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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 본업 적자 속 석 달 새 900억 흥국자산운용으로…지배구조 수술대 오른다

태광산업이 지난 8월 14일 공시한 계열 금융회사 거래 내역. 흥국자산운용 MMF에 500억원을 1년간 맡기기로 했고, 이사회 의결은 하루 전인 8월 13일이었다. (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태광산업이 지난 8월 14일 공시한 계열 금융회사 거래 내역. 흥국자산운용 MMF에 500억원을 1년간 맡기기로 했고, 이사회 의결은 하루 전인 8월 13일이었다. (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화학섬유 제조사 태광산업이 석 달 사이 계열 운용사 흥국자산운용 상품에 최대 900억 원을 넣기로 했다. 흥국자산운용은 태광산업 최대주주인 이호진 태광산업 고문(전 태광그룹 회장)이 개인 지분 20%를 가진 회사다. 제조 계열사 돈이 금융 계열사로 흘러간다는 주주들의 문제 제기가 숫자로 확인된 셈이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태광산업(공동대표 이부의·정인철)은 지난 8월 13일 이사회에서 흥국자산운용의 머니마켓펀드(MMF)에 500억 원을 맡기기로 의결했다. 거래 기간은 이달 1일부터 내년 9월 30일까지 1년이고, 조건은 ‘시장금리’로 적혔다.

이보다 앞선 5월 14일 이사회에서는 흥국자산운용이 만드는 부실채권(NPL) 사모펀드에 최대 4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부실채권은 돈을 떼일 위험이 커 싸게 팔리는 대출채권이다. 펀드 기간은 5년이고, 회사는 투자 목적을 “안정적 자금운용 및 수익성 제고”라고 밝혔다.

이 NPL 펀드 투자는 집행 시점이 두 차례 미뤄졌다. 태광산업은 6월 30일 정정공시로 거래일을 3분기로 바꿨고, 9월 30일 다시 정정해 ’10월 예정’으로 옮겼다. 투자액은 펀드가 돈을 요청할 때마다 나눠 내는 캐피털콜 방식이라 실제 집행액은 한도보다 적을 수 있다.

두 건을 합친 900억 원은 태광산업이 지난해 주주에게 준 배당금 14억7천만 원의 61배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별도 기준 영업손실 370억 원, 순손실 758억 원을 냈고, 올해 상반기에도 영업손실 148억 원을 기록했다.

흥국자산운용 2025년 감사보고서에 실린 주주 현황. 흥국증권이 72%, 이호진 태광산업 고문 개인이 20%를 갖고 있다. 태광산업 지분은 없다. (출처=흥국자산운용 감사보고서)
흥국자산운용 2025년 감사보고서에 실린 주주 현황. 흥국증권이 72%, 이호진 태광산업 고문 개인이 20%를 갖고 있다. 태광산업 지분은 없다. (출처=흥국자산운용 감사보고서)

돈을 받는 쪽의 주인은 다르다. 흥국자산운용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 지분은 흥국증권이 72%, 이호진 고문 개인이 20%를 갖고 있다. 태광산업은 흥국자산운용 지분이 없다. 태광산업은 이 고문이 29.48%, 특수관계인을 합쳐 54.53%를 보유하고 있다.

■ 금융 계열사는 이미 흥국 MMF로 쏠려

같은 시기 흥국 금융 계열사들도 흥국자산운용 상품을 대거 사들였다. 흥국생명은 3분기(7~9월)에 흥국세이프MMF를 8차례 모두 1천700억 원어치 샀고, 흥국화재는 12차례 1천760억 원어치를 샀다. 석 달 동안 두 보험사에서만 3천460억 원이 같은 MMF로 들어갔다.

태광산업의 500억 원 MMF 거래가 시작된 날은 이달 1일이다. 흥국화재가 흥국세이프MMF에 100억 원을 넣은 날도 같은 10월 1일이었다.

흥국생명의 지배구조는 이호진 고문 개인에게 집중돼 있다. 흥국생명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고문이 보통주 56.30%를 갖고 있고, 친인척 이원준씨가 14.65%, 계열사 대한화섬이 10.43%를 갖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친인척 2명이 각각 3.68%를 팔았고, 그린마루제일차라는 법인이 7.36%를 새로 보유한 것으로 적혀 있다.

흥국생명의 자본 여력은 규제 기준선과 멀지 않다. 보험사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은 2분기 205.8%였지만, 새 제도 도입에 따른 유예 혜택(경과조치)을 빼면 158.7%로 내려간다. 금융당국 권고치는 150%다.

태광산업이 금융 계열사를 떠받친다는 지적은 처음이 아니다. 태광산업은 2022년 12월 흥국생명이 가진 흥국화재 지분 19.5%를 492억5천만 원에 사들였다. 당시 흥국생명은 자본 확충이 급했고,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유상증자에는 불참했다. 이 거래로 태광산업의 흥국화재 지분은 39.13%가 됐고, 상반기 말 장부가는 3천284억 원이다.

소액주주 쪽 압박도 거세다. 태광산업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흥국 금융 계열사와의 자금 거래를 끊고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라고 요구해 왔다. 지난 9월에는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내며 회계장부 열람과 주주대표소송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태광산업은 강하게 맞섰다. 회사는 지난 9월 14일 트러스톤 황성택·이성원 대표 등 3명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트러스톤이 문제 삼은 계열사 간 협의기구 ‘경영협의회’는 지난해 8월 ‘경영지원협의체’로 이름을 바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트러스톤은 “주주권 행사를 범죄로 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사회 구조도 바뀌고 있다. 태광산업 이사회는 올해 개정 상법을 반영해 감사위원 분리선임 확대, 감사위원 선임 때 최대주주 의결권 3% 합산 제한, 선임독립이사 도입 등을 담은 정관 변경안을 의결했다. 흥국자산운용 펀드 투자 안건도 독립이사 4명이 모두 참석한 이사회를 통과했다.

다만 최대주주인 이호진 고문은 이사회 밖에 있다. 이 고문은 2024년 10월부터 태광산업 미등기 비상근 고문으로 경영자문을 맡고 있다. 등기이사가 아니어서 이사회 의결에 참여하지 않고, 상법상 이사의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

태광산업은 케이조선 재입찰을 위해 한국카본과 컨소시엄을 꾸려 지난 14일 매도인과 양해각서를 맺었다고 공시했다. 조선업 인수에 돈이 필요한 시점에 금융 계열사 상품으로 900억 원 한도를 잡아둔 셈이어서, 자금 배분을 둘러싼 주주들의 질문은 더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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