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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환 “명백한 과오” 사과했지만…한화에어로 ‘학벌 지침’ 탈락자 1668명 구제는 없었다

이부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7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경력직 채용 지침 논란에 대해 "명백한 당사의 과오"라며 "관리의 부재가 맞고, 특히 인사팀의 운영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 (출처=국회방송)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경력직 채용 내부 지침에 특정 대학 출신과 ‘1980년생 이하’라는 기준을 담았던 사실이 드러나 대표이사가 사과했지만, 서류에서 떨어진 지원자 1668명에 대한 구제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22일 출신학교채용차별방지법 국민운동(이하 국민운동)에 따르면 교육의봄 등 329개 단체로 구성된 국민운동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력직 서류전형 탈락자 1668명을 피해자로 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국민운동은 출신학교와 나이를 이유로 한 고용 차별에 대해 인권위의 조사와 시정 권고를 요청했다. 채용 심사자료 전수조사, 서류전형 재심사, 재발 방지 대책도 권고해 달라고 했다.

숫자가 문제의 크기를 보여준다. 국민운동이 인용한 KBS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진행된 이 회사 경력직 채용에는 1728명이 지원해 60명이 서류를 통과했다. 이 가운데 55명(91.7%)이 내부 지침에 이름이 오른 16개 대학 출신이었다.

지침 밖 학교를 나온 지원자는 1351명이었다. 이 중 서류를 통과한 사람은 5명뿐이다. 국민운동은 5명 중 3명이 사관학교 출신이어서 일반 대학 출신 합격자는 2명에 그쳤다고 밝혔다.

공개된 숫자를 나눠보면 격차는 더 선명하다. 지침에 오른 대학 출신 지원자 377명 중 14.6%가 서류를 통과했지만, 그 밖의 대학 출신 지원자는 통과율이 0.37%였다. 약 39배 차이다.

문제의 지침은 8월 31일 작성돼 인사 담당 임원과 사업부별 채용 담당자에게 전달됐다. 서울·판교 근무자는 국내 11개 대학이나 QS 세계대학순위 100위 안의 해외 대학 출신이어야 한다는 ‘출신학교 커트라인’과 ‘1980년생 이하’라는 나이 상한이 담겼다. 1979년 이전 출생자, 올해 기준 40대 후반 이상은 처음부터 배제하는 기준이다.

외부에 낸 채용공고에는 이런 기준이 한 줄도 없었다. 지원자들은 학교와 나이로 걸러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지원했고, 지금도 탈락 이유를 알지 못한다.

회사의 설명은 바뀌어 왔다. 9월 9일 KBS 첫 보도 직후에는 ‘가이드라인일 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은 아니다’라고 했고, 이후에는 ‘구속력 있는 선발 기준으로 적용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부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7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경력직 채용 지침 논란에 대해 "명백한 당사의 과오"라고 답하고 있다. (출처=국회방송)
이부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7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경력직 채용 지침 논란에 대해 "명백한 당사의 과오"라고 답하고 있다. (출처=국회방송)

이부환 대표이사는 9월 27일 사과문을 내고 “내부 의견수렴과 면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잘못된 가이드라인이 현업에 배포된 명백한 당사의 과오”라고 밝혔다. 책임자 경고·징계, 내부 프로세스 전면 개선, 전 임직원 공정채용 교육 강화를 약속했다.

이 대표는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도 사과했다. 다만 지침은 ‘정식 결재를 거치지 않은 실무급 차원의 일탈’이라고 설명했고, 최근 5년간 경력직 채용자의 약 70%가 11개 대학 밖 출신이라는 회사 자료를 제시했다.

국민운동은 이 해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국회 서면 답변에서 ‘1980년생 이하’ 기준에 대해 ’20년 이상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국민운동은 “실무자의 실수가 아니라 회사의 판단”이라고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민운동이 정한 답변 기한인 지난 15일 회신을 보냈다. 지침을 폐기하고 책임자를 징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실제 채용 과정에서 차별이 발생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탈락자 구제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국민운동은 “회사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며 “1668명의 지원자는 지금도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법은 이미 이런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는 사업주가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이나 출신학교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이 조항에는 처벌 규정이 없다.

2026년 9월 29일 서울 한화 본사 앞에서 출신학교채용차별방지법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참가자들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학벌 채용 차별 논란을 계기로 국회에 관련 법안 마련을 요구했다. (사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2026년 9월 29일 서울 한화 본사 앞에서 출신학교채용차별방지법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참가자들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학벌 채용 차별 논란을 계기로 국회에 관련 법안 마련을 요구했다. (사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나이 기준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모집·채용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 차별을 금지하고, 위반한 사업주에게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다.

출신학교는 사정이 다르다. 채용절차법 제4조의3은 구직자의 용모·키·체중, 출신지역, 직계 존비속의 직업·재산 같은 정보 수집은 금지하지만 출신학교는 목록에 없다. 국민운동이 출신학교 정보 수집 자체를 막는 ‘출신학교 채용차별 방지법'(채용절차법 개정안)의 이번 회기 처리를 국회에 요구하는 이유다.

해외에서도 나이로 지원자를 거르는 것은 대표적인 고용 차별로 다뤄진다. 미국은 연령차별금지법(ADEA)으로 40세 이상 구직자를 나이 때문에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을 금지하고, 유럽연합(EU)은 고용평등 지침(2000/78/EC)으로 채용에서의 연령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9월 16일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채용 과정 전반에 대한 감독에 들어갔다. 감독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동안 인권경영을 내세워왔다. 교육의봄 부설 좋은채용연구원이 대기업 지속가능경영보고서 451개를 분석한 결과, 이 회사는 ‘채용에서 출신학교 차별 금지’를 3년 중 2번 명문화한 26개 기업 중 하나였다. 공개적으로 약속한 원칙과 다른 지침이 내부에서 작성돼 현업에 배포된 셈이다.

이 회사의 지배구조 정점에는 한화그룹 총수 일가가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32.18%를 가진 ㈜한화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미등기 회장으로, 올해 상반기 이 회사에서 보수 25억2000만원을 받았다.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은 등기 대표이사로 상반기 보수 11억6200만원을 받았다.

지침이 작성된 8월 말 이 회사는 김동관 부회장과 손재일 사장의 각자대표 체제였다. 이부환 대표는 KBS 첫 보도 9일 뒤인 9월 18일 이사회에서 손 사장 후임 대표로 선임됐고, 이후 사과문 발표와 국정감사 답변을 맡았다. 회사는 지침 작성이 실무급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입장이며, 경영진이 지침 작성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국민운동은 탈락 지원자들의 제보를 받고 있으며, 회사가 스스로 바로잡지 않으면 법률 대리인과 함께 소송 절차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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