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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영인 SPC 회장의 1천억 약속과 20대 노동자의 죽음…4년이 지나도 남은 질문

2022년 10월 경기 평택시 SPC그룹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 설치된 소스 혼합기 모습. 같은 형태의 기계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작업 중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 공정의 안전장치 미비와 작업환경 문제가 논란이 됐다. (출처=이은주 당시 정의당 의원실 제공)
2022년 10월 경기 평택시 SPC그룹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 설치된 소스 혼합기 모습. 같은 형태의 기계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작업 중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 공정의 안전장치 미비와 작업환경 문제가 논란이 됐다. (출처=이은주 당시 정의당 의원실 제공)

2022년 10월 15일, 스물세 살 여성 노동자가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숨졌다.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계에 뛰어든 청년이었다. 사고 당시 소스 혼합기에는 덮개가 열리면 작동을 멈추는 안전장치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4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무겁다. 노동자 한 명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기업에서 누가 책임을 졌으며, 무엇이 달라졌는가.

지난 6월 26일 수원지법 형사항소9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강동석 전 SPL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심의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보다 무거운 형량이다. SPL 법인에 대한 벌금은 1억원에서 20억원으로 20배 늘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안전대책이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혼합기 덮개를 열고 작업하는 위험한 관행과 형식적인 안전점검 문제가 판결에서 지적됐다.

이 대목은 단순한 안전사고와 관리 책임이 있는 중대재해를 구분하게 한다. 기계의 위험을 알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위험을 막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충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경고는 있었다. 같은 공장에서는 여러 차례 끼임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안전장치와 작업 체계는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더욱 참담한 것은 사고 이후의 대응이었다. 동료가 숨진 현장 인근에서 이튿날 다시 작업이 진행됐다. SPC그룹은 해외사업 홍보자료를 배포했고, 사고 대응을 둘러싼 비판이 확산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022년 10월 21일 서울 서초구 SPC 본사에서 평택 SPL 제빵공장 20대 여성 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허 회장은 당시 사고 대응이 미흡했다고 인정하고 안전관리 강화를 약속했으나, 이후 SPC 계열사에서 기계 끼임 사망사고가 반복됐다. (출처=OBS 뉴스 영상 캡처)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022년 10월 21일 서울 서초구 SPC 본사에서 평택 SPL 제빵공장 20대 여성 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허 회장은 당시 사고 대응이 미흡했다고 인정하고 안전관리 강화를 약속했으나, 이후 SPC 계열사에서 기계 끼임 사망사고가 반복됐다. (출처=OBS 뉴스 영상 캡처)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사고 엿새 뒤인 2022년 10월 21일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사고 이후의 부적절한 대응을 자신의 불찰로 인정하고, 향후 3년간 1천억원을 투입해 안전경영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허 회장의 사과는 단순한 유감 표명이 아니었다. 그룹 총수가 공개적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자리였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 작업환경으로 증명됐어야 한다.

하지만 2023년 8월 성남 샤니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졌고, 2025년 5월에는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도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세 사고의 구체적인 작업환경과 법적 책임은 각각 따져야 한다. 그러나 같은 기업집단의 생산현장에서 기계 끼임으로 노동자가 반복해 사망했다는 사실만큼은 외면하기 어렵다.

물론 SPC그룹이 안전투자에 나서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회사는 안전시설 개선과 작업환경 정비 등에 자금을 투입했다고 밝혀왔다. 이러한 노력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투자가 이뤄졌다는 사실과 노동자가 안전해졌다는 결론은 다르다. 기업의 안전경영은 투자액이나 발표자료의 분량이 아니라 현장에서 위험이 얼마나 줄었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사진=SPC그룹 제공)
허영인 SPC그룹 회장(사진=SPC그룹 제공)

그렇다면 허영인 회장에게 물어야 할 것은 분명하다. 1천억원을 약속한 뒤 실제로 어떤 위험이 제거됐는가. 반복된 사망사고 이후 그룹의 안전관리 체계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 결과를 노동자와 국민 앞에 충분히 설명했는가.

형사책임의 범위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강동석 전 대표와 SPL 법인은 항소심에서 1심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반면 허영인 회장은 평택공장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인정되지 않아 검찰의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그 법적 판단은 존중해야 한다. 허 회장이 해당 사고의 형사책임자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룹 총수로서의 경영상 책임까지 없애는 것은 아니다. 계열사 전반의 안전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한 사람이라면 그 결과에 대해서도 설명할 책임이 있다.

이 사건을 단순히 한 공장의 사고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한쪽에서는 그룹 차원의 안전경영을 선언하고, 다른 쪽에서는 계열사 현장에서 노동자가 같은 유형의 사고로 숨졌다. 그 간극을 누가 어떻게 좁힐 것인지가 본질이다.

20대 노동자의 죽음은 4년 전의 일이 됐다. 항소심 판결도 지난 6월에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기업의 책임을 묻는 질문까지 낡아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올해 사고 4주기를 맞아 돌아봐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사과문이 발표됐는지가 아니다. 위험을 알고도 방치하는 작업 관행이 사라졌는지, 현장 노동자의 안전보다 생산 일정이 앞서는 일이 없는지, 안전에 관한 경영진의 약속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지가 중요하다.

빵을 만드는 공장에서 노동자가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제품이 누군가의 생명을 희생한 결과물이어서도 안 된다.

허영인 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한 번의 사과가 아니다. 4년 전 약속한 안전경영이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됐는지 구체적인 결과로 답하는 일이다.

스물세 살 노동자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날을 기억한다면, 기업이 내놓아야 할 대답은 말이 아니라 달라진 일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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