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 고액체납 1위 권혁 시도그룹 회장이 15년 만에 체납 세금 3938억원을 다 내기로 했다. 국세청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평가했지만, 그가 세금을 미루는 동안 회사는 한 해에만 체납액의 10배가 넘는 신조선을 주문할 만큼 커졌다.
8일 국세청과 해운 전문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권 회장은 지난 7월 현금 1000억원을 냈고, 나머지 체납액에 대해서는 해외에 있는 선박 5척을 담보로 내놓고 납부 계획서를 제출했다. 국세청은 전날 브리핑에서 간이 평가 결과 담보물 가치가 체납액을 넘는다고 밝혔다.
권 회장은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나와 대한해운 등에서 일하다 1990년 홍콩에 시도상선(Cido Shipping)을 세웠다. 자동차운반선(PCTC)과 유조선을 일본 NYK·MOL·K라인 등에 장기 용선해 주는 선주사로 키웠고, ‘선박왕’으로 불렸다. 회사는 홍콩에 있고 지배주주는 권 회장이다. 국내 법인 시도상선은 2014년 감사보고서를 끝으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더 이상 공시가 올라오지 않는다.
국세청은 2011년 그를 역외탈세 혐의로 조사해 종합소득세 등 4101억원을 추징했다. 권 회장은 해외에 사는 비거주자라 국내 납세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행정소송은 두 차례 파기환송과 세 차례 대법원 심리를 거쳐 지난해 과세가 확정됐다. 법원은 국내에 생활 기반과 사업상 주요 의사결정이 있었다고 보고 그를 국내 거주자로 판단했다.
형사 재판 결과는 달랐다. 그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바른은 실적 자료에 조세포탈 형사사건이 ‘대부분 무죄 확정’됐다고 적고 있다. 세금을 낼 의무는 있지만 탈세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과세가 확정된 뒤에도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국세청은 지난해 12월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에 그를 개인 1위로 올렸다. 그가 대표로 있는 법인들의 체납까지 합하면 당시 8324억원이었다. 국세청은 이번 발표에서 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분까지 더한 장부상 체납 총액을 7902억원으로 제시하고, 권 회장 개인 체납이 완납되면 법인 체납도 함께 소멸한다고 설명했다.
체납액 3938억원 가운데 절반가량은 가산세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8일 MBC 라디오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15년을 버티는 동안 원래 세금만큼의 가산세가 붙은 셈이다.
같은 기간 시도는 몸집을 키웠다. 러시아 해운매체 포트뉴스가 2024년 10월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시도는 당시 최근 발주한 신조선이 40척, 총액 30억달러에 가까웠다. 당시 환율로 약 4조원이다. 체납액의 10배를 넘는다.
이 가운데 18척은 HD현대 계열 조선소 몫이다. 울산 HD현대중공업에 초대형 암모니아운반선(VLAC) 2척 약 2억5000만달러, 수에즈막스 유조선 4척 약 3억6400만달러를 맡겼고, HD현대베트남에 LR2 유조선 4척과 MR 석유제품운반선 8척을 주문했다.
중국 초상국중공업(장쑤)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자동차운반선 12척을 약 10억8000만달러에 발주했다. 해운 전문지 스플래시247은 올해 6월에도 시도가 HD현대의 필리핀 조선소에 30만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4척을 척당 약 1억3000만달러에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건은 선주와 조선소 모두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국세청이 움직인 것도 이 배들이다. 조세금융신문 보도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징세관실은 올해 5월 울산 HD현대중공업 본사를 찾아 시도가 발주해 건조 중인 선박의 계약서를 넘겨받았다. 국세청은 파나마·라이베리아 등 편의치적국에 등록된 권 회장 선박의 압류를 추진하며 영국·홍콩·일본 과세당국에 공조를 요청했다. 임 청장은 “압류하려고 했는데 (권 회장에게) 부담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권 회장의 납부는 국내에 재산이 없는 상태에서 해외 선박을 붙잡히자 이뤄졌다. 한국 조선소가 그의 배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이 징수의 지렛대가 된 셈이다. 다만 담보로 잡은 선박 5척의 적정성 평가는 아직 진행 중이어서, 나머지 약 2938억원이 실제로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국세청은 권 회장에게 국내로 들어와 사업할 것을 제안했으나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시도그룹은 홍콩 본사로 연락할 수 있는 국내 창구를 두고 있지 않아, 이번 발주 현황과 납부 일정에 대한 회사 측 입장은 확인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