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회장 장남 경영 승계 시점 맞춰 조직적 기사 삭제 정황
아픈 직원에 “잘린다” 압박한 배후 불명… 법조계 “강요죄·직장 내 괴롭힘 소지”
(뉴스필드) 진용준 기자 = 현대자동차그룹이 정의선 회장의 장남 정창철 씨의 과거 음주운전 기사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지병을 앓고 있는 홍보 담당 직원에게 해고를 빌미로 압박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재계 서열 3위 기업이 오너 일가의 치부를 덮기 위해 직원의 생존권을 볼모로 삼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법조계는 최종 지시자에게 강요죄와 직장 내 괴롭힘 혐의가 적용될 수 있으며, 언론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대가성이 확인될 경우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위반 및 배임증재 소지까지 있다고 지적해 ‘몸통’을 향한 의혹을 키우고 있다.
◇ “지병 있는데 잘리게 생겼다”… 읍소 뒤엔 ‘공포’ 있었다
11일 미디어 비평지와 언론계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9월경 현대차 홍보실은 2021년 보도된 정창철 씨의 음주운전 약식명령(벌금 900만 원) 기사를 삭제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언론사를 접촉하며 기사 삭제에 사활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충격적인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기사 삭제를 요청받았던 주요 방송사 A 기자는 “현대차 홍보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 자신의 지병을 언급하며 ‘이 기사 때문에 회사에서 잘리게 생겼다’고 호소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기자는 홍보 담당자의 절박한 사연에 데스크와 상의 후 기사를 삭제했으나, 최근 노조의 문제 제기로 이를 복구했다.
해당 직원의 발언이 사실일 경우, 이는 단순한 홍보 업무의 일환으로 보기에는 압박의 강도가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다. 홍보업계 관계자는 “통상적인 기사 대응은 팩트 정정이나 유감 표명 수준”이라며 “직원이 ‘해고’를 운운하며 읍소했다는 것은 인사권을 쥔 상부로부터 ‘기사를 내리지 못하면 징계하겠다’는 구체적이고 강력한 협박을 받았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 경영 승계 ‘꽃길’ 위해 아픈 직원 ‘총알받이’로
기사 삭제 시도가 있었던 지난해 9~10월은, 정창철 씨가 2025년 초 일본 법인인 현대모빌리티재팬(HMJ)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경영 수업의 첫발을 뗐다는 사실이 한 주요 보도채널의 단독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진 시기와 맞물린다.
재계에서는 오너 3세의 등장을 앞두고 그룹 차원에서 ‘포털 클린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색창에 정 씨의 이름을 입력했을 때 ‘음주운전’, ‘만취’, ‘가드레일 충돌’ 등의 부정적 연관 검색어와 기사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직적인 삭제 지시가 내려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오너 일가의 원활한 경영 승계를 위해 지병을 앓고 있는 직원까지 동원돼 ‘삭제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았다는 의혹이다.
◇ 법조계 “해고 협박해 의무 없는 일 강요했다면 ‘강요죄’ 성립 가능”
문제는 만약 현대차 고위 임원 등이 직원에게 “기사를 삭제하지 못하면 해고하겠다”고 위협해 언론사에 로비를 하게 시켰다면, 형법상 강요죄(제324조)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강요죄의 구성 요건인 ‘협박’은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여기서 해악에는 생명·신체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겠다는 통보도 포함된다.
사실에 기반한 정당한 기사를 삭제하기 위해 직원이 자신의 질병이나 사생활까지 드러내며 읍소하게 만드는 행위는 근로 계약상 통상적인 홍보 업무의 범위를 명백히 벗어난 ‘의무 없는 일’이다. 이를 거부할 시 ‘해고’라는 생존권 박탈을 예고하며 압박했다면 법적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또한 이는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도 해당할 소지가 다분하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지병이 있는 직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법조계는 언론사와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법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만약 현대차 측 관계자가 언론의 편집권이나 보도 원칙을 훼손하도록 유도하며 광고 등 재산상 이익을 매개로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면, 이는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은 물론, 언론사 임직원의 임무 위배를 전제로 한 배임증재 혐의까지 문제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언론계 줄줄이 ‘삭제·수정’… 사장·국장 줄사퇴 등 ‘인사 태풍’
현대차의 ‘읍소 전략’은 실제로 상당수 언론사에 먹혀들었으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기사 삭제 및 수정 사실이 드러난 언론사들에서는 전례 없는 문책성 인사 조치와 징계가 이어지고 있다.
한 유력 일간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장과 편집인, 광고·사업본부장 등 경영진과 뉴스룸국장, 디지털부국장 등 보도 책임자들이 전원 보직 사퇴 의사를 밝히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편집국 구성원들의 동의 없이 윗선의 독단으로 기사 제목이 수정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내부 반발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한 보도전문채널에서는 보도국 권한이 없는 마케팅 담당 고위 간부가 “내가 책임지겠다”며 기사 삭제를 주도한 사실이 드러나 노조로부터 해임 요구를 받고 있으며, 사장 대행 역시 책임론에 휩싸여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또한 한 주요 통신사 편집총국장은 “기자와 상의 없이 수정 조치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판단”이라며 공식 사과에 나서는 등 언론계 전체가 ‘현대차발(發) 인사 태풍’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 현대차에 ‘회장 지시 여부’ 묻자… 돌아온 건 ‘침묵’
뉴스필드는 이번 논란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말 현대차그룹 측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입장을 물었다.
▲정창철 씨의 과거 음주운전 보도와 관련해 현대차 측이 언론사에 삭제·수정을 요청한 사실이 있는지 ▲해당 요청이 정의선 회장의 지시였는지, 아니면 특정 임원의 판단이었는지 ▲정 씨의 경영 수업 보도 시점과 기사 삭제 시점이 맞물린 이유가 무엇인지 ▲광고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언론사를 압박했는지 등을 질의했다.
그러나 수많은 매체에 영향력을 행사해 언론의 비판 기능을 무력화시켰음에도 현대차 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단일 기업이 국내 주요 언론사들을 상대로 이처럼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보도 통제를 시도해 실제 삭제까지 이끌어낸 것은 사실상 전례를 찾기 힘든 초유의 사태다.
현대차는 더 이상 묵묵부답으로 버틸 것이 아니라, 훼손된 언론의 고유 기능을 무겁게 인식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와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