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시행, 커뮤니티 케어로 국한하자!
원격의료가 급속하게 다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와 정부가 원격의료 확대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2020년 2월 중순 신천지 대구 교회와 관련한 코로나19 감염의 지역사회 확산을 계기로 보건복지부는 2월 22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원격진료 시행 방안 등을 구체화 한 ‘전화 상담·처방 및 대리처방 한시적 허용 방안’을 공개했다. 그리고 실제로 2월 24일부터 의사의 의료적 판단에 따른 전화 상담과 처방을 허용했다. 의료계가 반대하던 원격의료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시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물론, 정부의 이런 한시적 원격진료 허용 방침에 대해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전화 상담 및 처방을 전면 거부”한다는 내용의 ‘긴급안내문’을 의사 회원들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 상황의 국민 여론과 만성질환자들의 요구를 거스를 순 없었다. 결국, 경북대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 등 대구 소재 병원들은 물론이고, 서울대병원 등이 2월 하순부터 전화 상담과 처방 등 원격진료에 본격 나서게 됐다. 약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두려워하는 시민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둔 지금, 원격의료의 제도화가 논의되고 있고, 의료계는 극단적 저항을 예고했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형 뉴딜을 선언한 지금, 원격의료를 어떻게 해야 할까.
원격의료를 둘러싼 이해와 견해의 충돌
원격의료는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이미 1997년 WHO(세계보건기구)는 원격의료를 “떨어진 장소에서 모든 의료분야 전문가들이 질병이나 부상의 예방, 진단, 치료, 의료공급자들에 대한 꾸준한 교육 그리고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건강 향상을 위한 유용한 정보와 의료서비스를 ICT를 사용하여 교환하고 공급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이 개념을 잘 들여다보면, 원격의료는 내용적으로 원거리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건강증진을 위한 유용한 정보와 의료서비스를 전달하는 방법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의사와 의사’ 사이의 원격의료와 ‘의사와 환자’ 사이의 원격의료가 다 포함된다.
우리나라도 원격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당시의 세계적 흐름을 받아들였고, 2002년 3월 30일 개정 의료법에 원격의료 조항을 신설했다. 의료법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30조의2(원격의료)
① 의료인(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에 한한다)은 제30조 제1항 본문의 규정에 불구하고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원격지의 의료인에 대하여 의료지식 또는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이하 “원격의료”라 한다)를 행할 수 있다.
② 원격의료를 행하거나 이를 받고자 하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시설 및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③ 원격의료를 시행하는 자(이하 “원격지의사”라 한다)는 환자에 대하여 직접 대면하여 진료하는 경우와 동일한 책임을 진다.
④ 원격지의사의 원격의료에 따라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이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이하 “현지의사”라 한다)인 경우에는 당해 의료행위에 대하여 원격지의사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명백한 근거가 없는 한 환자에 대한 책임은 제3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현지의사에게 있는 것으로 본다.
위의 제30조의2(원격의료) 조항은 현행 의료법에서는 제34조(원격의료)인데, 해당 조문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고, 내용은 18년 전의 그것과 완전하게 동일하다. 그동안 내용적으로 어떤 변경도 없었다.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법 제33조(개설 등)에 따르면, 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아니하고는 의료업을 할 수 없으며, 응급환자 진료,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른 진료(왕진), 그리고 환자가 있는 현장에서 진료를 해야 할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의료기관 내에서만 의료업(진료)을 해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대면(face to face) 진료만을 허용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 제34조(원격의료)는 의료법 제33조(개설 등)가 규정한 ‘엄격한 진료실 내의 대면 진료’ 원칙에 약간의 융통성만을 허용했다. 즉,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여 환자 진료를 매개로 원격지 의사와 현지 의사 사이의 원격의료만 가능하도록 했던 것이다. 본격적 의미의 비대면 진료를 뜻하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원격의료는 현행 의료법 하에선 불가능하다. 이게 가능하도록 하려면 반드시 의료법을 개정해야만 한다.
2002년 3월 개정된 의료법에 ‘의사와 의사 사이의 원격의료’ 조항이 들어간 이후, 본격적 의미의 원격의료를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가 등장하다가, 이것이 정치사회적 의제로 등장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였다. 박근혜 정부도 ‘의사와 환자’ 사이의 원격의료 도입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진보적 시민사회가 반대했고, 대한의사협회가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원격의료 도입을 반대했고, 성공적으로 입법을 저지했다. 의료계의 반대도 영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이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의료법에 ‘의사와 의사’ 사이의 원격의료가 명시된 이후 지난 18년 동안 ‘의사와 환자’ 사이의 원격의료 도입을 둘러싸고 처음에는 간간이,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에는 격렬하게 논쟁하고 충돌했다. 전자 및 정보통신 업계 등의 재계(자본)와 집권 정치세력(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적극 찬성했고, 시민사회(노동계 포함)와 민주진보 성향의 야당 및 대한의사협회는 결단코 반대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오래된 대립 구도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원격의료를 반대해왔던 민주진보 정치세력 내부의 분화가 생겼고,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가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형 뉴딜’과 ‘원격의료’는 어떤 관계인가?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대선 당시 상호 모순되는 두 가지의 공약을 내세웠다. 하나는 원격의료를 포함한 의료민영화를 반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함으로써 선도형의 디지털 경제 시대를 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공약이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은 개념적으로 누구나 쉽게 눈치를 챌 수 있다. 지난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면서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해 ‘한국판 뉴딜’을 국가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형 뉴딜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개척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선도형 경제’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5G 인프라 조기 구축, 의료·교육·유통 등 비대면 산업의 집중 육성, 국가기반시설에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초지능(superintelligence)과 초연결(hyperconnectivity)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선도형 경제’ 체제를 위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환경과 사물 자체의 지능화), 빅 데이터(big data),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여기서 ‘초지능’과 ‘초연결’이라는 특징을 구현하는 데 눈에 띄는 사업의 하나가 바로 원격의료다. 이런 사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관련 업계를 중심으로 널리 인식됐고, 정치사회적 입지를 조금씩 넓혀왔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의 대선 공약에서 원격의료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8월 여·야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착한 기능을 하는 방향의 원격의료’를 가능하도록 해보자는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 의료계의 반발에 더해 시민사회에 동조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이 제안은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격의료 추진을 가능하도록 하는 데 유리한 지형이 형성됐다. 코로나19 사태가 비대면 경제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널리 인식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이 지난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형 뉴딜과 선도형 경제 추진을 선언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원격의료인가, 비대면 의료인가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형 뉴딜 선언 이후, 지난 13일 김연명 사회정책수석은 여당의 혁신포럼 강연에서 향후 원격의료의 제도화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한시적으로 허용한 원격 진료(전화 상담 등)가 26만 건이나 시행됐고, 타당성을 검토해볼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판단에서다. 하루 뒤인 14일, 정부는 원격의료의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비대면 진료 확대 등 과감한 중심 이동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원격의료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기획재정부 김용범 1차관은 본격적인 비대면 의료를 위한 의료법 개정을 21대 국회에서 논의해줄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여당 지도부에 속한 일부 국회의원들이 최근 ‘비대면 진료’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것이 ‘원격의료’와 다른 것처럼 이야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당이 과거 야당일 때, 그리고 심지어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원격의료를 반대했던 사실 때문에 이 용어가 다소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질을 잘 담고 있는 공식 용어로 국내외에서 정치사회적으로 형성된 올바른 명칭(정명, 正名)을 임의로 바꾸어 부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는 이미 영리병원 논란을 통해 이명박 정부 때 이런 사례를 경험했다.
이명박 정부는 영리병원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미 허용돼 있던 기존의 외국인 영리병원 설립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일단 제주특별자치도법을 개정함으로써 제주도에 내국인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후 이명박 정부 내내 제주도는 내국인 영리병원 도입 찬반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았다. 정부는 영리병원이라는 용어(명칭)가 주는 부정적 의미 때문에 국민이 내국인 영리병원을 반대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영리병원’을 ‘투자 개방형 병원’이라고 바꿔 불렀다. 이게 이명박 정부 당시 영리병원을 지칭하는 정부의 공식 명칭이었다.
영리병원이 돈 벌이를 목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병원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의 본질이 ‘병원의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자본시장에서 조달하는 의료기관’이므로 이 병원에 대한 자본시장의 투자가 열려 있다는 의미를 담아 ‘투자 개방형’이란 형용사를 붙여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는 꼼수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 당시 이런 비난이 시민사회에 팽배했다. 이명박 정부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람들의 뇌리에서 ‘투자 개방형 병원’이라는 말은 거의 지워지고 말았다. 영리병원만 남아 있다. 옳지 않은 전례였다.
그런데 지금 일부 정치인들이 원격의료를 ‘비대면 진료’라고 부르고, 양자가 다른 것으로 언급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영리병원’을 ‘투자 개방형 병원’이라고 바꿔 불렀던 잘못을 문재인 정부에서 반복해선 안 될 것이다. 정명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게 옳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형 뉴딜은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성장·일자리 패러다임이다. 우리는 여기에 원격의료가 중요한 구성요소로 포함돼 있음을 확인했다. 1차 산업혁명 당시 기계파괴 운동(러다이트 운동, Luddite Movement)으로 시대의 발전을 저지하지 못했듯이 과학기술과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거역할 순 없다. 오히려 한국형 뉴딜을 통해 이 과정을 선도해나가야 한다.
현대의료가 MRI나 PET-CT 등의 첨단 기술을 활용했듯이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 특성인 초지능
(superintelligence)과 초연결(hyperconnectivity) 기술들을 의료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활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원격의료’ 옹호론이다. 그리고 이는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의사들도 당연히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와 여당이 의료법 개정을 통해 원격의료를 강행하면 극단적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론의 흐름을 보면서 일정하게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무한정 의사 결정을 미룰 수는 없다.
‘커뮤니티 케어’로 국한해 ‘원격의료’를 시행하자
대한의사협회가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원격의료가 진단과 치료의 과정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둘째, 원격의료가 대면 진료를 점차 대체할 경우 결국 개원의들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셋째, 원격의료가 제도화되면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게 되므로 결국 동네의원이 고사한다는 주장이다. 넷째, 원격의료로 인해 장차 대면 진료 중심의 일차보건의료(primary health care) 체계가 무너진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낮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도보 5분 거리’에 의료기관이 있다는 주장을 편다. 의료법의 원칙적인 대면 진료가 얼마든지 가능한데, 굳이 왜 원격의료를 강행하려는 건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오히려 의료계가 되묻고 있다.
원격의료를 시행하려면, 의료계의 반대를 넘어야 하고, 국민적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사회 통합적 방식으로 정치적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의료계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국민에겐 원격의료가 한국형 뉴딜을 위한 올바른 길이자 보건의료 분야의 유익한 첨단 기술 활용 방안임을 제대로 알려주어야 한다. 이쯤에서 선진국에서 논의된 원격의료의 본질적 의미를 새겨보자. 이를 통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선진국에서 원격의료는 의료체계가 병원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조기에 퇴원해 지역사회로 돌아간 환자들이 가정에서 의료서비스를 받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등장했다. 즉, 대중들은 좀 더 개인화된 의료서비스를 자신이 선택하는 편리한 시간과 장소에서 제공받길 원하고, 이런 기대의 충족을 위해 원격의료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의료기술의 발전은 환자가 가정에서 의사의 왕진 진료를 받던 것을 병원 중심으로 바꾸었고, 다시 이것을 지역사회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원격의료가 필요한 것이다.
기존의 대형병원 중심 의료체계는 급성 질병에 효율적이다. 급성 질병은 수술 등의 집중 치료로 완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성 질병은 완치 불가능하며, 병원 중심 의료체계만으로는 효율성과 만족도가 떨어진다. 그러므로 병원 중심 의료체계의 일부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커졌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편안하고 존엄하게 가정에서 돌봄과 함께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지역사회 중심의 미래형 보건의료체계이다. 이제 이런 새로운 보건의료체계의 구현이 기존의 병원 중심 의료기술을 넘어선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충분히 가능하게 됐다.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체계가 서유럽 복지국가에서 나타났고, 일본에서는 ‘지역 포괄 케어’ 형태로 등장함으로써 ‘탈 시설’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원격의료를 통한 의료서비스의 제공’이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로 더 이상의 건강 개선이 없다고 판단될 때 환자를 가정으로 돌려보낸 후, 병원이나 의원에서 원격의료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의료기관의 원격의료 담당 의사가 방문 간호사를 활용하여 의료적 처치를 원격으로 실행하게 된다면, 안전이 확보된 가운데 환자의 의료적 관리가 가능해진다.
병원, 요양병원, 정신의료기관, 장애인 거주시설 등의 기관이나 가정에서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들이 보건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경우는 매우 많다. 이럴 경우, 보건서비스는 보건소 등의 관련 기관이 제공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의료서비스이다. 이때마다 지역사회의 의료 수요자를 의료기관으로 이송하는 일은 큰 불편 비용을 치르게 한다. 이미 선진국들은 만성 질환을 가진 인구(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의 지역사회 정착과 의료적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의료진의 방문 진료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역사회의학에서 핵심은 의사의 역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의사는 병·의원에서 진료하고, 지역사회의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방식은 급성 질환 진료 중심의 낡은 체계이다. 고령화와 함께 도래한 만성 질환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의료제공체계가 강구돼야 한다. 이제 의사가 지역사회의 거동이 불편한 만성질환자 등을 방문해야 한다. 그런데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므로 의사의 방문을 일정하게 유지하되, 간호 인력의 방문 건수를 늘리고, 의료진 간의 협력체계를 꾸리는 게 보다 효과적인 방책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자면, 지역사회 거동 불편자의 ‘주치의’ 역할을 하는 거점 병·의원의 의사가 지역사회를 방문하는 간호 인력이나 환자와 직접 소통할 필요성이 커진다.
의사는 의료기관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지역사회의 환자 진료를 수행하고, 방문 간호사 등에게 적절한 의료처치 지시를 즉시에 내리고 처방전을 발급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불가능했다. 이런 직접적인 의료는 병·의원 내에서만 가능했고, 이게 현행 의료법의 취지에도 부합했다. 그런데 과학기술, 특히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 이것이 지역사회에서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해진 것이다. 다만, 관련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도입되지 않은 것이다. 원격의료가 필요한 이유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지역사회의학, 즉 ‘커뮤니티 케어’를 위한 의료전달체계의 재정립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의료계의 반대 때문이다. 의료계는 지금까지 이 사안마저도 원격의료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급성 질환의 치료나 거동이 원활한 환자의 병·의원 대면 진료를 원격의료 기술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그동안 논란이 됐던 것이라고 한다면, 지역사회 통합 돌봄을 위한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방안은 커뮤니티 케어를 위한 지역사회의학 체계의 확립에 해당한다. 우리는 지금 ‘커뮤니티 케어’ 확립을 위한 원격의료를 시행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30년 동안 전례 없는 (초)저출산의 위기와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다. 생산연령인구는 매년 급속하게 줄고, 경제와 복지는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통합 돌봄을 요구하는 지역사회 중심의 새로운 시대가 준비되고 있다. 지금 정부는 전국의 16군데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을 하고 있고, 2025년부터 이 사업의 전면적 실시를 예고했다. 병원이 아니라 살던 곳에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것은 인간 존엄에 해당한다. 여기에 의료체계도 순응하는 게 옳다.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한국형 뉴딜의 선도적 경제-복지 모델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런 시대적 과제가 가능하게끔 지원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지역사회의학, 즉 커뮤니티 케어는 산업화 이후 자연적 연대가 사라진 자리에 다시 복지국가의 제도적 연대의 확립이 가능하도록 해 준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선진 복지국가의 사례를 참고해 신속하게 지역사회 중심의 새로운 대응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커뮤니티 케어에만’ 적용되는 ‘원격의료’의 제도화를 제안한다. 이때 원격의료 제공자에서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은 제외해야 한다. 이는 대한의사협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의원과 요양병원(일차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소규모 병원 포함 검토)이 커뮤니티 케어 시대의 원격의료 제공자가 되고, 원격의료의 대상은 정부에서 정한 장기요양 대상자인 ‘거동 불편 노인’ 등을 포함한 커뮤니티 케어 대상자와 각종 요양시설에서 생활하는 분들만 해당하도록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