이 줄어든 해에 배당은 늘었다. 신세계는 지난해 결산 주당 배당금을 5200원으로 전년 4500원보다 올렸다. 배당금 총액은 394억5500만원에서 455억9200만원으로 늘었고 연결 배당성향은 327.1%에 이르렀다. 정 회장 보유 주식 281만2039주로 계산하면 정 회장 몫은 146억2260만원이다. 신세계는 올해부터 분기배당을 처음 도입해 1분기와 2분기에 주당 1300원씩을 지급하기로 했고, 정 회장 몫은 73억1130만원이다.
정 회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도 배당을 받는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연결 순이익이 43억원으로 전년 325억원보다 86.8% 줄었지만 주당 400원 배당을 유지해 배당금 총액 138억4000만원, 연결 배당성향 323.8%를 기록했다. 정 회장 몫은 540만4820주 기준 21억6193만원으로 회사 연결 순이익의 절반을 넘는다.
공시를 합산하면 정 회장이 올해 두 회사에서 받았거나 받기로 확정된 배당금은 약 241억원이고, 상반기 보수를 더하면 263억원이다.
정 회장이나 이 총괄회장이 프로비다의 협력사 선정이나 할인율 결정에 관여했다는 정황은 지금까지 보도나 공시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국세청도 이번 조사와 프로비다 특혜 의혹의 연관성을 공개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