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렌탈 매각 무산에 1.6조 유입 ‘물거품’…자금난 속 바이오에 2천100억 ‘독박 수혈’
(뉴스필드) 진용준 기자 = 고강도 사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 중인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자금줄 차단’과 ‘계열사 지원 부담’이라는 이중고에 빠졌다.
그룹 유동화의 핵심이었던 롯데렌탈 매각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동으로 무산된 가운데, 정작 자금난에 허덕이는 호텔롯데가 막대한 현금을 들여 비상장 계열사의 실권주를 떠안은 사실이 드러나며 시장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 ‘5.3% 고리’로 빌려 ‘바이오’에 수혈…호텔롯데의 위험한 선택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등에 따르면 호텔롯데는 지난해 12월 24일 운영자금(800억 원) 및 채무상환(1,000억 원)을 위해 총 1천8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사모)을 발행했다. 연 5.3%라는 높은 초기 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긴급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특히 이번에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에는 발행 1년 6개월 후부터 금리가 가산되는 ‘스텝업(Step-up)’ 조건이 붙었다. 2027년 6월부터 최초 이자율에 연 2.0%p가 가산되며, 이후 단계적으로 최대 3.5%p까지 금리가 치솟는 구조다. 사실상 단기간 내에 상환하지 못할 경우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독소 조항’을 떠안은 셈이다.
이틀 뒤인 12월 26일, 호텔롯데는 이사회 의결을 통해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과정에서 발생한 실권주 307만 6천890주를 약 2천144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고리로 조달한 자금보다 더 큰 액수를 미래 사업에 쏟아부은 셈이다.
호텔롯데 측은 공시를 통해 “수익성 개선 및 신성장동력 확보가 목적”이라고 밝혔으나, 자본 인정 요건을 갖추고자 이자 지급 정지권이라는 ‘고육지책’까지 동원해 확보한 자금을 계열사 수혈에 즉각 투입했다는 점에서 호텔롯데의 재무적 부담을 스스로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 ‘독과점’에 가로막힌 1.6조 유동화…사업재편 ‘연쇄 난항’ 우려
신 회장이 ‘승부수’로 던졌던 자산 유동화 카드는 정부의 엄격한 잣대에 가로막혔다.
공정위는 지난 1월 26일 사모펀드(PEF)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롯데렌탈 인수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합 금지’ 판정을 내렸다.
이번 매각은 신 회장이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1년 넘게 공들여온 핵심 과제였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은 지난 2024년 12월 6일 어피니티와 매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8주간의 정밀 실사를 거쳐 2025년 3월 11일 총 1조 5천729억 원 규모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매각 대상은 호텔롯데(35.0%)와 부산롯데호텔(21.2%)이 보유한 지분 56.2%였다.
당시 롯데 측은 매각 대금을 국내외 차입금 상환과 미래 투자자금으로 활용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로드맵을 세웠으나, ‘공정위 승인’이라는 선행조건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업계 2위 SK렌터카를 보유한 어피니티가 1위 롯데렌탈까지 인수할 경우 점유율이 40%에 육박해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는 논리가 주효했다.
이로써 호텔롯데가 기대했던 1조 6천억 원의 자금 유입은 무산됐다. 이미 롯데건설과 롯데글로벌로지스 지원에 선제적으로 현금을 투입한 호텔롯데로서는 8조 3천억 원의 차입금 중 절반(4조 5천억 원)이 단기 채무라는 점이 뼈아프다. 사실상 자금 운용의 ‘데드라인’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여파는 그룹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첫 단추’인 렌탈 매각이 틀어지며 롯데케미칼의 설비 분할 합병과 롯데컬처웍스의 투자 유치 등 후속 재편 작업도 공정위의 ‘독과점 엄단’ 기류 속에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 ‘미등기 회장’ 신동빈의 고심…10년 숙원 IPO는 또다시 ‘안개 속’
내부 거버넌스 상황을 들여다보면 신동빈 회장의 고심은 더욱 깊어진다. 호텔롯데는 이번 위기 타개를 위해 지난해 1월 정호석(호텔), 김동하(면세), 권오상(월드) 대표이사를 투입하는 ‘구원투수’ 격 인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이들 등기임원이 실무 전면에서 자금 확보에 사력을 다하는 사이, 정작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신동빈 회장은 ‘미등기 임원’ 신분으로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일부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책임 경영보다는 영향력 행사에 치중한다는 비판과 함께, 향후 구조조정 결과에 따른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본질적인 문제는 호텔롯데의 ‘뿌리’와 10년째 제자리걸음인 기업공개(IPO) 잔혹사다. 현재 호텔롯데의 지분은 일본 롯데홀딩스(19.07%)를 비롯해 L제4투자회사(15.63%), L제9투자회사(10.41%) 등 일본 측 자본이 99%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가 신동주 전 부회장이 지배하는 광윤사(28.1%)라는 점은 호텔롯데의 상장을 가로막는 해묵은 과제다.
롯데는 지난 2016년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호텔롯데 IPO를 추진, 총 주식의 35%(4천785만 5천 주)를 매각해 약 4조 원을 조달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해 6월 총수 일가의 횡령·배임 의혹에 따른 검찰 수사로 철회신고서를 제출하며 꿈이 꺾였다.
이후 ‘사드(THAAD) 사태’와 ‘코로나19’라는 연이은 악재가 겹치며 재추진 시기는 미궁에 빠졌다. 롯데 측은 “상장 요건은 충족하고 있으나 시장 여건이 긍정적일 때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렌탈 매각 무산으로 재무구조 개선이 요원해지면서 신동빈 회장의 ‘지배구조 투명화’ 약속은 또다시 기약 없이 밀려난 셈이다.
◇ “53조 부동산 자산” 호소에도…시장 시선은 여전히 ‘냉랭’
신동빈 회장은 그룹의 총 부동산 자산 53조 원과 가용 현금 13조 원을 내세워 시장 달래기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실적 지표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호텔롯데의 2025년 3분기 누적 연결 매출액은 약 3조 3천877억 원으로 전년 동기(3조 7천421억 원) 대비 9.47%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천613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나, 이는 2024년 면세사업부가 기록한 1천432억 원의 대규모 적자에 따른 기저효과가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면세사업부의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 중국의 경기 둔화와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소비 패턴 변화, 해외 공항 임차료 부담 등 악재가 첩첩산중이다. 창이공항 전 매장 가동에 따른 고정비 증가와 희망퇴직 등 일회성 비용 지출도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 지속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약화는 면세 사업의 근간을 흔드는 요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호텔사업부가 외국인 관광객 유입으로 실적을 개선하고 있지만, 그룹 전체 유동성을 책임지기엔 면세 부문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부동산 자산은 많지만 업황 부진으로 제때 현금화하기 어렵다면 결국 장부상 수치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정호석 대표를 필두로 한 경영진이 자금난 방어에 사력을 다하고 있으나, 면세 부문의 실적 변동성과 일본계 대주주 체제라는 근본적 한계가 신동빈 회장의 사업 재편 속도를 늦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