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필드) 진용준 기자 = 회삿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 등으로 실형을 살고 있는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옥중에 있는 상황에서도, 그룹 내부에서는 그의 ‘소통 철학’을 전면에 내세운 사내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조 회장의 ‘철학’을 강조한 홍보가 진행되면서, 총수 리스크와 동떨어진 듯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지난달 27일 경기 판교 본사 테크노플렉스에서 2026년 첫 ‘지식나눔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이 프로그램의 이번 회차 주제는 ‘인공지능(AI)을 일 잘하는 동료로 쓰는 법’으로, 실무진의 사례 발표와 실시간 중계가 병행됐다.
문제는 그룹 측이 이번 행사를 홍보하며 ‘조현범 회장의 소통 철학을 바탕으로 추진됐다’는 점을 이례적일 만큼 강조했다는 점이다. 수백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총수를 ‘혁신적 소통가’로 둔갑시키려는 무리한 PR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러한 그룹의 홍보 기조에 맞춰, 상당수 언론은 조현범 회장이 교정시설에 수감 중이라는 핵심적인 사실보다는 그의 ‘소통 철학’과 ‘미래 경영 행보’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잇달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총수의 사법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으면서, 기업의 홍보 메시지를 사실상 그대로 전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정작 그 철학의 주인공인 조 회장은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지난해 12월 22일,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백강진 부장판사)는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비록 계열사 ‘한국프리시전웍스(MKT)’에 대한 130억여 원 부당 지원 혐의와 현대차 협력사 ‘리한’에 50억 원을 대여해 손해를 끼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회사 자산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는 벗지 못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조 회장의 법인카드 및 회사 차량 사적 사용 혐의 등에 대해 1심의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조 회장이 제품 테스트 차원에서 회사 차량을 탔다는데, 왜 회사에 자료가 없는지 의문”이라며 “테스트 결과가 중요한 정보라면 조 회장의 소감에 그쳐선 안 되고 구체적 지침으로 내려왔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또한 지인에 대한 아파트·차량 무상 제공 및 계열사 항공권 발권 일원화 등 업무상 배임 혐의 역시 유죄로 인정됐다.
특히 재판부는 조 회장에 대해 “젊은 경영자인데도 과거 경영자의 시대착오적 사고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며 “본인의 삶 자체라고 했던 한국타이어의 평판을 스스로 망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사실상 ‘구태의연한 경영 행태’라고 판단한 인물의 경영관을, 회사가 ‘혁신적인 소통 철학’으로 포장해 사내에 전파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총수의 사법적 책임과 기업이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가치 사이의 괴리를 여실히 드러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조 회장은 지난달 20일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직을 전격 사임하며 이사회 전면에서 물러났다. 이는 형제간 경영권 갈등이 이사회 운영과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으로, 회사는 박종호 대표이사 사장 단독 체제로 전환됐다.
이번 사임의 배경에는 2020년부터 이어진 이른바 ‘형제의 난’이 자리 잡고 있다. 조양래 명예회장의 지분 승계 과정에서 소외된 장남 조현식 전 한국앤컴퍼니 고문과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 등은 조 회장의 경영권에 지속적으로 반발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조 회장이 사내이사로서 자신의 보수 한도를 결정하는 주주총회 안건에 찬성표를 던진 ‘셀프 승인’ 결의 취소 소송에서 조 전 고문 측이 1심 승소하면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주주연대가 제기한 50억 원대 주주대표 소송 등 법적·절차적 책임론이 이어지자, 조 회장이 등기임원직을 내려놓음으로써 이해상충 논란의 당사자 지위를 최소화하려는 선택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조 회장은 최대주주 지위(약 42%)와 그룹 회장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지배력에는 변화가 없지만, 법적 책임이 따르는 이사회 전면에서는 한발 물러난 구조라는 평가와 함께, 이번 사임이 경영권 변동이라기보다 지배구조 운영 방식의 조정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