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은행이 보이스피싱 정황을 포착하고도 고객과 실랑이를 벌이다 전화를 먼저 끊는 등 대응을 방치해 거액의 피해를 키웠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은행 측의 대응이 ‘형식적’이었다고 질타하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 “좋을 대로 하라”며 먼저 끊은 은행…피해액 16억대로 불어나
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1심 법원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60대 김 모 씨가 국민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은행은 김 씨에게 4억 6천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사건은 김 씨가 예금 해지 후 자금을 송금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후 KB국민은행은 해당 거래를 이상 징후로 인식하고 김 씨에게 연락했으나, 대응 방식이 문제로 지적됐다.
당시 김 씨는 이미 보이스피싱 조직으로부터 “은행 직원이라며 전화가 올 경우,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면 범죄 조직원이니 절대 응하지 말라”는 이른바 ‘역정보’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당시 녹취록에 따르면, 은행 직원은 신분을 의심하는 김 씨에게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은행 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며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해당 직원은 “그러면 좋을 대로 하세요. 끊을게요”라며 통화를 종료했다.
이후 국민은행은 송금 정지 외에 별다른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고, 그 사이 김 씨는 사흘에 걸쳐 다른 3개 계좌로 총 15억 6천만 원을 송금해 피해를 키웠다.
■ 법원 “국민은행, 주의 의무 위반…형식적 대응 그쳐”
재판부는 국민은행이 보이스피싱 의심 거래를 인지하고도 필요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은행 측이 피해자가 실제로 주식 투자를 위해 송금하는 것인지 추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임시 조치를 해제하는 등 형식적으로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씨의 계좌가 피해 의심 거래임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조치 없이 방치한 과실이 크다고 봤다.
이에 따라 법원은 은행 측에 30%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4억 6천만 원의 배상금을 책정했다.
■ 국민은행 “할 만큼 했다” 항소…치열한 법정 공방 예고
국민은행 측은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은행 측은 당시 경찰서 방문을 권유하는 등 충분히 안내했으며, 은행이 자체적인 판단으로 고객의 출금을 강제로 정지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 씨 측은 “피해액이 15억 원을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은행이 전화 한 통 외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며 은행의 책임 범위가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시중은행의 보이스피싱 방지 시스템이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두고, 2심 재판부의 판단에 금융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